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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소대나무 Sep 28. 2020

뽕라면

뽕라면  


 그의 폭언과 구타에는 특별한 이유가 없었다. 손날로 목덜미를 내려치며 후임 기합잡기를 즐겼던 그는 명치와 엉덩이, 허벅지 등 옷을 입었을 때 티가 나지 않는 부위 위주로 구타를 자행하는 치밀함을 보이기도 했다. 여러 명을 때리다가 체력이 동나 지칠 때면 구타에서 얼차려로 종목을 전환하기도 했다. 다른 재미난 거리를 찾을 때까지 그의 괴롭힘은 끝나지 않았다. 군인도 사람일진대 무차별 폭행에 온갖 가혹행위를 일삼던 그는 다름 아닌 악마 그 자체였다.    

 81년생 동갑. 굳이 따지자면 그의 생일은 나보다 두 달 정도는 빨랐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군에 자원입대했다던 그였다. 원치 않은 대학에서 1년 반을 술로 허송세월하다 입대한 내가 신병으로 실무를 배치 받았을 때 이미 그는 전역을 넉 달 앞둔 말년병장이었는데 키가 작고 왜소한, 당시에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었던 안경잽이 해병이었다. 수색교육은 물론, 전투수영부터 기습특공, 저공 공수 등 해병대 특유의 훈련은 안경을 쓰고서는 정상적으로 수료하기 힘든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신검에서도 일정수준의 나안시력을 요구했기 때문에 안경을 쓴 해병은 당시에 찾기도 힘들었을 뿐더러 부대에서 대접도 잘 못 받는 편이었다. 자존심은 인당수를 건너 백령도에 선착할 때 바닷가로 던져버린 지 오래였고 매일같이 반복되는 구타에 맷집 또한 나날이 늘어갔지만 안경잽이의 괴롭힘은 날로 악랄해져갔다.


 한밤중에 초소근무를 나가던 어느 날. 눈가에 붙은 잠을 애써 떨궈내며 근무 나갈 채비를 하고 있는데 주계(주방을 뜻하는 군대 용어) 도마에 널브러진 식칼이 눈에 들어왔다. 머릿속이 텅 비며 새하얘진다. 눈에 핏발이 서고 심장이 쿵쿵거리는 소리가 내 귀에 들려온다. 분명 새하얘진 머리에는 아무 생각도 안날진대 어떠한 계시가 귓가를 파고든다. 

‘죽이자.’

내가 뭘그리 잘못하여 이리 개만도 못하게 매일매일 두들겨 맞아야하는가? 내가 왜 스스로의 자존감을 해쳐가며 정신적으로 피폐해져야만 하는가? 죽여 버리자. 내가 죽을 바엔 차라리 저 악마새끼를 죽여 버리고 군법의 심판을 받자. 이성은 이미 마비된 지 오래다. 본능밖에 남지 않은 육신은 한걸음씩 도마 쪽으로 다가갔다. 어느새 난 식칼 손잡이를 움켜쥐고 있었다. 난 건빵주머니에 이 식칼을 넣고 惡을 처단하러, 모두의 광명을 찾으러 갈 것이다.   

 “얌마, 니 주계에서 뭐하노? 수통에 뜨거운 물은 채웠나? 앞 근무자가 고참이니까 빨리 서둘르라. 언넝!”

초소에서 같이 근무를 서게 된 일병 선임의 일갈에 정전에 꺼진 등에 불이 들어오듯 정신이 번쩍 든다. 초병 근무 준비를 하던 내가 주계에서 왜 식칼을 쥐고 있는지 영문을 알 수 없다. 마른 침을 삼켜본다. 식은땀이 등어리를 한줄기 휘감고 지나간다. 


 희미한 군용 랜턴은 한밤의 어둠을 쓸어내는 데 아무 효과가 없다. 달빛에 의지해 산기슭 험로를 내달친다. 산꼭대기 초소는 산악 지형에 훈련된 군인 걸음으로도 30분이 걸린다. 수통의 물과 병기, 캔통(총알을 담은 5~20kg의 통) 들고 날 듯 달려 초소에 당도하면 체감온도 영하 20도라는 것이 무색할 만큼 온몸에서 땀이 흐른다. 이 땀을 식히지 않으면 즉각 감기에 걸린다. 한밤중, 입김이 나오다 얼어붙는 에는 추위 속에 두 장정은 속옷까지 몽땅 벗고 열기를 식힌다. 어느 정도 열기가 식고 땀이 마르자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는데 갑자기 일병 선임이 봉지라면을 꺼내더니 잘게 부순다. 낡은 수통에 담아온 뜨거운 물은 미지근해졌지만 아직까지 나름 따뜻하다. 어차피 뽕라면(봉지에 물을 부어 먹는 라면, 일명 뽀글이)은 익혀 먹는 게 아니라 불려 먹는 것이니까 물 온도는 크게 상관없다. 좁은 초소에 이내 라면향이 퍼진다. 향긋하다. 10 분쯤 지났을까? 라면이 충분이 불었다는 것을 확인한 선임이 먼저 한 젓가락 삼키더니 나에게 내민다.

“한 입 무라.”

“괜찮습니다!!”

 불과 40분 전만해도 무엇엔가 홀린 듯 한 생명을 앗아버리겠다는 충동에 빠졌던 나다. 스스로 받은 충격이 제법 컸던 지라 입맛이 있을 리 없다.

“니 좋으라고 무라는 거 아이다. 니가 한 입이라도 무야 내가 신경 안 쓰고 나머지 다 먹을 수 있지.”

“잘 먹겠습니다.”

물 받아온 지 거의 40분이 지났건만 라면 국물은 제법 따뜻했다. 불어터진 면과 국물을 한 입 삼킨다. 따뜻한 것이 목구멍을 타고 몸속으로 흘러들어간다. 무언가 나른해지더니 일순 따뜻한 물 두 줄기가 양볼을 타고 흐른다. 목이 메이더니 뜨거운 숨덩어리가 울대를 통해 꺼억 꺼억 터져 나온다. 


"이 새끼가 라면 먹다가 갑자기 쳐 울고 그라노? 해병대가 눈물을 흘려? 마! 니 도랐나!"

질타가 초소를 울린다. 해병이 울게되어 있냐며 호통을 치던 선임 손에는 몽둥이 대신 담배 두 개비가 들려 있다. 

"한 대 푸라"

"......“

"힘들제?"  

 세속의 오염을 비껴간 백령도의 밤하늘엔 무수한 별들이 촘촘하게도 박혀 있었고, 입을 오므려 훅하고 불면 그 별들이 얼굴로 떨어질 것만 같았다. 대한민국 남쪽 끝에서 올라온 해병 둘이 나라 최북단의 바다를 마주하고 나란히 담배연기를 뿜어낸다. 연기는 공중에 퍼지며 한층 한층 올라가더니 별들 사이를 메운다. 희뿌연 연기 속에 별들이 생기를 띠며 빛을 발한다. 마치 은하수 같다. 연기는 이내 바람에 흩뿌려져 사라진다. 

 “힘내라. 일마야. 지금 니가 후달리는데(계급이 낮은데) 우짤끼고. 전역 후에 같이 울산 찾아가서 글마 반 직이뿌자. 행님 바깥세상에서 한가락 한 거 알제? 글마는 행님이 직이줄게. 담배 풋고 얼른 라면 무라. 다 뿐다”  

창원에서 건달 비슷한 생활을 했다는 일병선임. 기골이 장대했고 온몸은 근육질이었던, 마음은 더욱 넓었던 해병이었다. 죽인지 면인지 모를 정도로 불어버린 뽕라면이었지만 마지막 국물 한 방울까지 따뜻했다. 


 음식에는 참 다양한 언어가 녹아있다. 밥 먹었니? 언제 한 번 밥 먹자, 배고프다 밥 먹으러가자... 쓰임과 상황에 따라 같은 음식에도 여러 의미가 복합적으로 숨어있고 그래서 한국문화는 어려운 동시에 위대하다는 평을 듣는다. 복날을 맞아 대접하는 삼계탕에는 상대의 건강을 위하는 마음이 담겨있고, 아버지가 아들에게 권하는 소주 한잔에는 아들의 자주권을 인정하는 의미가 있다.이역의 섬에서 하루하루 힘겨운 일상을 버텨내고 있는 후임에게 건넨 미지근한 뽕라면은 ‘널 응원해’라는 메시지로 해석해도 될 것 같다.


 요 며칠 업무가 아주 바빴다. 7월 자로 인사발령이 나 기존 근무지의 업무를 마감하느라, 새로운 근무지에서 적응하느라 두 달 내내 야근을 한 것은 물론이요, 정신적인 스트레스도 적잖았던 터였다. 유독 기력이 쇠해 보이는 남편이 아내는 맘이 쓰였나보다. 요리에 서툰 새댁주제에 마트를 가더니 고기야 생야채야 의기양양하게 카트에 담는다. 그의 요리 실력을 아는 나로서는 조금은 의아한 생각이 든다. 

 비가 오는 주말이었다. 인터넷에서 조리법을 찾아 삶아냈다는 수육에서 김이 피어오른다. 천장을 향해 올라간 수증기는 천장 벽지의 문양과 문양 사이를 희뿌옇게 장식하더니 이내 흩뿌려져 없어진다. 잘 삶겨진 고기는 한없이 부드럽고 따뜻하다. 아내가 싸준 쌈을 소주 한잔을 털어 삼킨다. 따뜻한 것이 목울대를 지나 몸속으로 들어간다. 문득 전역하면 울산으로 함께 쳐들어가자던 전직 건달의 새카만 얼굴이 스쳐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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