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전문 요리사 과정
매주 월요일엔 컬리지에서 전문 요리사 과정에 참여하고 있다. 요리사 과정은 수업 시작 전, 유니폼 및 요리 도구 등을 미리 세팅해야 하는 분위기이다. 그래서 미리 간다, 간다 하는데 아침 시간은 왜 그리 금방 가는지, 늘 허둥지둥이다.
선생님이 바뀌었다!
5월 들어 선생님이 바뀌었다. 이전 선생님이 건강 상의 이유로 하차하고(알고 보니, 그만두기 위한 구실이었음) 두 사람이 수업을 이어받았다. 수업은 실습과 이론으로 나뉘는데 마크가 실습을, 닐이 이론을 맡았다. 그런데 이 또한 임시라고 했다.
"마크, 무서워 보이지 않아? 엄격할 거 같고."
펀시아는 선생님이 바뀐 게 걱정되는 듯 말했다. 나도 기존에 얼굴만 마주치던 마크의 인상이 워낙 무뚝뚝했기에, 펀시아의 말에 공감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막상 수업이 시작되자, 그건 기우였음이 밝혀졌다. 마크의 수업은 짜임새가 있었다. 한 주, 내용을 알려 주고 같이 만들어 본 뒤, 그다음 주에 평가가 이루어졌다. 격주로 평가라니 힘들지 않을까 했는데, 2번 모두 무난히 통과했다. 마크의 설명은 간결했고, 데모는 보고 따라 하기 쉬웠다.
젖 먹던 힘을 다해 반죽하기
진짜 딱 11년 전, 아일랜드의 카페에서 5개월 정도 빵을 만들었다. 사장이 준 레시피대로 만들었더니 빵이 곧잘 팔렸다. 베이킹이라고는 해 본 적이 없었는데, 내가 만든 빵을 팔기까지 하다니. 신기하기만 했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그건 11년 전이었다.
'잘 따라갈 수 있으려나..'
첫 주에는 가장 기본 빵과 도넛을 만들었다. 제빵 수업은 손 반죽을 기본으로 했다. 기본 빵은 그래도 반죽할 만했는데, 도넛 반죽은 말 그대로 혼신의 힘을 다해야 했다. 질퍽질퍽한 도넛 반죽을 바닥에 놓고는 젖 먹던 힘을 다해 최대한으로 밀어서 늘였다 당긴다. 반죽에 공기를 넣는 과정으로, 20~30분 정도 반복하라고 했다. 말이 20~30분이지, 손 반죽은 10분만 해도 땀이 났다.
츤데레 마크 선생님
마크는 키가 190센티에 가까운 건장한 체격으로, 반죽하는 모습도 시원시원했다. 역시 남자의 힘, 이라고 생각했다. 질척한 도넛 반죽이 마크의 손에서는 마법처럼 15분이면 매끈매끈해졌다.
반면, 내 짧은 팔로는 아무리 마크를 따라 해도 뭔가 어설펐다. 온 힘을 다해 주욱 밀고 당기고, 다시 주욱 밀고 당기고. 있는 힘껏 반복하면서도, 이 질퍽한 반죽이 과연 매끈매끈해질까 의문이 들뿐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너무 걸리겠다 싶었는지, 보다 못한 마크가 와서 내 반죽을 도와줬다.
'무뚝뚝해 보였는데 의외로 상냥한 사람이네.'
피타 빵 만드는 법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단계별로 마크가 시범을 보이면, 우리가 따라 하는 방식이었다. 우선 재료를 준비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밀가루, 소금, 이스트, 물, 각종 허브. 몇 가지 안 되는 재료였지만 정확한 양을 계량해 세 개의 볼에 나눠 담아야 했다. 이때, 한 가지만 실수해도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이스트는 소금과 섞으면 이스트가 죽는다. 이스트를 살려 빵을 부풀리려면 준비 단계에서 이 둘을 먼저 섞으면 안 된다. 소금은 밀가루와 담아 먼저 섞고, 이스트는 물과 잘 섞은 뒤, 이 둘을 합쳐야 했다. 이를 위해, 우선 하나하나 적절한 사이즈의 용기에, 정확한 양을, 마크가 알려준 결합으로 담아야 했다. 그리고 재료를 준비했다면, 마크의 다음 시범을 기다려야 했다.
그런데 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걸까? 난 재료를 준비하자마자, 섞어 반죽을 만들기 시작했다. 두 번째 베이킹이라 어떤 순서로 섞는지는 대강 알 수 있었다. 그러다 반죽이 거의 다 되어갈 즈음, 번뜩 정신이 들었다.
'아차, 나 뭐 하고 있는 거야!'
나도 모르게 주위를 살폈다. 도둑이 제 발 저린 형상이었다. 그런 나와 마크의 눈이 마주쳤다.
"J!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야?"
이마에서 진땀이 나는 듯했다. 아아, 그런데 어쩌랴, 이미 만들어 버린 반죽을. 어설픈 웃음으로 상황을 모면하려 애썼다. 마크는 고개만 도리도리 저을 뿐이었다.
곧 다음 과정을 보기 위해 모두가 모여든 자리에서 마크가 나를 놀렸다.
"J가 나 대신 너네들 보여 주려고 미리 반죽을 만들었어. J, 어때. 지금 다시 한번 모두들 앞에서 시연해 보는 게."
모두들 웃었다. 나는 다시 한번 어설픈 웃음을 지어 보였다. 마크는 의외로 장난기도 많은 사람이었다.
막상 해 보니 할만한데?
마크의 수업은 한 주 실습하고, 한 주는 평가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2주 간격으로 새로운 빵을 만들어 보는 것이었다. 첫 번째 기본 빵과 도넛에 이어, 두 번째로 피자와 피타 빵을 만들었다.
피자를 만들기 전에는 막연히 어려울 거라 생각했는데, 만들고 나니 생각만큼 어려운 과정은 아니었다. 인생의 많은 것들이 그런 것 같다. 직접 해 보기 전에는 참 막막해 보이는데, 막상 해 보고 나면 '할만한데'라든가, '못할 건 아니구나' 싶은.
협동을 중시하는 전문 요리사 과정
이번 전문 요리사 과정은 1월 초에 시작되었는데 나는 2월 말에 합류했다. 그런데 불과 4개월 만에, 멤버도 많이 바뀌었고 선생님도 바뀌었다. 현재 6~7명이 꾸준히 참여하고 있는데, 조금씩 서로를 알아가는 게 재미있다.
아무래도 전문 요리사 과정이다 보니, 실제 현장에서와 같이 진지한 태도를 요구한다. 복장, 시간 엄수, 적절한 도구 구비 등, 여러 가지를 얘기하는데 그중에서도 강조하는 게 '협동'이다.
레스토랑에서 여러 사람과 일하려면 서로를 배려하면서 호흡을 맞추는 게 중요하다. 각자 요리하는 것 같아도, 조리 도구와 요리 재료를 나눠 쓰기 마련이다. 동료 의식 없이, 나 혼자만 생각하는 마음가짐으로는 누군가와 부딪히기 쉽다.
실제로 일하는 레스토랑 분위기는 더하겠지. 그런 현장을 알기에 선생님들이 누누이 강조하는 듯하다. 서로를 배려하라고, 같이 하라고. 그래서 우리가 실습하는 주방도 사용한 뒤, 내 공간, 네 공간할 것 없이 다 같이 정리하곤 한다.
도넛을 처음 만들던 날, 반죽에서 늦다 보니 전반적으로 다 뒤처졌다. 다른 사람들은 정리하고 있는데 혼자 도넛을 튀기고 있었다. 튀긴 뒤엔 도넛 장식도 해야 하는데. 그런 내 뒷설거지도 아무런 말 없이 해 준 코리나, 도넛 장식 재료와 포장지 등을 챙겨 준 펀 사아, 사이사이 티 안 나게 조금씩 도와준 맷이 있었기에 무난히 마칠 수 있었다.
코리나에게 고맙다고 얘기하자, 코리나가 말했다.
"괜찮아. 이번에 네가 늦게 끝났지만, 다음번엔 내가 늦게 끝낼 수도 있잖아."
이 전문 요리사 과정에서 배우는 게 요리만은 아닌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