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리지에서 일자리를 제안받고 뛸 듯이 기뻤지만, 한편으로는 난감했다. 단기직으로 일을 시작한 지, 일주일도 안 된 때였다.
'3개월 일하기로 했는데, 이걸 어떻게 하지?'
다음 날, 리크루터인 루크에게 사정을 설명했다. 몇 개월에 걸쳐 내게 일을 구해주려 애쓴 루크였기에, 미안한 마음이 앞섰다. 물론, 루크는 몹시 당황해했다.
"네가 무급으로 일했던 10개월 동안 아무 얘기가 없었잖아. 왜 네가 다른 일을 시작하자마자 이런 제안을 하는 건데?!"
루크가 말했다. 루크 입장에서 몹시 손해인 상황이었다. 그가 화가 나는 건 당연했다.
그의 입장을 이해했지만, 그렇다고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그러기엔 너무나 오래 기다려 온 좋은 기회였다.
루크와 다소 실랑이가 있었고, 단기직으로 일을 시작한 아카데미 재단과도 다소 어색함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굴에 철면피를 깔고 컬리지행을 감행했다. 다들 껄끄러워하면서도 내 상황을 이해했다. 이기적이라는 비난 아닌 비난도 들었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마지막까지 일을 열심히 하고 마무리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왜 힘든 상황은 한꺼번에 닥치는 걸까. 컬리지와 아카데미 재단 사이에서 상황을 정리하는 중, 코로나에 걸렸다. 여러모로 힘든데, 몸까지 아프니 정말이지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이때 또, 남편은 갑작스레 해외 출장을 간 상황이었다.
혼자서 끙끙 앓으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그러다 결국, 하루는 설움에 복받쳐, 출장 중인 남편에게 엉엉 울면서 쏟아부었다.
"왜 내가 이렇게까지 상황을 감당하려 애쓰는지 모르겠어. 몸도 아프고 너무 힘들어.."
코로나로 쏟아지는 콧물과 심한 기침으로 잠도 못 자던 때였다. 그런데도, 원래 계약보다 빨리 일을 마무리짓게 된 탓에, 차마 일을 쉬겠다고 하지 못했다. 그런데 또 컬리지 쪽에서는 이래저래 요구 사항이 많았다. 정말이지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하지만 늘 그렇듯, 모든 것은 지나간다. 힘든 한 주가 지나고, 크리스마스가 찾아왔다. 남편이 출장에서 돌아왔고, 겨우 코로나 음성이 떴다. 밤마다 곤히 잠을 자기 시작했다. 정말이지 며칠을 12시간씩 잤다.
어제 근처에 사는 한국 언니를 만났다.
"원하던 취업도 되고 모든 게 순조로운데, 왜 이런 기분이 드는 걸까요?"
취업만 되면 마냥 행복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아니, 취업이 되어 행복하긴 했다. 하지만, 들뜬 기분이 가라앉자 현타가 왔다.
나인 투 파이브. 다람쥐 쳇바퀴 같은 직장인의 삶.
준비할 땐 그토록 간절했던 취업이지만, 막상 일을 시작하면 그만두고 싶은 놀부 심보가 되리라.
그래도 지금은 이 성취를 만끽해야 하지 않을까. 당당히, 오롯이, 마흔한 살에 내 힘으로 이뤄낸 영국에서의 취업이라는 성과. 그것도 회계라는 새로운 분야로.
그리고 지금의 내 발자취가 앞으로 영국, 또는 어딘가 해외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누군가에게 본보기가 될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