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쟈크모노가타리슈9>
예나 지금이나 치정(治政)의 역할을 맡은 관리들을 향한 세간의 쓴소리가 들리곤 한다.
일본 고대의 정사 육국사(六國史)는 기본적으로 5위 이상의 귀족 관리들이 주인공인 기록서이다. 따라서 당시 정계에서 실패하거나 몰락당한 인물에 대한 사연을 빼고는, 귀족 관리들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을 다루는 일은 드물다.
그런데 <곤쟈크모노가타리슈>속에는 세간의 눈에 비친 관리, 특히 지역에 파견된 관리들의 행동거지들에 대한 비판의 이야기들이 드문드문 눈에 띈다. 다음의 일화도 그 한 예이다.
<곤쟈크모노가타리슈>31-21 노토국(能登国) 오니네야시마(鬼寝屋島)의 일
지금은 옛날, 노토국 바다 가운데 오니네야(鬼寝屋)라는 섬이 있었다. 그 섬에는 강가의 돌처럼 전복이 많았다. 노토국 히카리시마(光島)라는 해안에 사는 아마도(海人, 어부)들은 그 오니네야에 건너가 전복을 채취하여 고쿠시(国司, 노토국의 장관)에게 조(調)로 공납했다. 그 히카리 해안으로부터 오니노네야는 하루 낮밤을 배로 달려 갈 수가 있었다. ……
그런데 후지와라 미치무네(藤原通宗)라는 노토국의 고쿠시는 그 임기가 끝나는 해에, 히카리 해안의 아마도들이 오니노네야에 건너가서 전복을 따다 바치기를 강력하게 재촉하니, 아마도들은 지쳐서 에치고국(越後国)으로 가버렸다. 그 하키리 해안에는 한 사람도 남지 않게 되어 ……전복을 채취하는 일이 없어져 버렸다.
그렇다면 사람의 강한 욕심은 쓸데없는 일이다. 단번에 재촉해서 많이 얻으려고 하다가 나중에는 하나도 얻지 못하게 되었다. 지금까지도 고쿠시가 그 전복을 얻지 못하게 된 것은 극히 쓸데없는 무의미한 짓이었다고, 그 지역의 사람들 모두 그 미치무네 아손(朝臣, 조정 관리)을 비난했다고 전해져 온다.
또 이런 이야기도 있다.
<곤쟈크>31-22 사누키국(讃岐国), 마노노이케(満農 연못)를 헐어버린 고쿠시의 일
마노노이케라는 커다란 연못이 있었다. 다카노 대사(高野大師, 홍법대사 구카이(空海))가 그 지역 사람들을 가엽게 여겨 사람들을 불러 모아 축조한 연못이다. **라는 사람이 그 고쿠시(国司, 장관)로 있을 때, 그 국(国)의 사람들이 관(館)에 모여 이야기하던 중에, "아. 마노노이케에 한없이 많은 물고기가 있다. 3척이나 되는 잉어도 있다" 등을 이야기하니, 고쿠시가 전해 듣고 욕심이 났다.……연못 제방에 커다란 구멍을 뚫어서 그곳으로 물을 빠지게 해서 물이 떨어지는 곳에 고기를 넣을 수 있는 기구를 설치해 두고……그 구멍으로부터 많은 물고기가 함께 나와서 쉴 새 없이 잡았다……그 뒤……구멍을 막지 못하고……제방이 터져서……연못은 형적도 없어졌다.
이를 생각하자니, 이 고쿠시의 욕심에 의해 연못이 손실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 고쿠시, 이에 대해 어찌 그 죄를 헤아릴 수 있을까. ……한량없는 죄이다. 게다가 이 연못이 무너져서 많은 집이 손실되고, 많은 전답을 잃게 된 죄도 모두 이 고쿠시가 져야 한다. 하물며 연못 안에 있던 약간의 물고기들을 잡은 죄도 이 고쿠시 이외의 누가 지겠다고 하겠는가. 극히 쓸데없는 짓을 한 고쿠시이다. 그렇다면 사람은 강한 욕심은 그만두어야 한다. 또 그 지역 사람들 모두 지금까지도 그 고쿠시를 미워하고 비난한다.……
고쿠시(國司)란 고대국가 최고의 지방 관리직이다. 우리나라로 말하자면 지금의 도지사에 해당된다. 일본 고대에는 전국을 66국(國) 2도(島)로 나누어 지배하고 있었다. 각각의 국(國, 쿠니)에 장관(가미, 守), 차관(스케, 介), 3등관(죠, 掾), 4등관(사칸, 目) 및 서기관(시쇼, 史生)을 파견하여 관리하는 시스템이었다.
장관의 경우 주로 중앙의 귀족 관리가 4년(나중에는 5년) 임기로 지역(國)에 파견되어 나간 것인데, 조정의 행정 기강이 해이해진 헤이안 시대가 되면 지역에 직접 나가지도 않고 모쿠다이(目代)와 같은 대리인을 파견하고는 자신은 그 녹봉만을 챙기곤 하였다.
지역에 파견된 고쿠시는 임기가 끝나면 떠나게 되는 입장으로서 지역에서 단기간 최고의 권력자로 군림하였던 것이며, 그 속에서 벌어졌던 모습이 이와 같은 이야기들로 전해지는 것이다.
지역 사람들의 입장으로서는 ‘쓸데없는 짓을 하는’‘욕심 많은’ 고쿠시의 행보가 곱게 보일 리 만무하다. 자신들의 지역에서 언제까지나 고락을 함께 해야 하는 종신직 군지(郡司)와 같은 토착 호족들과는 대비되는, 이질적이고 수탈적인 존재로 비쳐졌을 것이다.
조정에서 파견되어 온 높은 관리였다 하더라도, 그가 떠난 후에는 이렇듯 그 ‘죄’를 따지며, ‘미워하고 비난하’는 기억을 남겼다.
권력을 가졌으나 사적 욕망으로 인해 결국 신망을 얻지 못한 관리들의 스토리가 어찌 비단 천 년 전만의 것일까. '청렴관리'의 이야기가 높이 칭송받는 이유는, 주어진 힘을 사적으로 운용하지 않는 것이 그만큼 어렵다는 이야기 일 것이다.
그리하여 인간의 권력과 욕심의 이야기는 그 오랜 세월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유효하다. 잘못된 전철은 되풀이하지 않겠노라고 열심히 역사 공부를 하여 온 듯하지만, 사실상 그 권력과 욕망의 문제는 아직 미해결 상태라 할 수 있다. 아무리 ‘비난’의 기록을 남겨도 바꿔지지 않은 것이다.
결국 이는 단지 누구 개인을 탓하거나 지적해서 끝날 일은 아닌 듯싶다. 인간마음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과 구체적인 해결 방법이 필요한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