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영이기>의 '하늘(아마)'
“하늘에 부끄럽지 않냐”
살아오면서 몇 번쯤, 어디선가 들었던 말이다.
무릇 사람이란-종교 신앙 여부에 관계없이- ‘하늘’을 경외하고, ‘하늘’에 마음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존재인가 보다.
그 ‘하늘’에 대한 마음을, 천여 년 전을 살던 일본인들의 정서 속에서도 뜨문뜨문 발견하며,
새삼 그 ‘하늘’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사료 속에 등장하는 '하늘(天)'에 대한 사전적 의미는, 일본에서 보통 아래 정도로 정리된다.
1. 천상(天上). 중국의 사상으로, 천상에 있는 최고 신(神)으로 천하의 통솔자. 절대 원리로, 자연현상이나 인간에 강고한 통솔력을 가지고 지배한다. 자연현상, 인간의 행위 모두 天의 의지에 의한 것으로 본다.
2. 범어(梵語) deva의 음사(音寫), 提婆로 신(神)을 의미. 천취(天趣), 천세계(天世界), 천도(天道), 천상(天上) 등으로 칭하며, 천인(天人)이 사는 최승(最勝)의 세계를 말한다.
(『日本の神仏の辞典』(大修舘書店, 2002)
3. 고대 일본어에 있어서의' 아마(あま;天)'는, 나라(奈良) 시대(8세기) 및 그 이전에는 천상에 있는 하나의 세계의 뜻으로, 천상에서 생활을 하고 있다고 믿어졌던 신들이 사는 곳을 가리켰다. 천황가의 선조는 ‘아마’로부터 내려왔다는 건국신화가 있듯이, ‘아마’는 천상·궁정·천공(天空)에 관한 말에 붙여서 사용되었다.
(『岩波古語辞典』補訂版(岩波書店,1990)).
古代의 일본인에게 보이는 '하늘'에 대한 인식은 대륙적 혹은 불교적 의미 모두가 가미된 것이라 보인다.
더불어 불교적 관념이 확립된 8-9세기 이전부터의 일본인들 고유의 신념체계가 반영된 개념으로도 이해 가능하다.
『일본영이기』를 살펴보면, 당시 사람들이 ‘하늘’ 운운하던 특징들이 엿보인다.
1. '천년(天年)’ ‘천골(天骨)', 즉 ‘태어나면서부터의 근본 성품’을 따지는 의식이 있었다. 인간 행위의 근원을 '天(근본)의 성품' 탓으로 보는 인식이다. 나쁜 행동을 하는 사람은 ‘천성(天性)이 사악’해서, 그런 악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천성이 사악하여 (天年邪見にして) 삼보(三宝;부처, 불법, 승려)를 믿지 않았다. 당시 한 승려가 있었는데 와서 음식을 구걸했다. 이마로(猪麿)는 바라는 것을 베풀지 않고 도리어 핍박을 하고 또 그 그릇을 깨고 쫓아버렸다.……열반경(涅槃経)에 이르는 바와 같이 ‘일체의 악행은 사견(邪見; 성품이 악함)을 인(因)으로 한다’는, 무릇 이를 말하는 것이다.” (上29)
“한 여인이 있었다.……천성(天年) 자비의 마음이 깊어서, 인과를 믿고 5계 10선을 지키면서 살아있는 것을 죽이지 않았다. ……”(中12)
“도카리(利苅)의 우바이(優婆夷;재가 신자)는……천성이 깨끗하여(天年澄情) 삼보를 믿고 받들고……”,
“야마토 국(大和国)에 풍류 있는 한 여인이 있었다.……천성(天年)이 풍류를 행으로 삼고 성품이 옳다고 믿은 일을 굳게 지켰다……”(上13)
“우지왕(宇遅王)은 천성이 나빠서(天骨邪見) 삼보를 믿지 않았다”( 中35),
“이누카이 스쿠네 마로(犬養宿禰真老)는…… 천성이 나빠서(天骨邪見にして) 걸식자(乞食者)를 미워했다.”(下15)
'천성(天骨)'적으로 음란하여(下16), '천성(天年)'적으로 도심이 없어(下26), '천성(自性)'이 어리석어서(下29), '천성(天骨)'이 악해서(下33), '천성(天年)'적으로 조각 공예를 잘하여서(下30) 등.
『영이기』에 보이는 이러한 ‘하늘(天)’이란 ‘본래’, ‘근본’을 의미하는 사유 관념으로 해석된다. 본래이고 근본인의 '아마(天)'이다. 고래의 일본인의 심성 속에 본래적, 근원적인 것을 '하늘(天)'에 구하는 마인드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2. 또 『영이기』에 실린 각종 설화 속에는 '하늘'에 의해 해결점을 찾는 의식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예컨대 '하늘의 도움을 받았다', '하늘이 감동했다', '하늘로 갔다', 그리고 이른바 '하늘에 부끄럽다' 등과 같은 인식이 그것이다.
“참으로 알겠다. 하늘이 가엽게 여겨 도와준 바, 부자의 깊은 인연 됨을.”(上9)
“딸은……혼자 내심, 천지(天地)가 나를 도와서 벽에 깔려 죽지 않았다고 생각하였다……”(中20)
“역우바색(役優婆塞)은……삼보(三宝)를 받들고 믿음을 업(業)으로 하였다.…… 대보 원년(701) 정월 천조(天朝)의 주변에 가까워져, 드디어 선인(仙人)이 되어 하늘로 날아갔다.……”(上28)
‘하늘로 날아갔다’에 보이는 ‘天'세계관은 도교적 신선 신앙의 반영으로도 볼 수 있으나, 『영이기』 전체에 흐르는 시대적 분위기로 보아, 기존의 '하늘'관념의 반영으로도 볼 수 있다.
이렇듯 8세기『영이기』 시대를 중심으로 일본인 고래(古來)의 의식 속에 '天'에 대한 관념이 존재하고 있었음을 확인해 볼 수 있다. 인간 삶과 행(行)의 근본 원인을 천성(天年․天骨)에 기인한 것으로 이해하고, '天의 도움''天의 감동''天으로 날아감''天에 부끄러움' 등을 말하는 '天'에 대한 의식은 모두, 『영이기』를 통해 관찰되는 古來의 일본인의 인식의 하나이다
더불어 일본 고대 말기가 되면, 자연재해. 병난 등의 각종 사회적 재난 현상을 해석하는 당시 사람들의 언설 속에
“하늘에는 입이 없어, 사람(의 입)을 빌어 말한다” 가 빈출 하는 것을 보게 된다.
(『中外抄』上60조, 『平家物語』1,清水寺炎上,『太平記』18,瓜生挙旗事,『文徳実録』嘉祥3年5 월조「生民之訛言、天、その口を仮いる』)
사람의 말이 하늘의 말이라는 메시지를, 천년 이상의 세월을 거쳐 사람들은 말해왔던 것이다.
“사람의 말이 하늘의 말을 전하는 것”이라면,
나는 당장 내 앞의 사람이 하는 말을 잘 들어야 한다.
그것이 내 귀에 듣기 좋은 말이건, 거슬리는 말이든 말이다.
왜냐하면, 그의 말이 하늘이 내게 주시는 말씀이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먼저 어떤 경우에라도, 또 어떤 사람이라도, 내 앞에서 말하는 그를 존중해야 한다. 무시하거나 홀대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사람을 대하는데 있어 깊은 자기 수양이 필요하다고 전하는 메시지 같다.
나 또한
누군가 두서없는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받아주는 이가 있다면.
기꺼이 그에게 마음을 활짝 열 것만 같다.
신뢰감이 생기고, 같이 있고 싶고, 나누고 싶어질 것 같다.
천년 전의 그들이건, 지금의 나이건 사람의 마음은 이렇듯 같다.
하늘 마음이 하나이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