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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차 Dec 26. 2019

박차의 인생 박차기 1

인생 일 회차, 삶이 아직 어렵다



삼 월이 되면 생각나는 것들이 있다. 봄, 벚꽃, 사탕, 발발거리며 돌아다니는 강아지들. 말만 들어도 설레고 들뜨는 단어들이다. 나 또한 봄 같은 분위기에 젖어보려 하지만 뭉게뭉게 떠오르는 것이 있다.



  

졸업.




졸업식이다.





 실상은 이 월이면 졸업식을 하니, 내가 두려운 건 삼 월의 백수인 스스로다.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채 사회에 발을 디뎌야 할 나, 스물다섯. 아직 졸업까진 일 년이란 시간이 남았다 스스로를 위로해 보지만 숨쉬 듯 찾아오는 막연함에 한숨이 절로다. 그동안 뭘 하였느냐 물어 보는 사람이 있을 터다. 답을 위해 모니터 앞에 앉아 지난 세월을 곰곰히 돌이켜보았다.





- 박차의 시작점


 부모님이 반대하시던 예체능 계열의 과를 선택, 묵묵히 실기를 준비했다. 수시는 후루룩 잡쉈지만 정시는 보란 듯 합격했다. 학교 홈페이지에 수험번호를 입력했을 때, ‘합격’이란 글자가 떴을 때,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동명이인인지 잘 확인해보라던 엄마의 말을 들었을 때, 그 말에 신나게 웃으며 나 맞다고 대답했을 때. 이때까지는 모든 게 순탄대로였다. 생각만큼 좋았으며 상상만큼 재밌었다.



그러나 어느 분야든 앞서 가는 자와 뒤에 남겨진 자가 나오길 마련이었다. 이학 년 말에 나는 깨달았다. 동기들이 교수님께 칭찬을 받으며 커가고 있다고. 그에 비해 나는 조금씩 나아가는 것도 아닌 뒤로 후진하다 못해 삽으로 땅굴을 파고 있다고. 내가 판 어둠에 갇혀 가끔 위로 지나쳐 가는 발들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참 썼다. 도라지를 한 웅큼 씹은 것처럼. 그 상태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판단이 들었다. 나는 부모님께 내 상태를 알렸고, 일 년간의 휴학을 결정했다.




도피성 휴학이란 말이 있다. 학교에서 도망친, 버티지 못한 사람.



그게 나였다.



누군가는 버티고 버텼어야지 그라운드에서 벗어나면 어떡하냐 채근할 수 있다. 개인의 견해이니 그 말에 의의를 두진 않을 것이다. 그러니 그 사람 또한 내게 타박을 둘 순 없다. 당시 합평 차례가 돌아오면 지하철에 있던 내 몸엔 식은땀이 흘렀다. 손발이 얼음장 마냥 차가워졌고, 당장에 집으로 돌아가는 전철로 갈아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도착한 수업에서 동기들의 말들이 들려오면 머리가 새하얘졌다. 그들의 손에 들려있는 내 작품이 부끄러웠고, 발표를 위해 들린 수많은 손들로 인해 눈을 감고 싶었다.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고, 도망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다는 확신이 들었다.



도망은 나를 살리기 위한 선택이었다.


 


행복했다. 학교를 뒤로 한 채 보냈던 그 일 년이. 벗어남이 나에게 새로운 공간을 내주었고, 나는 그 속에서 학교에서 채우지 못한 것들을 쌓아갔다. 집에만 있으면 분명 또 땅굴로 들어갈 게 분명했기에 일부로 바쁜 곳에서 알바를 시작했다. 거기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나의 또다른 면도 발견했다. 집순이인줄 알았던 내가 실은 밤 늦게까지 얘기하는 걸 좋아한다는 것,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바라고 있었다는 것. 알바를 시작하면서 휴학 전 계획했던 다른 목표들을 지워 내려갈 순 없었다. 그러나 다시 돌아간대도 그곳에서 알바를 할 것이다. 내 안에 새로운 면을 발견했던 그 순간들이 즐거웠기 때문이다.





- 결론과 시작으로 


 내 선택에 답은 없었다. 휴학을 해도 나는 여전히 불안한 상태였을 수도, 되려 고독의 끝을 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답을 생각하지 않았고 결과가 뚜렷하지 않았다. 확신을 갖지 않은 선택에서 내 예상과는 다른 것들이 나오니, 인생은 재밌고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것임을 알았다. 삶의 마감을 알리는 종이 치기 전까지의 모든 결과는 하나의 과정일 뿐이란 것도.


그럼에도 삶이 아직 어려운 건 답을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이 무한한 궤도 속에서 어쨌든 나는 삶을 계속 진행해야 한다. 계시를 받고 사명감에 인생을 사는 부류는 아니지만 이왕 태어난 거 이름 하난 날려야 하지 않겠나. 어쩌면 이런 생각에 삼 월의 백수가 되는 게 누구보다 무서워지는 것 같기도 하다. 대학생의 신분을 벗어나면 나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존재가 되니 말이다. 그럼 그 누구도 내 이름을 알지 못하니까.



그렇다면 알려야겠다. 이것이 졸업 전 내가 찍은 꼭지점이자, 나의 선택이다. 누군가 가만히 있는 나를 알아주기 바라는 건 욕심이다. 땅굴에 있는 자신을 볼 수 있는 건 나 하나 뿐이다. 그러니 쓰자. 꾸준히. 내가 나를 알아보고, 누군가가 나를 알아볼 수 있도록.


정리하자면 이 글은 졸업을 준비하는 대학생의 홍보지일 수도, 탈출기일 수도, 취업기일 수도 있다. 과정을 담고 있는 글이기에 바라는 것이 있다면 이 글을 보는 당신이 가끔 눈길 한번 보내주었으면 하는 것. 외로움을 많이 타는 편이니 욕심이 아니라면 자주 보았으면 좋겠다는 것.


 



따뜻한 봄이 오기 전 따스함을 먼저 느낄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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