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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차 Feb 13. 2020

일탈의 한계

1시간 38분



드라마 교육원 수업 날이었다. 선생님께서 과제 한 가지를 내주셨다. 지금까지 살면서 해본 적 없는 일을 해보고 감상문을 수필로 작성하는 것. 안 해본 것들이라. 과제 결과물은 투표로 일 등을 가려내기로 했기 때문에 나는 한참이나 생각에 잠겨 있었다. 선생님은 이외에도 여러 주의사항을 언급해주셨는데, 그 중 ‘되도록 삼가할 것들’을 말씀해주셨다.




이야기 중 어떤 것들은 범죄에 가까울 지도 모르는 것들이기에 삼가해야 할 얘기였고 어떤 것들은 너무나 흔히 해왔기 때문에 지양해야 할 것들이었다. 선생님은 말을 덧붙였다.





' 그거 안 돼요. 혼자서 전철 타고 한 바퀴 도는 거, 아무 버스나 타고 종점까지 가는 거.

  이미 너무 많이들 해왔어. '








당시 그 얘기를 들었을 땐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남다르게 해야지, 색다르게 해야지란 생각에 사로 잡혀 일상의 것엔 초점을 두지 않은 탓이었다. 별 구미가 당기지 않는 일이기도 했다. 나는 다른 계획을 짰고, 결과는 4등이었다.







그 드라마 수업은 무사히 수료를 마쳤고 나는 여전히 전철을 타고 다닌다. 학교에 갈 때도, 교육원에 갈 때도, 알바를 갈 때도. 목적지가 정해진 행로였기에 내가 타고 다니는 전철에 대해 의미를 새겨보는 일은 하지 않았다.






다만 어느 날은 집에 무척 가기 싫었다. 볼 일이 다 끝났지만 없는 일정을 만들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때 난 2호선 라인의 역 벤치에 앉아 있었다. 핸드폰을 꺼내 네이버에 검색을 하나 했다. 2호선 왕복 시간.


몇몇의 사람들이 지식인에 올린 글들을 확인했다. 다행이 답변이 달려있었다. 1시간 38분 정도 걸립니다. 대략의 시간도 아닌 명확한 시간을 아는 이 사람은 누구인 걸까. 전철 관계자인가 아님 2호선 왕복 경험자인가 혹 드라마 수업 과제를 했던 분인 걸까. 이 정도 시간이면 집에 가기 싫었던 마음이 바뀔 만할 것 같았다.






전철이 도착했고 나는 한 시간 삼십팔분의 여정 아닌 여정을 얻었다. 타고 보니 예전 일이 떠올랐다. 안 해본 것을 해보라는 건, 일종의 탈피를 체험하고 오라는 뜻이었을 텐데. 다수의 사람들이 전철과 버스를 택했다.



왜 많고 많은 것 중 일탈의 방법이 전철과 버스를 타는 것이었을까. 1시간 38분의 여정을 고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당장에 나는 지지한 집으로부터 도피하고 싶었던 것이었지만.








벗어나고 싶어 했음에도 일상을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의 사정이 궁금해졌다.



무엇이었을까. 내일도, 모레도, 매 번 전철을, 버스를 타야 할 것인데. 너무나도 많이 해서 하면 안 될. 그러나 항상 눅진하게 녹아 있을 이 일상에. 무릎 위, 무거운 책들을 넣어둔 가방을 감싸 안았다.





조금은 서글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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