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욕설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처음 동료들이 욕을 입에 달고 사는 것을 보며, '현장 일을 하는 사람들의 일상은 그런가 보다' 하고 무심히 넘겼다. 나의 욕은 찰지지도 않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재미를 줄 수도 없는 그런 것이었다.
하지만 일이 익숙해지면서 나도 모르게 욕을 입에 달기 시작했다.
깜깜한 새벽, 종량제 봉투를 드는 순간 매듭이 제대로 묶이지 않아 쓰레기가 거리에 흩뿌려지면, 나도 모르게 '씨발'이라는 욕설이 터져 나왔다. 다시 빗자루를 들고 청소를 해야 하는 상황에 대한 분노였다.
종량제 봉투를 압축차에 넣고 압축하는 순간, '툭' 하고 터지면서 오물이 밖으로 튀어나와 온몸에 뒤집어쓰게 될 때가 있다. 음식물을 종량제 봉투에 몰래 버리는 혼합 배출 때문이다. 그때도 나는 욕을 내뱉는다.
수거 동선에 갑자기 무단 투기와 불법 투기로 인한 거대한 쓰레기 더미가 등장할 때도 마찬가지다. 이삿짐센터나 택배 차량, 혹은 무허가 수거업체가 몰래 버리고 간 잔해들. 그들을 향해 분노의 욕설을 내뱉는다.
산더미 같은 시커먼 비닐이 종종 수거 동선에 나타난다. 영농 폐기물이다. 영농 폐기물은 별도의 수거장에 배출해야 하지만, 농민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 무책임함에 욕이 나온다.
재활용품을 수거하려 살피는 순간, 식품 가공 공장에서 배출한 것이 분명해 보이는 피 묻은 비닐 더미를 볼 때도 욕이 나온다.
무단 투기물을 수거하는 과정에서 날카로운 폐기물이 손끝을 찌를 때도 마찬가지다. 인테리어 업자들이 폐기물 처리 비용을 아끼기 위해 몰래 버린 건설 폐기물들이다.
저층 주거 단지에 몰려 사는 외국인 노동자나 이주 여성들이 종량제가 아닌 일반 비닐봉지에 버린 쓰레기를 보면서도 욕을 한다.
도시 지역과 시골 지역의 쓰레기 분리배출 수준의 차이를 보며 사회 전반의 의식에 대한 욕을 한다.
그렇게 열심히 치우는데도 줄어들 기미는 보이지 않고 계속 늘어나는 쓰레기를 보면서도 욕을 한다.
나의 욕은 더 이상 감정을 숨기기 위한 방편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 현장의 비명이었다. 매 순간 겪는 비위생적이고 무책임한 시민들의 행태, 그리고 그 모든 결과물을 맨몸으로 받아내야 하는 현장의 고통이 욕설이라는 형태로 터져 나오는 것이었다. 나는 이제 그 현장과 동화되어, 분노의 비명을 함께 지르는 욕쟁이가 되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