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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목란 바라기 May 30. 2018

악성으로 전락한 사교육, 역습의 기회를 노리는 공교육

  예전에 블로그에 올린 글을 재탕했습니다.






    인터넷의 바다에서 헤엄치다가 현재 고등학생들이 사교육에 대해 언급한 블로그에 들어가 본 적이 있다. 원문은 학원가에서 사회탐구를 가르치던 최진기 선생이나 다른 소위 1타 강사들이 야구 선수 연봉 뺨 후려칠 정도로 돈을 번다는 내용이었는데, 아래 고등학생들이 이 선생님들은 정말 잘 가르쳐주셔서 감사하다는 댓글들, 학교 선생님들 수준이 형편없다, 심지어 수업은 안 하고 학원 선생들이 강의하는 인강만 하는 선생들도 있다는 댓글들이 줄을 이었다. 이 댓글들이 많은 고등학생들의 생각을 정말로 대변한다면, 요컨대 공교육은 이미 회생불능이며,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서는 사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 이미 학생들에게는 상식이 되어버렸다는 셈이 된다. 뿐만 아니라 마침 페북에서도 국제 관계에 대해서 심도 있는 글을 쓰시는 어떤 대학생 분도 사교육이 과연 무조건 사라져야 할 악의 화신인가라고 의문을 제기한 글이 타임라인을 넘어왔다. 이런 모습들이 불현듯 사교육 반대를 외치는 주로 진보 성향을 띄는 교육자 분들의 모습과 대비되면서, 다음과 같은 의문이 들었다. 사교육을 제한하고, 공교육을 부활시키는 것이 과연 학생들의 위한 일이며,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일까?


    집이 부유한 아이들이 가난한 집 아이들보다 좋은 대학에 입학한다는 사회현상은 어제 오늘 관측되는 것이 아니며, 그 이유 가운데 하나가 사교육이라는 것은 부정하기 힘들다. 예외도 있지만, 아직까지 한국에서 학력은 미래 소득을 결정하는 주된 요인이며, 부유한 집 자식이 더 좋은 교육을 받아 부의 대물림 현상이 지속되는 듯하다. 물론 부의 대물림 현상이 비도덕적이라고 손가락질 할 생각은 없다. 다만 가난하지만 공부 재능과 열정이 있는 아이들이 좋은 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기회가 사교육때문에 줄어든다면 시정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인터넷 강의, 즉 인강의 등장은 이런 사교육의 폐해를 감소시키는 획기가 되었다. 산동네 사는 아이들이라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만 않는다면, 소수의 강남에 사는 부유한 집 아이들이 듣는 강의를 들을 기회가 생겼다. 즉, 인강이 등장한 이후 과외등 기존의 사교육으로는 학생의 성적을 상위권으로 끌어올릴 수 없게 되었다. 왜냐하면 예전에는 비전처럼 전승된 강의를 이제는 누구든지 들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학부모들이 사교육으로 통해 자식의 성적을 상위권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고 믿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자신의 아이들이나 다른 아이들, 모두 사교육 시장에서 비슷한 강의를 듣고 있는데, 어떻게 성적을 올릴 수 있을까? 수준이 비슷하다면 더 많이 그리고 더 일찍 사교육을 시작하자는 결론을 내린 것 같다. 그래서 학원 뺑뺑이와 선행학습이 예전보다 더 심해진 듯 하다. 아직 몸도 덜 여문 아이들에게 어른들도 체력적으로 부담가는 학원 뺑뺑이를 돌려 정작 학교 수업 시간에는 영혼이 안드로메다로 사라진 경우가 부지기수이다. 뿐만 아니라 엊그제 어떤 학생에게 자신은 중 3 때 물리 2에 나오는 상대성 이론을 공부한 적이 있다는 기상천외한 소리를 들었다.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이미 한계를 넘어선 학생들이 공부에 질리는 것은 당연하다. 뿐만 아니라 한정된 시간에 성적만 잘 나오면 된다는 습관이 들어버린다. 달랑 한 문장 써놓고 이거 맞아요 틀려요?라고 묻는 뒷목을 잡게 만드는 일들이 이제는 일상이 되었다. 그래도 아직 자신의 욕망을 순수하게 표출하는 6, 7 학년 학생들이니 이런 질문을 한다. 머리가 굵어지면 그냥 어디서 글을 베끼려고 눈에 혈안이 된다. 중, 고등 교육이 이럴진대 대학생 레포트에 표절이 난무하지 않으면 이상할 것이다.


    그래서 이제 오히려 사교육의 확산, 특히 인강은 학생의 실력을 상향 평준화시키는데 일조했지만, 그 댓가로 잠재력을 발현할 수 있는 기회를 앗아갔다. 사교육을 받아야 명문대에 입학할 정도로 실력이 향상되는 것이 아니라, 사교육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운좋게 다른 학생들보다 좋은 성적을 받았다가 옳다고 본다. 교과서만 공부해서 서울대에 입학했어요라는 말이 도시 전설 정도로 비웃음 당하지만, 이게 진실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학원이 학생들의 잠재력을 훼손하는 전형적인 사례로 토플이 있다. 




     국제 학교 DP 코스에서 경영이나 심리학, 역사학 등 과목에서 배우는 교재들의 난이도는 토플을 쌈싸먹는 수준이다. 그런데 그 교재들을 가지고 이 년이나 공부하는데 그 보다 훨씬 쉬운 토플 리딩 지문 만점이 안 나오는 학생들이 수두룩하다. 이런 현상은 한국처럼 학교 공부는 뒷전인 채 방과후 학원에 가서 문제푸는 훈련만 하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토플 리딩은 지문에 언급된 어떤 사건이 발생한 원인과 그 해결책을 본인의 언어로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누구나 만점 가까이 받을 수 있다. 하지만 텍스트를 분석하는 능력이 결여된 학생들은 장담컨대 대개 토플 리딩 27-28점, 리스닝 25점대에서 좌절하게 된다. 그런데 한국식 사교육은 학생들의 독해력과 분석력과 떨어뜨리는 주범이다. 왜냐하면 독해력과 분석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학생들이 직접 텍스트를 요약, 정리하고, 숨겨진 내용을 추론하는 연습을 해야하는데, 시간 낭비라는 이유로 학원에 가서 강사들이 준비해 둔 요점만 공부하고, 스스로 완전히 이해했다는 착각에 빠지게 되기 때문이다. 비유하자면, 일류요리사가 되려는 자가 칼질, 불질 연습은 하지 않고 요리 프로그램만 시청하려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사교육의 보급이 오히려 사교육 본래의 목적을 훼손하는 결과를 일으키고 있다. 학생이 사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실력이 향상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학업 잠재력을 훼손당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물론 서두에서 관찰한 대로 어떤 학생들에게는 사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기초가 워낙 떨어져 공부 자체를 포기하는 학생들, 공부 자체는 포기하지 않았는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학생들에게는 수준급의 강의를 제공하는 인강은 사막의 오아시스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사교육의 긍정적인 역할은 여기까지이다. 여기에 어쩌면 공교육이 부활할 수 있는 실마리가 숨어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만약에 공교육이 현재 한국 사교육으로는 불가능한 학생들의 사고력 향상을 가능하게 한다면 말이다.   

     학교 일선에서도 수업대신 1타 강사의 인강을 듣게 시키는 경우가 많으며, 상당수의 학생들도 강의력이 떨어지는 학교 선생님들 수업보다 인강을 더 선호한다고 서두에서 언급한 적이있다. 그럼 아예 그냥 그런 업체에 기초 지식 교육을 통째로 맡기고, 학교에서는 토론 및 과제 중심으로 수업하고 평가하면 어떨까. 우선 선생님 한 명 당 학생을 스무 명 미만으로 수업을 구성한다. 그리고 교육부에서 교육 과정 기준만 제시하고, 구체적인 수업 내용과 평가를 학교 선생님들로 하여금 자율적으로 설계, 수행하게 만드는 것이다. 학생 평가는 그들이 주어진 과제를 어떻게 해결하는지에 초점을 둔다. 물론 현재 대입 수시처럼 학교 수행 과제를 대신하는 사교육 시장이 생길 수도 있다. 하지만 학생이 스스로 과제를 해결하지 않고, 어디서 베끼거나, 누가 관련 보고서를 대신 작성해줄 수 있다는 것이 발각되면, 표절로 걸어 정학시키면 된다. 선생님 한 분이 관리해야 하는 학생들이 숫자가 소수이기 때문에 충분히 잡아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과제 중심의 수업과 평가이기 때문에 학생들이 물리적으로 이를 수행할 시간이 필요하다. 학원 뺑뺑이? 그런 거 했다가 시간부족으로 죽도 밥도 안 되는 일이 발생한다. 그렇다고 어설프게 학원에 숙제를 의뢰했다가 정학당해서 오히려 대학 입시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시험보다 수업 시간에 과제를 어떻게 수행했는지가 내신점수에서 훨씬 큰 비중을 차지한다면 학생들이 사교육을 받아야할 이유가 줄어들게 된다. 요컨대 국제학교에서 시행하는 IB나 해외 대학에서 수업을 렉쳐와 디스커션으로 나누는 것과 비슷한 교육 제도를 만들자는 말이다.  


    사실 위에서 언급한 방법은 학생부 종합 전형을 수정하면 충분히 가능하리라고 생각한다. 뭐 대치동 등으로 대표되는 고액 사교육 시장에서 이 전형을 대비해, 도우미들이 자기 소개서나 학생 연구들을 대신 작성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학생이 졸업 연구나, 에세이를 어떻게 진척시키고 있는지 학교 선생님들이 완벽하게 장악할 수 있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이것 역시 외부에서 도움을 받았다는 것이 탄로날 경우 표절로 간주할 수 있다. 자기 소개서는 기본적으로 학생들이 작성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교육의 손길이 미칠 수 밖에 없다고 예외로 논할 수 밖에 없지만 말이다. 현재  국가 지표 체계 사이트에 나온 교원 1인당 학생 수는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15명을 넘지 않는다. 

http://www.index.go.kr/potal/main/EachDtlPageDetail.do?idx_cd=1521

   

    물론 과목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지금도 선생님 한 명이 소수의 학생을 고등학교 입학부터 졸업까지 관리하는 것이 가능하다.   

    역사를 돌이켜 보면 사교육은 감기처럼 제거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반드시 나쁜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악성 사교육일 뿐이다. 그리고 만약에 현재 수시나 학생부 종합 전형을 수정하면 학생을 문제 풀이에 급급하게 만든 악성 사교육의 폐해를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근래 페북 등에서 발행된 여러 분야의 글들 가운데 깊이있는 지식과 통찰력있는 관점은 나이에 비례하지 않음을 증명하는 것들이 많다. 반면에, 지금도 그렇지만, 내가 대학 갓 졸업했을 때, 혹은 석사를 막 시작했을 때 과연 그런 글들을 쓸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문제 풀이가 고등학교 교육의 전부였던 수능 세대인 나보다, 물론 대학 입시를 위해서지만, 본인의 좋아하는 분야를 미리 탐색하고, 이에 관련된 전문 지식을 공부해야 했던 수시 세대들이 확실히 사고의 깊이와 폭이 더 넓은 것 같다. 물론 수시가 획일화된 시험을 통한 줄세우기보다 공정한 출세의 기준을 마련해주지 않는다. 하지만 교육의 목적은 학생으로 하여금 사람답게 사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대를 죽이고 자신은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을 심어주는 배틀로얄을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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