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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목란 바라기 May 22. 2019

1화: 삼진三晉의 분열, 전국시대의 개막

사람은 아무리 유능해도 신처럼 전지 전능하지 않은 이상 한 번 쯤은 실패하기 마련이다. 만약에 그가 도덕적이지 못하다면 아무도 그를 나락에서 구원해주지 않을 것이다. 전통시대 학자들도 도덕성을 강조한 까닭도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이다. 그들이 도덕 근본주의자, 속칭 유교 탈레반이기 때문이 아니다. 


사마광司馬光의《자치통감資治通鑒》은 바로 도덕에 대한 전통시대 중국학자들의 견해를 역사 사건을 통해 보여주는 작품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 작품을 편년체 사서, 즉 연대 순으로 사건을 나열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자치통감》이 자세하게 기록한 사건들만을 연결해서 읽어보면, 기승전결이 갖춰져 있는 일종의 이야기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사마광은《자치통감》의 서두에서 천자가 비록 무능하고 비루하여도 신하들을 통치할 수 있는 권력을 지닌 것은 하늘이 명령하고 사람들이 귀의해서 발생한 기강 덕분이라고 하였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천자의 권력은 영원하지 않으며, 덕이 쇠하면 산실된다고 하였다. 


주나라 말기 유왕幽王과 여왕厲王이 도리를 다하지 못해, 제후들과 대부들이 멋대로 정치를 돌보기 시작하였고, 천자의 권력도 땅에 떨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유명한 춘추오패春秋五霸 가운데 하나인 진문공晉文公도 천자처럼 장례식을 치룰 수 없었다. 왜냐하면 다른 제후국들에게 선전포고의 빌미를 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노나라 대부 계씨季氏가 아무리 전횡을 저질렀어도, 감히 노나라 제후의 지위를 노리지 못했다. 또한 진晉나라의 세 대부의 가문, 위씨魏氏, 한씨韓氏, 조씨趙氏가 날로 강성해져도, 차마 역신이 될 수는 없었다. 그런데 저 세 가문은 끝내 천자에게 독립을 허락받고 제후가 되었다. 그래서 춘추 상하 구별이 엉클어져서 기강이 파괴되고, 난세가 도래하였다. 그래서 사마광이 저 세 가문이 진晉나라를 나누어 먹은 사건을《자치통감》의 시작으로 삼은 것이다. 난세에 얼마나 도덕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기 위해서 말이다.


진晉나라의 세 대부인, 위씨, 한씨, 조씨가 주군의 땅을 갈라먹기 바로 직전, 가장 강한 대부는 바로 지씨智氏였다. 지씨의 우두머리 지선자智宣子가 요瑤를 후계자로 삼으려고 하자, 같은 가문의 지과智果가 반대했다. 지요가 비록 평범한 사람보다 훨씬 총명하고, 활쏘기에 필요한 팔과 다리의 힘도 우월하며, 논변에도 탁월하고, 의지도 강하지만, 인자함, 즉  타인을 생각하는 마음이 아주 부족하기 때문에, 그가 지씨 가문의 우두머리가 된다면 멸문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지선자는 이를 듣지 않고 지요를 후계자로 임명하였고, 나중에 지양자智襄子가 되었다. 지양자는 지씨 가문의 세력을 믿고, 다른 대부들을 모욕하고, 급기야 한씨와 위씨에게서 땅을 빼앗기까지 하였다. 이에 한씨와 위씨는 지씨에게 원한을 품었다. 지양자는 조씨 가문의 땅도 빼앗으려 했지만, 조양자趙襄子는 허락하지 않았다. 이에 지양자는 위씨와 한씨 가문의 병력도 동원해서 조씨를 공격하였다. 조씨는 완강하게 저항하였다. 세 제후들은 근처의 강을 이용해서 조씨의 성을 수공으로 공격하였고, 곧 물에 잠겼다. 위씨와 한씨가 수공의 위력에 전율할 즈음, 조씨에게서 지씨를 배신해달라는 사절이 왔다.


"오늘 조씨가 멸망하면, 다음은 위씨와 한씨 차례입니다."


지씨에게 앙심을 품은 위씨와 한씨는 쉽게 설득되었고, 물길을 틀어 지씨의 부대를 잠기게 만들었다.  


이 일에 대해 사마광을 이렇게 평론하였다. 지씨의 멸망은 재능이 덕을 능가했기 때문이다. 재능과 덕은 다를진대 세상에는 이를 분간할 줄 아는 이가 없고, 그냥 현명하다고 퉁치는데, 이 때문에 사람을 잃어버린다. 덕이 재능을 능가하면 군자이지만, 재능이 덕을 능가하면 소인일 뿐이며, 소인을 취하는 것은 어리석은 이를 받아들이는 것만 못하다. 왜냐하면 소인은 재능을 가지고 악행을 쉬이 저지르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설사 좋지 못한 일을 기도한다고 하더라도, 타인에게 견제받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위씨, 한씨, 조씨가 진나라를 셋으로 분할한 뒤, 위씨는 위문후魏文侯라는 걸출한 지도자의 지휘아래 중원의 패자로 떠올랐다. 위문후는 사방에서 현명한 이들을 찾았다. 예컨대 토지제도를 개혁해서 군사력을 획기적으로 제고시킨 이극李克(이회李悝라고도 불린다)도 위문후가 모신 인재 가운데 한 명이었다. 그러나 위문후 역시 사람이라 초빙한 인재 가운데 재능이 덕을 능가하여 소인으로 취급되는 부류도 있었다. 바로 저 유명한 병법가인 오기吳起이다.


오기는 위衛나라 사람으로 일찍이 노魯나라에서 벼슬을 하였다. 어느날 제齊나라가 노나라를 공격하자, 노나라 사람들은 오기를 장군으로 임명하였다. 그런데 오기의 아내가 제나라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고 도리어 그를 의심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오기는 아내를 죽이고 장군으로 임명해주기를 간청했으며, 결국 제나라 군대를 대파하였다. 하지만 이를 두고 노후魯侯에게 누군가가 말했다.


"오기는 처음에는 효성으로 유명한 증삼曾參을 모셨지만, 어머니께서 돌아가셨을 때 달려가서 장례를 치루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는 아내를 죽여 장군이 되기를 원했습니다. 이렇게 잔인한 오기가 비록 노나라에 작은 승리를 가져다 줄지라도 결국 여러 제후들의 목표로 전락할 뿐입니다."


오기는 이 소식을 듣고 위나라로 망명하였고, 위문후에게 유능함을 인정받아 중용받았으며, 진秦나라를 공격하여 다섯 개의 성을 함락하였다. 오기는 진나라를 공략하면서 휘하 사졸들과 침식을 같이 했고, 심지어 어떤 병사에게 종기가 나자 손수 입으로 빨아서 제거해 주기까지 하였다. 그런데 그 병졸의 어미가 이 일을 듣자 울기 시작하였다.


"예전에  오기장군께서 그 녀석 아비의 종기를 빨아주신 적이 있습니다. 이에 아비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싸우다가 전사했지요. 지금 오기 장군께서 자식의 종기를 빨아주셨으니 그 녀석이 어디에서 죽을지 모르겠습니다."


오기는 입신양명을 위해 아내를 죽였다. 그렇다면 정말 병사들을 위해 직접 종기를 빨았을까? 한편 위문후가 죽고 그의 뒤를 이은 위무후魏武侯는 순조롭게 진나라 정벌을 진행하였고, 결국 황하 서쪽, 즉 오늘날 섬서성 지방까지 진출하였다. 그리고 위무후는 새로 상相이라는 관직을 신설하고, 전문田文을 임명하였다. 하지만 오기는 이에 불만을 품고, 전문을 찾아갔다. 


"사졸로 하여금 필사적으로 싸우게 만들고, 적국으로 하여금 음모를 꾸미지 못하게 만들며, 백성을 다스리고, 경제를 발전시키며, 심지어 이 황하 서쪽의 새로 점령한 땅을 지키는 일에 있어서 그대와 나 누가 더 뛰어나오?"


전문이 말했다.


"주인은 아직 어려 나라에 의심을 품은 이가 많습니다. 대신들은 아직 다 복종하지 않고, 백성들도 아직 신뢰를 보내지 않고 있지요. 이런 상황에서 이 직책을 맡아야 하는 건 그대입니까. 아니면 저 입니까."


오기는 오랫동안 침묵한 끝에 입을 열었다.


"그대요."


시간이 흘러 오기는 위나라의 상이 된 공숙公叔의 계략에 빠져 초나라로 갔다. 초도왕楚悼王은 평소에 오기의 현명함을 들었기 때문에 그를 상으로 임명하였다. 오기는 군주의 권력을 강화시키고, 전투에 능한 이들을 양성했다. 결국 남으로 백월百越,북으로는 삼진, 서로는 진나라까지 정벌하였다. 제후들은 초나라를 두려워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초나라의 귀족, 대신들 가운데 오기에게 원망을 품은 이가 늘어났다. 오기를 중용하던 초도왕이 죽자 귀족과 대신들은 오기를 공격했다. 그러자 오기는 자신에게 은혜를 베푼 초도왕의 시체 속에 숨었다. 하지만 반란군은 왕의 시체에도 화살을 쏘아대었고, 오기 역시 죽었다.  


사마광은 오기가 초나라에서 부국강병책을 성공적으로 추진했지만, 마지막에 구차하게 목숨을 부지하려다 죽었다는 이야기를 적은 뒤, 갑자기 맹자孟子의 스승인 자사子思가 위후衛侯에게 올린 조언을 기록하였다. 겉으로 보면 오기와 자사는 아무 관련이 없는 것 같지만, 자사가 위후에게 한 말을 곱씹어 보면, 이는 사마광이 자사의 입을 빌려 초나라가 오기를 등용한 일을 평가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성인聖人이 사람을 관리하는 것은 목수가 나무를 다루는 것과 같습니다. 나무가 아무리 휘어져 있어도 훌륭한 목수는 버리지 않습니다. 지금 군주께서는 전국시대에 계십니다. 그런데 나라를 지킬 재목을 가리켜 일전에 그가 백성을 핍박해서 세금을 너무 많이 거두었다는 이유로 등용하지 않으려고 하십니다."


하지만 유능한 장수가 과연 반드시 군주에게 충성을 바칠까? 사마광은 오기의 죽음과 자사의 말을 기록한 뒤, 군주와 신하들 간에 벌어지는 쟁투를 담담하게 기록하였다. 한韓나라의 군주는 신하들에게 시해당했다. 반면에 제나라의 위왕威王은 직접 귀족들이 다스리는 지역을 시찰하고, 자신에게 아부하던 이들을 죽여버렸다. 이 때부터 제나라는 강자로 떠오르게 되었다. 


《자치통감》1권의 이야기는 여기서 막을 내린다. 기존의 예의와 법도가 무너져 이제 상대를 공격해서 멸망시키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시대가 도래했다. 덕이 부족해도 재능만 있으면, 설사 악행을 저지를지 모른다고 하더라도,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는 등용해야 했다. 이제 세상은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 사마광은 《자치통감》2권의 서두에서 진효공秦孝公과 상앙商鞅의 고사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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