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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신과 의사 나종호 Jun 17. 2020

슬기로운 아빠 생활

삼개월간의 육아 일기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는 이상, 그 사람을 완전히 이해하기란 불가능한 거야  - 그 사람 살가죽을 입고, 그 사람이 되어서 걸어 다니지 않는 이상.                                                        하퍼 리 (Harper Lee), <앵무새 죽이기>


뉴욕에서의 마지막 세 달을 어떻게 보낼지 나름 계획이 많았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인해, 지난 삼개월간 나는 집에서 원격 의료로 환자들을 보며, 세 살 된 딸아이와 24시간 함께 있는 생활을 계속해 왔다. 뉴욕의 모든 병원들은 밀려드는 코로나 바이러스 환자들로 사실 상 포화 상태가 되었었고, 우리 과 레지던트들 또한 절반 가량 내과로 증원을 갔다. 나의 경우, 아내가 코로나 바이러스 병동으로 변해버린 병원으로 매일 아침 7시에 출근해서 집에 저녁 7시가 넘어서야 돌아왔고, 격주로 24시간 주말 당직을 서곤 했기 때문에, 딸아이 학교가 문을 닫은 상태에서, 선택지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전선에서 코로나 바이러스와 싸우는 동료들을 앞두고, 집에만 있는 것이 그렇게 마음 편한 일은 아니었다.


죄책감을 느낄 틈이 많진 않았다. 바로 시작된 재택근무를 하는 전업 아빠로서의 삶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환자를 보며 아이와 티격태격하다 보면, 해는 어느새 뉘엿뉘엿 지고 있었고, 아내가 퇴근을 하고 돌아오면, 나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밀린 일을 하기 시작했다.


지난 삼 개월 간, 나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세 살인  딸아이와 재택근무를 하게 되었다.


정신과 의사를 하며, 배운 것 중 가장 큰 깨달음은 바로 공감의 중요성, 동시에 공감의 어려움이다. 삼 개월의 시간 동안, 산후 우울 증상으로 내원한 환자들은 물론이고, 주 양육자로서의 육아 스트레스/우울증을 호소하던 환자들, 그리고 무엇보다, 작년 한 해 동안 아내가 일을 쉬며 전업 육아를 했던 때의 생각을 많이 했다. 주 양육자로 살아보지 않고, 육아를 오롯이 담당하는 아빠, 엄마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까. 나는 스스로를 나름 주어진 여건에서 육아에 최선을 다하는 아빠였다고 생각해왔지만, 아이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되는 경험은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아내가 일을 쉴 당시에는, 일을 마친 후에 또 육아를 해야 하는 현실이 야속할 때도 있었다. '나는 일하고 왔는데, 쉬지도 못하네' 하고 생각했던 적이 없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반대편에 서보니, 그 당시 나에게 쉬라고 하지 못한 아내의 심정이 이해가 갔다. 오히려, 그렇게 마음속으로 생각했던 것이 미안했다. 하루 종일 아이와 단 둘이 있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더 힘든 일이었기 때문이다. 얼마나 쉬고 싶었을까, 그때의 딸아이는 지금보다 훨씬 갓난쟁이라 하루 종일 손도 많이 갔었을 텐데. 그때 아내에게 조금이라도 쉬라고 말하지 못한 것이 못내 미안했다.


아이를 하루 종일 돌보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대단히, 엄청난 스트레스였다.


일하고 돌아온 사람에게도, 육아를 하루 종일 하는 사람에게도. 그리고, 이는 나의 부성애와 무관했다. 딸아이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는다는 상투적 표현조차 절로 나올 만큼 사랑스러웠지만, 그와 별개로 나의 체력과 정신적 에너지는 한계가 있었다. 하루 종일 육아를 한 후에, 아이가 잠이 들고 나면, 나도, 아내도, 쓰러져 잠들기 일수였다.  


지난 삼 년간, 그렇게 단순한 명제를 수용하는 것이 나에게는 참 힘들었던 것 같다. 레지던트 기간 동안 늘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나에게는 육아라는 거대한 산이 기다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일과 후에 열심히 아내와 함께 육아를 하고 나면, 열 시가 되어서나 딸아이는 잠에 들었었다. 그때부터 밀린 집안 정리와 뒤치다꺼리를 하고 나면, 잘 시간이 되고, 다음날 아침에 출근하고 그랬었다.


하지만, 그렇게 힘들었음에도 나는 내가 (혹은 아내가), 육아 때문에 힘들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었었다. 육아라는 성스러운 일을 힘들어하면, 내가 나쁜 부모가 될 것만 같았달까. 누군가가 나에게 손가락질을 할 것만 같았다.


돌이켜보면, 그때 가장 필요했던 건, 그 상황이 서로에게 스트레스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 (즉, 육아가 힘들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흔히 우리가 사랑하는 대상과의 관계에서 흑백 논리 혹은 이분법적 사고를 하곤 한다. '너 나 오늘 집에 안 데려다줘? 사랑이 식었구나?'와 같이, ' 육아가 힘들다면, 난 좋은 아빠 (엄마)가 아닌 거야' 생각하게 된다. 나 또한, 육아로 인해 힘들어하는 스스로를 탓하며 죄책감을 느끼곤 했었다. 지금은, 중요한 것은 육아를 할 때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보다는, 육아가 나에게 큰 스트레스라는 사실과, 자녀에 대한 사랑은 공존할 수 있음을 아는 것이란 생각을 많이 한다. 그리고 건강한 방법들로 그 스트레스를 해소하려고 한다.


딸아이와 산책하는 시간은 나의 하루 중에 가장 큰 행복이었다. (나가기 전의 준비 단계만 생략한다면..)


초기의 힘든 과정을 거치고 나서, 전업 아빠로서 살 수 있는 시간이 끝나감이 초조해졌다. 정말 많이 힘들었지만,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 같은 시간 앞에서. 이제 이렇게 온전히 딸아이와 단 둘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날이 언제일까. 생각하니 하루하루가 소중해졌다.


미국에 오고 싶었던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가족 중심적인 삶을 살고 싶어서였다. 미국에서의 레지던트 생활은 그 기대치를 완전히 채워줄 정도로 여유 있지는 않았지만, 지난 3개월의 생활은 그 부족함을 메워줄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비극적인 코로나 바이러스가 가져다준, 예상치 못한 선물이었다. 이제 펠로우 업무를 시작하느라 그만큼 딸아이와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없겠지. 그래도 지난 삼 개월을 동력 삼아 다시 새롭게 출발하는데 큰 힘이 될 것 같다.


또한, (꼴랑 삼 개월이었지만) 딸아이와 찰떡같이 붙어서 보낸 시간만큼, 많은 주 양육자들의 마음, 그들이 감당해야 하는 스트레스, 그리고 사고 과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어서 감사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과거와 현재의 아내, 그리고 과거의 우리를 더 이해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음에 감사한다. 그 이해를 바탕으로, 현재의 우리 가족은 더 단단해질 수 있었던 것 같다.    


이 슬픈 기간을 행복하게 떠올릴 수 있게 전선에서 싸워준, 아내를 비롯한 동료 의료진들에게 이 글을 빌어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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