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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장난과 정신병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후기 이어서

말장난은 그저 웃음을 자아내는 장난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언어의 규칙을 의도적

으로 비트는 행위로,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단어들의 의미를 일탈시키고 새로운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이 과정에서 말장난은 언어의 유동성을 드러내며, 고정된 의미를 전달하는 도구가 아닌, 끊임없이 변형되고 재구성될 수 있는 매체로서의 언어를 탐구한다.


우리는 일상 담화 속에서 명료함과 일관성을 중시하지만, 말장난은 그 틀을 넘어서며 예기치 못한 의미를 창출한다. 이때 말장난은 단순한 유희를 넘어 창조적 행위가 되며, 일상적인 언어 사용의 경직된 틀을 깨뜨리고,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거나 기존의 관점을 전복시킨다. 이는 언어의 본질을 다시금 생각하게 만들며, 말장난의 진정한 힘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그러나 정신병적 말장난의 경우, 그 의미는 전혀 다른 차원으로 확장된다. 정신병적 주체에게서 나타나는 말장난은 의도적인 유희가 아니다.  튀어나오는 언어의 파편들이다. 이들에게 언어는 더 이상 고정된 의미를 전달하는 도구가 아니며, 혼란과 파열의 형태로 나타난다. 어떤 의도도 의미도 없으므로 장난이라고 부르기도 타당하지 않을 수 있다. 즉, 상식적 농담의 지위와 결을 달리 하며, 농담을 정신병적 주체의 차원에서 재정의한다면 그런 농담은 항상 실천된다고 봐야 한다.


 정신병적 말장난은 통제 불가능한 힘에 의해 발생하는 것으로, 이는 언어가 안정적인 의미를 전달하는 도구가 아니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의도와 통제를 벗어난 언어는 혼돈 속에서 뒤섞이고,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정신병적 주체는 언어, 즉 상징적 대타자의 질서와 완전하게 동일화되지 못하고, 그 결과로 상징적 세계와의 단절을 경험한다. 정신병적 주체는 언어의 구조 속에서 의미를 고정하고 재구성할 수 있는 능력이 결핍되어 있으며, 따라서 그 언어적 표현은 일반적인 상징적 규범에서 벗어나기 쉽다. 정신병적 주체는 상징적 질서와의 단절로 인해 이 실재와 독특하게 접촉하게 된다.


라깡은 이를 상징적 대타자의 결여와 연결 짓는다. 일반적으로 인간 주체는 상징적 대타자(언어, 법, 사회적 규범)를 통해 자신의 욕망을 규제하고, 현실을 구조화하며, 자아를 구성한다. 그러나 정신병적 주체는 이 상징적 대타자와의 연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실재와의 경계가 흐려지고, 그로 인해 상징적 질서가 아닌 실재에 의해 압도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실재와의 접촉은 주체에게 강렬하고 때로는 공포스러운 경험이 될 수 있다. 실재는 그 자체로 무질서하고 혼돈적이며, 상징적 구조에 의해 보호받지 못한 주체는 이 실재와의 직접적 조우로 인해 일상적인 현실 감각을 상실할 위험에 처한다. 정신병적 주체는 실재를 이해하거나 통제할 수 있는 상징적 틀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이 압도적인 실재와 마주하게 되며, 그 결과로써 현실을 왜곡되거나 불연속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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