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화가 맞나?
"아이스 바닐라 라떼 한 잔요. 음..."
잠시 뜸을 들이며,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테이크아웃 잔에 담아주세요."
덥지도, 습하지도 않은 바람이
머릿결을 살랑 흔들며 지나갔다.
테이크아웃 잔에 담긴 얼음의 온도도 마음에 들었고,
커다란 그림자를 드리운 나무 아래,
벤치가 비어 있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기분 좋은 날이었다.
공원을 걷는 사람들,
킥보드가 아직 어색한지 몇 번 발을 굴리다 멈춰 선 아이,
축구를 하며 뛰노는 학생들...
그런데 왜, 공이 내 눈앞에 있는 거지?
빠르게 피하라는 머리의 명령과 달리
몸은 느리게 반응했고,
공은 그대로 내 손을 부딪히고 떨어졌다.
그 순간, 주변 풍경이 멈춘 듯했고
세상이 잠시 음소거되었다.
마음에 들었던 차가운 온도가
내 몸을 적시는 순간, 불쾌함으로 바뀌었고,
끈적하게 달라붙은 옷은
끈적한 감정까지 불러왔다.
참을까? 아니, 뭐라도 해야 될 것 같아.
그래, 화를 내보자.
일단 눈썹을 살짝 올리고, 입을 꾹 다문다.
눈동자를 다가오는 학생에게 고정하려는데…
이리저리 흔들렸다.
다시 고개를 바로잡았지만,
이번엔 눈꼬리가 살짝 떨리고
턱은 괜히 뻣뻣해졌다.
자세도 바꿔야 할 것 같아 상체를 살짝 세웠다.
근데 팔은? 팔은 어디다 둬야 해?
팔짱을 끼자니 너무 세 보이고,
가만히 두자니 기세가 안 서는 것 같고.
결국 어정쩡하게 허벅지를 톡톡 건드리다,
손끝만 허공에서 파닥이는
이상한 포즈가 완성됐다.
어정쩡하게 자세를 잡고 화를 낼 준비를 하는 나에게,
공을 찬 걸로 보이는 학생이 쭈뼛 다가왔다.
이제 말해야 할 차례인데,
입술이 달싹했지만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아니, 그게…"
상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봤고,
나는 그 눈빛에 살짝 움찔했다.
그래도 한 번 더 용기를 내서
“조심했어야지…”
라고 말은 꺼냈지만,
정작 하고 싶은 말은 목구멍에서 자꾸 되돌아갔다.
‘이쯤 되면 눈치껏 사과하란 말이야...’
라는 눈빛이었는데... 전달이 됐을까?
결국
“그냥 됐어. 앞으로 조심해.”
작게 한마디 툭 던지고
혼자 승부 끝난 사람처럼 고개를 돌렸다.
비워진 커피컵을 달랑거리며 들고,
자꾸만 몸에 달라붙으려는 옷자락을 붙잡고 돌아선다.
아… 방금 그건 화가 맞았던 걸까?
아니지, 좀 더 이렇게 말했어야 했는데.
아니면 정색한 다음 이렇게 멋있게 돌아섰어야 했는데!
그 순간, 들려오는 학생의 목소리.
"네, 죄송합니다."
그래, 그거야.
사과했으면 됐어. 그래, 됐는데... 왜 찝찝하지.
힘주어 잘못 그린 그림을
억지로 지우고 남은 연필 자국처럼,
찝찝한 감정이 남아 있다.
돌아서는 나의 뒷모습을
여러 개의 눈동자가 따라붙는 것 같다.
부끄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