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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하늘 Apr 30. 2024

보건교사의 브런치 입성기(1)

보건교사 7년 차.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먹다.


2024년. 정규 보건교사가 된 지 7년 차.

학교와 나의 인연은 20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는 2016년 초등학교 오전 시간강사를 했으며, 2018년 임용고시 합격 후 지난 6년간 중학교에서 근무했고, 이제 고등학교에서 근무 중인 보건교사다.


보건교사가 되기 전의 내 이력서에는 국립대학병원 간호사로 7년 하고 4개월이라는 시간이 경력으로 찍혀있다. 아버지가 토목 관련 일을 하셨기에 막연하게 건축과 관련해 일을 해보고 싶다는 꿈을 꾸던 고등학교 시절, 고1, 그때 IMF가 터졌다. 그리고 고3이 되어 진로를 결정해야 하는 시기가 다가왔다. 나름 교내 우수학생들 30명만 모아 운영하는 특별 자습반에 들어가 공부를 했을 정도로 비교적 좋은 성적을 유지했었는데, 수능점수는 기대만큼 나오지 않았다. 평범한 지방 광역시에서 평범한 집안의 맏딸로 살던 나는 그동안 한 번도 무엇을 해봐야겠다라든지 이걸 전공하면 무슨 일을 할 수 있지에 대한 고민을 진지하게 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저 기대에 못 미친 수능점수표를 들고 빼곡한 대학진학 표를 마주하며 내 점수를 쭉 수평으로 그어  내가 갈 수 있는 학교는 어디 있나 살펴볼 뿐이었다. 그 선상에 간호학과가 있었다. 간호학과를 가서 무슨 일을 하게 될지 어떤 공부를 하게 될지에 대한 생각보다는 봐서 재수를 해야 하나 고민을 하던 중이었고, 재수를 못하게 되면 이왕이면 취업률이 보장된 적당히 안정적인 학과를 가야 할 것 같았을 뿐이다.

그렇게 나는 어쩌다 보니 간호학과를 가게 되었다.

생각보다 간호학과는 적성에 잘 맞았고, 난생처음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그저 대학생활이 신날 뿐이라 재수생각은 어느덧 저 깊숙이 던져 버렸다.

졸업도 잘 마치고 7년 정도 국립대병원에서 중환자실과 암병동, 호스피스 병동에서 근무했으며 이후 결혼과 출산으로 경력이 단절되었다.


간호학을 전공하던 때부터, 병원에서 근무할 때도 내가 보건교사로 살게 될지는 생각해 본 적 없다.

나에게 임상은, 병원은, 어쩌다 보니 하게 된 전공이라고 하더라도 너무 잘 맞는 곳이었고, 병원에서 나를 성장시키며  병원에서 간호사의 마침표를 찍을 거라 한 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었다.


결혼을 함과 동시에 임신을 하게 되면서 그렇게 할 수 없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많은 간호사들과 직장 여성들이 그렇듯  임신과 출산, 육아는 나의 발목을 잡았다. 신랑의 이직으로 이사도 해야 했고, 나의 성장은 잠시 접어두고 일단은 가정과 육아에 올인해야 하는 시기가 되었다. 육아를 시작한 지 5년쯤이 지나자 이대로 정체되어 살 수는 없다는 위기감이 느껴졌다. 아직 내 친구들은 육아를 하면서도 일을 하고 있었다. 육아도 중요하지만 계속 이 상태로 살림만 하다 살면 숨이 막힐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던 차에 2015년 집 근처 초등학교에서 보건 시간강사 공고가 났다. 용돈이라도 조금씩 벌며 일에 대한 감각을 놓지 말자, 그리고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오전만 잠깐 근무를 하면 된다는 장점이 크게 느껴지면서 일단 지원을 해봤다. 내가 가진 임상경험은 중환자실과 항암치료 병동, 호스피스 병동등 듣기만 해도 꽤나 진지한 곳이었다 보니 학교에서는 나 말고 의무실 경험이 있으신 다른 분에게 기회를 주었다.


취업이 쉬운 것은 아니구나, 나는 학교와 인연은 없다고 생각하며 1년을 다시 육아를 하며 보냈다.

그러던 중 2016년 2월의 어느 날 나에게 다시 한번 기회는 찾아왔다. 작년의 그 학교에서 다시 시간강사 공고가 난 것이다. 이번에는 나에게 기회가 올까? 안된다고 손해 볼 건 없잖아?라는 생각으로 지원서를 넣고 면접을 보았다. 그리고 합격했다.


오전 파트타임의 시간강사지만 그렇게 나와 학교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그렇게 학교 경험을 시작해 보고 적성에 맞으면 임용고시를 준비해 봐



이미 보건교사 10년 차 이상 접어든 친구의 조언이었다.


생각보다 학교는 나와 잘 맞았다. 초등학교라 그런지 애들이 다 귀엽고, 병원에서는 느낄 수 없던 건강함이 느껴졌고, 같이 근무하던 보건교사는 내가 업무를 쉽게 익힐 수 있게 도와주셨다. 그분과의 인연은 이후로도 계속되었고, 이제와 생각하면 내가 학교와 인연을 쌓게 된 것도 정규 보건교사에 도전해 보라고 조언하던 친구와 학교에 마음을 붙일 수 있게 도와준 이 선생님 덕이었다.


그래? 해볼까? 나도 할 수 있을까? 공부 안 한 지 좀 됐는데 힘들지 않을까?라는 기대감과 걱정 반으로 시간강사 업무를 하며 임용고시를 준비했다.


아니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육아와 살림을 하며 시간강사 업무도 하고 임용고시 준비도 했다.


당연히 공부가 될 리가 없었다. 남들은 공부만 해도 될까 말까인데, 도대체 나의 몸이 몇 개란 말인가? 처음의 타오르던 의지와 다르게 인강도 자꾸만 밀리고, 공부는 점점 건성이었고, 아이도 아직 손이 많이 가는 6살일 뿐이었다. 호기롭게 시작하며 벌기 시작한 얼마 안 되는 시간강사의 월급은 이미 모두 인강비용으로 들어가 버렸다. 소중한 그 돈을 생각하면, 공부는 비록 하나도 안 했지만 경험으로라도 임용고시를 봐야 했다. 결과는 뻔했다. 2017년 교원 임용고시 불합격!



1차 불합격 후 정말 내가 원하는 게 임용고시 합격인가? 에 대한 진지한 고찰을 했다. 이후 정말 해보고 싶다는 답을 얻고 1월부터 바로 2018년 임용고시 준비에 돌입하면서  근무를 더 해달라는 학교의 요청을 정중히 거절하고 공부에만 올인하기로 했다. 모든 판을 새로 짜고, 순수 공부시간을 매일 8시간 이상 확보하며 치열하게 공부했다. 아이도 키우고 살림도 하면서 내 평생 대학입시 때보다도 더 치열하게 전투적으로 공부했다. 아마 고등학교 때 이 정도로 공부했다면 그 수능 성적표를 받진 않았겠지만, 사람은 늘 지나고 나서 배우고 깨닫는다.


결과는 2018년 중등교원 임용고시 합격!


보건교사가 된 후 처음 발령받은 학교에서 행복한 보건교사 생활을 했다. 많은 사람들을 알게 되었고, 많은 일들이 있었다. 학교는 학생만 성장시키는 곳이 아니다. 학생을 통해, 다른 교사들을 통해서도 배움은 일어나고 나도 함께 성장했다. 아등바등 신규교사로 업무를 익히고, 건강 관련 사업도 진행해 보고 보건업무에 익숙해져 갈 때쯤 코로나19가 터졌다. 코로나19는 학교에서 보건교사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계기도 되었지만 개인적으로는 보건실 문밖을 넘어 학교가 어떻게 돌아가고, 교육과정은 어떤 식으로 운영되는지 더 큰 시야로 학교를 살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여하튼 학교에서 보건교사로 지내기 위해서는 간호학 지식만으로는 부족했다. 아이들은 몸만 아프다고 보건실을 오는 게 아니었다. 가족이나 친구와의 관계, 학업 스트레스, 우울증, 진로상담 외에도 보건교사의 얼굴이 보고 싶어서, 말 한 번 해보려고 오는 아이들도 너무 많았다. 그런 아이들을 상대하기 위해선 내가 준비가 되어 있어야 했고 내가 많이 배워야 했다. 2년이 지나니 내가 가지고 있는 역량만으로는 부족함을 느꼈다.


나의 답은 독서였다.



꾸준히 독서를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독서를 습관화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지만 지금은 꾸준히 읽는 습관이 몸에 배었다. 독서를 하다 보니 정리가 필요했지만 방법을 몰랐다. 그래서 처음 시작한 것이 필사였다. 독서노트를 한 권 사서 책을 읽고 좋은 내용은 필사를 시작하였다. 필사를 한참 하다 보니 어느덧 어설프더라도 한 줄씩 내 생각을 적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다른 선생님들과 분기별로 방과 후 독서토론을 하기 시작했다. 토론을 하고 오는 날은 가슴이 벅찼다. 책을 다 읽고 오든 아니든, 내가 말을 잘했든 아니든 그런 건 상관없었다. 책을 주제로 선생님들과 만나 소통하는 것이 즐거웠고, 각 전공과목별로 관점이 다른 점도 몹시 흥미롭고 모든 선생님들에게 배울 점이 있었다. 방학이 시작될 때쯤엔 독서 리스트를 짜고 꼭 읽어야 할 책들을 도서관에 들려 빌려왔다. 그러다 보니 학교에서 나의 베프는 자연스럽게 사서 선생님이 되었다.


독서가 누적이 되니 효율적인 기록이 필요했다.

독서기록용 필사를 한 지 3년이 넘어가자 점점 온라인으로 독서기록을 남기고 싶어 졌고, 또 한편으로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라 소소히 내 삶의 기록을 남겨두고 싶은 욕구가 지난겨울 아침 출근길에 문득 샘솟았다. 글을 쓰면 머릿속에 두서없이 차있는 생각들이 정리될 것 같고,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이 필요한지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 쓰는 요령도 없고 능력도 뛰어나지 않지만 하루 종일 머릿속에 이리저리 튀어나오는 생각을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말한다는 건 듣는 이에게도 고역일 것 만 같았다.


그래서 글로 쓰기로 마음먹었다.



나의 삶, 나의 일상, 나의 에세이 - 브런치 입성기(1).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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