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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신의학신문 Sep 28. 2018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구별하기

“내 인생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이유” - ③


[정신의학신문 : 이일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두 번째 연재 말미에 드렸던 질문으로 글을 시작하고자 합니다.
“만약 건강검진에서 위암 판정을 받게 된다면, 이것은 좋은 일일까요? 나쁜 일일까요?”라는 질문입니다.
“이게 뭔 소리야? 위암 판정받는 게 어떻게 좋은 일이 될 수가 있어? 의미가 없는 질문이잖아.”라고 이야기하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두 번째 연재까지 읽으셨다면, 조금은 달리 생각해볼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지금, 대학병원 진료실에서 의사 선생님에게 “검사 결과가 나왔는데, 위암인 것 같습니다. 수술이 필요합니다.”라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고 상상을 해봅시다.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이러한 상황에서 일반적인 사람들의 반응은 denial(부정)입니다.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결과가 잘 못 나온 걸 거야.”
그러면서 큰 스트레스를 받고 슬픔, 절망을 느낍니다.

앞 연재들에서 반복적으로 하였던 질문인데요.
우리가 이렇게 위암 판정에 대해 부정하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위암’이 사라질까요?
당연히 아니겠지요.
우리가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고 부정을 해봤자 ‘위암’의 존재 유무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첫 번째 연재에서 언급했던, ‘전기밥솥’ 앞에서 용을 쓰면서 밥이 빨리 되기를 바라는 상황과 크게 다르지가 않습니다.

사진_픽사베이

여기까지는 이해가 되시리라 생각을 합니다.
“그렇다고 좋은 일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지 않나요?”라는 의문이 생기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한 번만 더 생각을 해봅시다.
“우리가 건강검진을 받았든, 받지 않았든 ‘위암’은 존재를 할까요? 하지 않을까요?”
맞습니다. 위암은 우리가 건강검진을 받았는지 유무와 관련이 없이 존재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최대한 빨리 발견한다는 것은 우리 건강을 위해 당연히 좋은 일 아닐까요?
그러므로 당연히 감사해하고 좋은 일로 여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이질감 내지는 불편감이 느껴지시나요?
굳이 그렇게까지 여길 필요 없지 않냐고요?
‘감사해하고 좋은 일로 여긴다고 뭐 특별히 달라지는 것도 없지 않을까요?’라는 생각이 드시나요?
아닙니다. 우리가 기저에 가지고 있는 생각들은 어떠한 형식으로든 우리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예전에 필자가 부모님께 건강검진을 해드리려고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어머니께서 그러시더군요. 무서워서 못하겠다고. 뭐가 나오면 어떻게 하냐고요.
어떤가요? 우리가 기저에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건강검진을 받는 횟수가 달라질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이렇게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에 용을 쓰는 행위’는 우리 인생에 어떤 방식으로든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두 번째 연재에서는 이 원칙이 대인 관계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알아보았습니다.
우리는 대인관계에서 너무나도 많이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고 있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내 욕망’을 욕망하는 것이 아닌, ‘타인의 욕망’을요.
‘엄마가 잔소리를 안 했으면 좋겠어.’
‘아들(딸)이 공부를 했으면 좋겠어.’
‘친구가 나만 좋아해 줬으면 좋겠어.’
수많은 욕망들이 있지만, 그 욕망의 주어는 나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러니 내 마음대로 될 리가 없습니다.
애초에 내가 할 수 없는 것들을 바라왔으니까요.
 
여기까지가 두 번째 연재의 내용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대인관계에서 우리가 바라는 수많은 욕망들을 다 포기하라는 말인가?’라고 들릴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지는 않습니다.
해상도를 높여 바라보면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단순한 서술로만 이야기를 하면 무슨 이야기인지 알 듯 모를 듯하시지요?
예시를 통해 살펴보면 좀 더 다가올 것이라 생각을 합니다.

독자 여러분들은 ‘야구’를 좋아하시나요?
우리 팀이 1점차로 리드하고 있는 9회 말 투아웃 만루 상황에서 마무리 투수로 등판을 했다고 상상을 한 번 해봅시다.
우와~ 이거 뒈질 거 같습니다.
그 압박감이 장난이 아니겠지요.
실제로 많은 투수들이 이러한 상황에서 실투도 많이 던지고, 평소에 던지던 만큼의 공을 못 던지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그 압박감의 무게가 장난이 아니니까요.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흔히 드는 생각은 무엇이죠?
네, 맞습니다. 보통은, ‘절대 안타 맞으면 안 돼.’라는 생각을 쉽게 가질 수 있습니다.
사실 틀린 생각은 아니지요. 안타를 맞으면 끝이니까요.
그런데 이 생각의 해상도를 조금 높여서 바라봅시다.
‘안타 맞으면 안 돼’라는 생각 안에는 ‘내가 공을 잘 던져야 되는 요소’도 들어있지만, 또 어떤 요소가 들어있죠?
네, ‘쟤(타자)가 공을 못 쳐야 하는 요소’도 들어있습니다.
후자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인가요?
주어부터가 ‘나’가 아니지요?
내가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 예시를 보면 우리의 욕망 안에는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내가 할 수 없는 일’이 혼재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구분하지 못하고, 그냥 바라기만 하면 우리는 압도되어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바람이 숨어 들어가 있으니, 우리는 컨트롤될 수 없는 상황에 압도당하고, 평소에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의 성과도 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무엇을 바라고 있었는지를 인식했다면, 그다음에는 해상도를 높이는 작업이 우리에게 많은 도움이 됩니다.

사진_픽사베이

마무리 투수로서 마인드 컨트롤을 잘 하는 투수들은 절대 ‘안타 맞으면 안 돼’라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마인드 컨트롤을 잘 하는 투수일수록 ‘내’가 할 수 있는 일에만 집중을 합니다.
‘내가 가장 좋은 공을 던졌을 때의 손가락의 감각이 어땠지? 그때의 손가락의 감각에만 집중을 하자.’
‘쟤(타자)가 잘 치든 못 치든 그건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야.’
이렇게 생각을 하는 투수들은 적어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성과를 낼 수가 있습니다.
오롯이 내가 할 수 있는 바람들로만 나의 에너지가 채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 원칙은 우리 일상 대인관계에도 적용이 되는 부분입니다.
‘직장상사가 그런 식으로 행동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내 남자(여자) 친구가 이렇게 행동해줬으면 좋겠어.’
이런 바람들 안에는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내가 할 수 없는 일’이 혼재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걷어내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에만 나의 에너지를 투여한다면 나의 대인관계가 좀 더 개선될 여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단순한 서술로만은 확 다가와지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예시를 통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제 강의를 듣고 한 분이 공유해주신 내용입니다.
이 분은 결혼을 하고 나서, 아내에게 바람이 생겼다고 공유해주셨습니다.
결혼을 하고 나면, 아내가 나의 부모님(시부모님)에게 자주 연락도 하고 챙겨주기를 바랐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막상 결혼을 하고 보니 내 생각 같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실망도 하고 아내가 미워 보이기도 했다고 하였습니다.
그때, ‘아내가 내 부모님께 자주 연락을 하게 하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를 생각해보셨다고 하였습니다.

이 부분이 중요한 부분입니다.
‘아내가 시부모님에게 자주 연락을 했으면 좋겠어.’가 아니라 ‘그렇게 하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이 무엇이 있을까?’를 찾는 것입니다.
그 욕망 안에는 많은 부분이 아내의 몫이긴 하지만, 그 안에 나의 몫도 일부분 자리를 하고 있습니다.
그 부분을 찾아서 집중을 한다면 아내가 나의 뜻대로 행동을 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길 수 있습니다.

이 분은 장고 끝에 ‘내가 먼저 장모님, 장인어른에게 자주 연락을 하자.’라는 생각을 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집에서 그냥 ‘오늘 장모님이 뭘 사셨데.’, ‘장인어른이 어디를 갔다 오셨데.’라는 이야기들을 툭툭 던져보았다고 하였습니다.
분명 이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니까요.
그랬더니 어느 순간 아내 분의 행동이 변하기 시작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조금씩 시부모님께 연락을 하는 횟수가 늘더니, 서로 상대방의 부모님을 챙기면서 대화를 하는 시간이 늘었다고 공유를 해주셨습니다.
 
어떤가요?
‘왜 내 아내는 결혼을 했는데 시부모님을 챙기지 않는 거지?’, ‘우리 부모님한테 전화 좀 하지.’라는 욕망만 가지고 있었다면 결과가 어땠을까요?
분명 아내에 대한 화가 쌓일 거고, 하지만 아내는 내 안에 화가 쌓이고 있다는 걸 알지도 못합니다.
그러다가 나는 쌓였던 화가 폭발하는 경우들이 생길 것이고, 아내는 황당하고 어이없어할 겁니다.
그러면 아내는 또 ‘화’로서 대응하겠지요.
그러면 ‘나는 그동안 쌓였던 것도 있고, 이러이러해서 정당하게 화를 내는 건데, 아내는 왜 내 마음을 몰라주는 거지?’라면서 더 화가 날 겁니다.
이런 식으로 악화일로를 걷게 되겠지요.

보통 부부 싸움, 아니 우리 대인관계에서 다툼은 이런 식으로 일어납니다.
‘타인에 대한 욕망’을 욕망하다가, 그게 이루어지지 않음으로써 실망과 부정적인 감정이 쌓이고, 그러다가 어느 순간 폭발을 하고, 상대방은 갑작스러운 감정 폭발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고, 그래서 화로 대응하고, 서로 화를 내면서 싸우고 있는 것이 우리 대인관계에서 일어나는 싸움의 일반적인 패턴입니다.
두 번째 연재에서 ‘대인관계’에서 어려운 지점이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데 있다고 말씀드렸던 것이 이러한 지점입니다.
그러므로 ‘타자가 이렇게 행동을 해줬으면 좋겠어.’가 아니라 ‘타자가 이렇게 행동하기 위해서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뭘까?’라고 생각을 전환하는 것은 우리 삶에 아주 큰 benefit을 줍니다.

사진_픽셀

물론 실제로 실행하는 것은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 버튼 하나만 폭 누르면 내 삶이 바뀌는 그런 마법의 단추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만약 그런 것이 존재했다면, 몇십 년을 우리가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겠지요.
나의 에너지가 들어야 내 인생이 바뀌는 게 더 정답입니다.
이것만큼은 틀림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런 마법의 단추가 존재한다면 억울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간단한 게 있었는데 왜 난 그동안(몇십 년 동안) 그걸 몰랐던 거지?
지나온 세월이 억울해지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제가 정신건강의학에 대해 공부를 하고 나니, 다행히도(?) 그런 마법의 단추는 존재하지 않더라고요. 참 다행(?)이죠?
그렇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노력이 동반되어야 한다는 사실이겠지요.
‘자 이제 노력을 했다. 그래도 내 인생은 이 모양이야~’라고 하실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열심히 노력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보았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어.’
맞습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할 수 있는 게 정말 없다면, 그 일은 포기하십시오. 에너지를 써봤자 의미가 없습니다.
전기밥솥 앞에서 아무리 에너지를 써봤자 밥이 되는 속도에는 변함이 없듯이요.
남는 에너지를 다른 데 쓰면 훨씬 내 인생이 풍요로워지고, 내 인생이 내 마음대로 되어 갑니다.
‘할 수 있는 것’에만 에너지를 쓰니까요.
 
그래도 포기하기에는 아쉽다고요?
그러면 다시 찾아보세요. 해상도를 높여서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을요.
작지만 분명 내가 할 수 있는 부분들은 숨어 있습니다.
말장난으로 다가오시나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이 생각의 전환은 우리에게 정말로 강력한 힘이 됩니다.
삶에 제대로 적용만 한다면요.

사는 게 힘들다고요?
그 이유는 제가 명확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곳’에 에너지를 쓰고 계셔서 그런 겁니다.
우리는 전기밥솥 앞에서 ‘밥이 빨리되어라’라고 용을 쓰다가 번아웃 되고 있습니다.
상대방 타자가 공을 못 치기를 바라면서, 내가 평소에 잘 던지던 공조차도 던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타인의 욕망을 바라면서 결론은 다툼으로 귀결되고 있습니다.
이것이 지금까지의 우리의 삶이었습니다.
이러한 것들을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이 세 연재 동안 제가 전달드린 내용입니다.

‘많은 분들이 제 강의를 듣고, 실제 삶에 적용을 해보았을 때 많은 도움이 되었다.’라는 피드백을 들었었습니다.
스스로의 삶에 얼마나 어떻게 적용할지 여부는 독자의 몫으로 남겨 놓겠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여기까지니까요.
연재가 끝났다는 말은 아닙니다.
이제 겨우 ‘내 인생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만 말씀드렸으니까요.
연재는 계속될 예정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더 흥미진진하답니다.
 
세 연재 동안 전달드린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내가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 인식하자.
(이 단계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우리는 전기밥솥 앞에서 용을 쓰고 있으면서 스스로 그러고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2. 인식을 했으면 해상도를 높여서 바라보자.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구별하자.

3. ‘내가 할 수 있는 일’에만 나의 온 에너지를 집중하자.
‘할 수 없는 일’은 더 이상 바라지도 말고 과감히 포기하자.
‘할 수 없는 일’은 바라봤자, ‘할 수 없는 일’이다. 


다음 연재에서는 ‘실제 상담 사례’를 바탕으로 우리의 삶에 적용되는 지점을 바라보고자 합니다. 
 
 
※ 본 연재는 ‘이일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강의 내용을 글로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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