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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신의학신문 Sep 20. 2017

'부산 여중생 집단 폭행', 가해자들은 사이코패스인가?


[정신의학신문: 김환기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부모에게 폭언을 퍼붓고 집안 물건을 부수고 모친을 구타한다며, 고등학생 아이를 데리고 한 부모가 응급실을 찾은 일이 있었다. 아이는 중학생 때부터 비행을 일삼으며 등교를 거부하고, 가출을 수차례 일삼고 있었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때리거나, 술 담배를 하거나 하는 행동들로 부모가 학교에 불려간 일도 허다했다. 몇달 전부터는 참다 못한 부모가 아이를 데리고 동네 정신건강의학과 의원을 다니기 시작했고, 그곳에서 품행장애로 진단 받아 약물치료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약을 먹어도 아이의 행동은 좀처럼 나아지지를 않았고, 아이도 치료를 거부하기만 했다. 그러던 어느날, 작은 말다툼을 불씨로 폭발해버린 아이가 집안을 때려 부수며 모친을 발로 차는 모습에 아버지가 아이를 붙잡고 응급실로 끌고 온 것이었다. 아이의 어머니는 눈물 고인 표정으로 한탄하듯 호소했다.


“선생님. 얘 좀 제발 입원시켜 주세요. 오늘 얘 입원 안하고 집에 가면 저랑 얘랑 그냥 같이 죽어버리는게 나아요.”


품행장애는 아동-청소년기에 진단되는 대표적인 외현화장애 중 하나이다. 공격성과 충동성, 짜증 등 외부로 표출되는 정신병리를 보이는 외현화 장애는 ADHD, 적대적 반항장애 등 여러가지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다.


그 중 품행장애(Conduct Disorder)는 1) 사람과 사물에 대한 공격성, 2) 재산의 파괴, 3) 속이기 또는 훔치기, 4) 심각한 규칙의 위반 등의 모습을 주된 증상으로 하고 있다. 이른바 비행청소년에 해당한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과연 품행장애가 정신과적 치료의 대상에 해당하는 것인지, 법과 사회의 규범에 따른 처벌의 대상이 되어야하는지에 대한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부모를 때리고 학교를 안나간다며 응급실을 찾은 아이가, 자타해 위험성을 보이는 정신과적 질환이므로 폐쇄병동에서 강제 입원치료를 받아야하는 것일까. 학교를 안가고 술 마시고 담배 피우는 아이를 정신과에 데려가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교칙에 따른 징계에 회부 시키거나 경찰에 신고를 해서 체포를 시켜야 하는 것일까.




사진 제공 _ ytn


얼마 전, 부산 여중생 집단 폭행 사건이 보도되면서,  소년법 개정에 대한 여론이 들끓고 있다.  사건의 극악무도함이 상세히 드러날 수록 국민들의 분노가 거세졌다. 그동안 지속되어왔던 청소년 범죄의 미약한 처벌을 향한 불만이 폭발한 것이다. 청소년 범죄의 처벌 강도를 낮추는 소년법을 폐지하자는 목소리는 실제로 청와대 청원을 통해 구체화 되고 있고, 이미 엄청난 속도로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잔인하고 용의주도한 1차 폭행에 이어, 보복성 2차 폭행의 그 끔찍한 범행 양상은 피해자가 공개한 상처의 사진들과 녹취록 등이 더해지며 모두를 아연하게 만들었다. 5명의 여중생들이 피해학생을 인적이 드문 공장으로 끌고가 철골 자재, 소주병, 벽돌, 쇠파이프, 심지어 칼이나 담배 등을 사용하여 위협과 폭행을 가했고, 심지어 피해학생을 조롱하며 사진을 찍기도 했다고 한다. 그들은 평범한 여중생이라고는 결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잔인무도했다.


정신과적 평가를 해본다면, 가해 학생들에게 품행장애의 가능성을 의심하기엔 별다른 이견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 사건 하나만으로 확진하기엔 다소 정보가 부족할지 모르지만 말이다. 어쨌건, 반사회적 인격장애의 진단은 만 18세 이전에는 내릴 수가 없으니 현재로서는 그들이 극히 위험한 수준의 품행장애를 보이고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주목할 점은, 2차폭행의 현장, 목재소 공장의 인근에서 있었던 5명의 가해 학생들 모두가 적극적이고 잔인하게 폭행에 가담한 것은 아니라는 부분이다. 그중 1명은 과도한 폭행을 말리려고 했으나, 말리면 똑같이 폭행하겠다는 친구들의 위협에 방조 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하고, 나머지 2명도 폭행에 가담하진 않고, 흉기인 칼을 제공해준 정도였다는 의혹이 있다. 그러나 주된 가해자였던 두명은 피해 학생이 피를 흘리자 “피 냄새 좋다. 더 때리자”라고 이야기 하거나 “더럽게 왜 피를 튀기냐”하며 더 때리는 등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냉혹하고 무자비한 모습을 보였다. 물론 같은 자리에서 악독한 폭행 행위를 방관하고 간접적으로 참여했다는 점에서는 공범죄나 방조죄를 피해갈 수 없다. 참여한 가해학생 모두가 심한 품행장애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흡사 악마의 탈을 쓴 듯한 두명의 주범들과 다른 나머지 학생들의 품행장애는 무언가 좀 달라 보이는것 같기도 하다.


아동 청소년기에 나타나는 외현화 장애인 ‘적대적반항장애’와 ‘품행 장애’의 진단 기준에는 아이들의 공격적/파탄적 행동과 과민성, 충동성등을 포함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비슷한 내용을 진단기준에 포함하는 성인기의 질환에는 ‘반사회적 인격장애(Antisocial personality disorder)’가 있다. 청소년기에 품행장애를 보인 아이들 중의 일부는 성인이 되어서 결국 반사회적 인격장애로 진행하게 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그러나 적대적반항장애나 품행장애와 비교하여 반사회적 인격장애의 진단기준에서는 조금 다른 특징을 볼 수 있다. 이 질환의  진단에는 ‘남을 속이고, 충동적이고, 공격적이고 난폭한’ 모습과 같은 외현화 행동특성 이외에, 다음과 같은 성격적, 감정적 특징이 포함된다.


1)    타인에 대한 무시

2)    무책임함

3)    후회하지 않는 모습

4)    공감적인 감정의 결핍


이러한 부분은 흔히 이야기하는 정신병질적 성격 특성 - 사이코패스의 성격 특성과 유사하다. 단순히 공격적이고 파탄적인 모습을 보일 뿐 아니라 그러한 행동에 대한 책임감이나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고 타인과 공감적 관계를 형성하기 어려운 특징을 보인다는 것이다.


사진제공 _ytn


청소년기 품행장애 환아들을 연구하던 학자들은, 품행장애를 보이다가 성인이 되어 반사회적 인격장애로 진행하는 아이들에게는 어떤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똑같이 품행장애의 모습을 보이더라도, 자신의 행동에 대해 후회하고, 불안해하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고 뭔가 정서가 결핍된 것 같은 모습을 보이는 아이들이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특징을 지닌 품행장애 아동들은 냉혹-냉혈한 타입(Callous-unemotional traits)로 따로 분류될 수 밖에 없었다. 실제로 품행장애 아동들의 뇌신경기능을 살펴본 연구에서도 이러한 타입의 아이들은 공포자극, 분노자극이 주어졌을 때 불안을 담당하는 편도체(amygdala)의 활성이 떨어져 있는 것이 관찰되기도 했다. 이와 달리, 비행을 보이면서도 불안함과 우울함 등을 겪는 아이들은 오히려 같은 상황에서의 편도체의 활성도가 증가되었다.


DSM-V에 이르러 품행장애의 ‘제한된 친사회적 정서(Limited prosocial emotion)’으로 분류되는 이러한 특성의 아이들은 치료에도 반응을 잘 보이지 않고, 지속적인 반사회적, 파탄적 행동을 할 위험이 높다. 즉, 부산 여중생 폭행 사건에서 주도적으로 잔인한 폭행을 가한 두명의 여학생들과 같은 냉혹한 특성을 지닌 아이들은, 성인기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행동 문제를 야기할 수 밖에 없는 뇌신경학적 차이를 동반하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우울, 불안과 같은 정서 문제를 동반한 품행장애 아이들은 장기간 추적관찰을 한 결과, 나이가 들면서 점점 사회에 다시 적응해나가는 모습들을 많이 보였다. 쉽게 말해 어릴적 방황을 거치고 정신을 차려 ‘개과천선을 하는’ 케이스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아이들은 치료자나 보호자, 교육자의 개입에도 긍정적인 교화 효과를 보였고, 주변 환경을 조금만 개선시켜 주었을 때에도 외현적인 행동문제가 확연히 줄어드는 모습들을 보여주었다. 물론 그런 특성의 청소년들도 외부의 도움을 전혀 받지 못하는 경우에는 결국 나쁜 예후를  보여주곤 한다. 그러나 그런 경우조차도, 대부분은 지속적인 환경적 문제가 아이들을 감당할 수 없는 괴로움과 함께 사회의 틀 바깥으로 밀어 내버리는 꼴인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서두에 소개한 망나니 같은 고등학생 아이 역시도 정신과 의사의 입장에서는 측은지심을 갖고 치료권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노력할 수 밖에 없다. 비록 강제로 입원시킬 것 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아이들이 한 때의 방황을 마무리하고 사회와 가정의 품을 찾아갈 수 있도록 길잡이 역할을 해주기 위해서 말이다.


고대 중국의 삼국시대가 통일된 후, 사마씨의 왕조 서진(西晉)에는 백성들이 두려워하는 골칫거리인 3해(害)가 있었다. 그 중 둘은 남산의 호랑이(虎), 장교의 용(龍)이었고, 나머지는 셋 중에서 가장 포악하다는 주처(周處)였다. 주처는 본래 오나라에서 이름을 떨쳤던 책사인 주방의 아들이지만, 아버지가 어릴때 일찍 죽은뒤 자라며 비뚤어져 망나니가 되어버렸다고 한다.


어느 날, 주처의 횡포를 참다 못한 마을 사람들은 회의를 통해 주처를 없앨 요량으로 그를 남산의 호랑이에게 보내기로 결정했다. 사람들은 주처에게 호랑이를 처치해달라고 꾀며 그를 추켜세우고 아첨했다. 그러나 흔쾌히 남산으로 떠난 주처는 마을사람들의 기대와 달리 호랑이를 단숨에 물리치고 돌아왔다. 이에 마을 사람들은 실망했지만 다시 한번 주처의 용맹함을 칭찬하며 잔치를 하고, 이번에는 장교의 용을 이길 수 있을 거라며 그를 꼬드겼다. 주처는 다시 한번 의기양양하여 장교로 떠났고, 이번에는 용 마저 사투 끝에 물리쳐 그 시체를 어깨에 둘러 맨 채 마을로 돌아왔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이미 주처가 싸움 중에 죽은 줄 알고 잔치를 벌이고 있었고, 이를 본 주처는 크게 부끄러움을 느끼고 당시 관료였던 육운을 찾아가 가르침을 구했다. 이후 주처는 학문을 익혀 어사중승에까지 올라 매우 강직하고 용맹한 장군이 되었다고 한다. 마지막 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한 주처는 현재 장감논단에 실린 명장 중 하나로 그 이름이 올라있다.



이번 부산 여중생 폭행 사건이나, 인천 여아 살인 사건처럼 냉혹-냉혈한 타입의 잔인한 범죄들이 연일 뉴스를 장식하며 소년법 개정의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심지어는 청소년에게도 사형을 선고할 수 있도록 개정해야한다는 극단적인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물론 솜방망이 처벌을 허용하는 소년법의 현주소가, 범죄를 저지르는 청소년들이 사회적 한계선을 넘지 못하도록 막아주는 방어선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법적 경계를 심각하게 넘어서 사회질서의 혼란을 초래하는 이들에 대한 합리적인 처벌과 격리는 필요하다.


그러나 아비 없이 자란 망나니 주처는 결국 육운의 가르침을 받아 개과천선하여 역사에 이름을 남긴 위인이 되었다. 육운의 따끔한 일침에는 주처의 잠재된 선함과, 가능성을 짚어낸 두터운 공감이 깃들어 있었다. 마찬가지로, 청소년기의 품행장애를 바라보는 어른들의 시선 또한 걱정 어린 따스함을 잃지 말아야 할 필요가 있다. 일부 반사회적 성향의 극단적인 사건들을 바라본 분노에만 휩싸여 처벌과 보복으로 개과천선의 기회마저 빼앗는 사회는 너무나 차갑다. 좌충우돌하며 갈 곳을 잃은 청소년들을 바라보면서, 책임을 통감하고, 단호하지만 따뜻한 공감의 한마디를 건네줄 수 있는 어른들의 성숙함이 더욱 절실하다.




참조

<헤럴드 경제>, <동아일보>, <JTBC 뉴스>

Conduct Disorder and Callous–Unemotional Traits in Youth / N Engl J Med 2014;371:22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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