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김정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부는 국민들의 수명을 제한하고 싶어 한다.
2018년 2월 시행되는 ‘호스피스, 완화 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 의료 결정에 관한 법’(이하 연명의료결정법)을 포함해 최근 발표되는 일련의 의료 정책들을 보면 지금까지 존재했던 정권들이 위 가설을 실행하고 싶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문재인 케어’의 핵심은 의료비 총액을 줄이겠다는 것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환자가 부담하는 의료비도 줄어들게 되지만, 그것이 핵심은 아니다. 정부가 지금 ‘문재인 케어’를 시행하려하는 이유는 비싼 의료비로 허덕이는 국민들을 돕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우리나라가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14% 이상인 고령사회로 접어들었고 이런 상황이 계속 악화 될 것이기 때문이다. 비싼 의료비로 허덕이는 국민을 돕기 위해서라면, 연간 개인이 부담하는 의료비의 상한액을 낮추고, 그 기준을 초과하는 금액을 각각 지원해주면 된다. 하지만 신 포괄수가제 도입, 비급여 항목의 급여화 등 일반인이 들어보지도 못한 정책을 펼치는 이유는, 의료비 총액을 낮추기 위해서다.
의료비 총액이 증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의료기술의 발전이 아니라, 인구 노령화다. 나이가 들면 암, 뇌졸중, 골절, 감염 등이 호발하기 때문에 의료비 지출이 증가하는 것이다. 따라서 인구가 늙어감에 따라 의료비 총액이 증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며, 의료비 총액이 증가하기 때문에 건강보험료가 올라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국가에서 지출해야 하는 금액이 많아지는 만큼의 세금이 더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치인이 옳은 소리만 하면 표를 얻을 수 있겠는가. 정치인이 ‘나를 뽑아주면 건강보험료를 올리겠다’라고 외친다면, 어떤 유권자가 표를 주겠는가. 이런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문제는 복잡해진다.
인구 노령화로 자연적으로 증가하는 의료비 총액을 감당하기 위해 건강보험료를 더 걷을 수 없다면, 남은 길은 하나다. 의료비 총액이 증가하지 못하게 억누르는 것이다. 그래서 나온 정책이 ‘신 포괄수가제’와 ‘비급여 항목의 급여화’다. ‘신 포괄수가제’란 환자가 입원 후 퇴원할 때 까지 받은 치료가 무엇이던 간에 정부는 정해진 금액만 지급한다는 것이다. 만약 햄버거 한 개당 만원의 지원금을 받을 수 있고, 그 햄버거를 팔 수 있다면, 당신은 재료비로 얼마를 쓸 것인가. 햄버거 장사가 직업인 경제인이라면, 재료비로 만 원 이상은 쓰지 못할 것이다.
의사도 그렇다. 결국 의사는 정부가 정해준 금액에 합당한 치료를 하게 될 것이다. 문제는 노령화로 증가하는 의료비가 이미 부담스러운 정부가 과연 어느 정도의 의료비를 줄까 하는 것이다. ‘비급여 항목의 급여화’는 간단히 햄버거 재료의 종류를 정부가 정한다는 말이다. 지금까지는 웃돈을 주면 햄버거에 베이컨이나 치즈를 추가 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웃돈을 주는 행위 자체가 금지된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햄버거가 맛은 있을까? 햄버거가 맛이 없다면 주인에게 항의라도 할 수 있지만, 의료의 질이 떨어지는 것은 일반인이 알아차리기 힘들다. 맥도날드와 롯데리아 햄버거 맛의 차이를 아는 이유는 많은 사람이 두 곳의 햄버거를 먹어봤기 때문이다. 똑같은 병으로 한국과 외국에서 같은 치료를 받은 사람은 극히 드물기에, 의료의 질이 떨어지는 것을 쉽게 알아차릴 수는 없다.
하지만 국민은 바보가 아니다. 단순히 의료비 총액을 억제하는 정책만 가지고 나온다면 이 전략은 성공할 수 없다. 의료비가 줄어들면 제공받을 수 있는 의료서비스의 질이 떨어진다는 생각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결국 의료비를 적게 지원해주는 정부가 비난받고 책임을 져야하는 상황이 생긴다. 그렇기 때문에 국민에게 혼란을 줄 수 있는 추가적인 전략이 필요하다. 그래서 ‘국내 의료서비스의 높은 수준’과 ‘의사의 부도덕성’을 동시에 홍보하는 것이다.
먼저, 왜 내국인에게 국내 의료서비스의 수준이 높다고 홍보하는 것일까. 예를 들어, 국산차를 구입하는 것을 유도하기 위해서 국산차를 홍보할 수는 있다. 하지만 내국인은 국내에서는 국내 의료서비스 이외에 다른 것을 선택할 수도 없다. 해외로 나가 의료 서비스를 받는 내국인은 거의 없다. 혹시 국내 의료서비스를 받는 것에 대해 안도감을 느끼게 하려고?
그렇다면 왜 동시에 의사의 부도덕성을 광고하는 것일까.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평원)은 의사가 부당진료비를 청구한 것 같으면 신고하라는 광고를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일상생활에서 사기를 당하면 신고해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굳이 광고를 하는 이유는, 단순히 ‘부당하게 청구된 의료비를 돌려받는 방법’을 알려주고 싶은 것이 아니다. 실제로 전달하려는 것은 ‘부도덕한 의사가 많아, 부당하게 청구된 의료비가 광고를 할 정도로 흔하다.’, 즉 의사의 부도덕성을 홍보하고 싶은 것이다. 의사의 부도덕성이 전제되어야 의사를 감시하는 심평원의 입지가 더 탄탄해지기에, 이 광고는 심평원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적절했을 것이다.
이렇게 서로 상반되는 내용의 홍보를 동시에 함으로써 국민들 머릿속에 심고 싶었던 생각은 바로, ‘의료비 증가의 원인은 부도덕한 의사이기 때문에 이들을 제압하면, 보험료를 더 내지 않아도 좋은 의료서비스를 계속 받을 수 있다’이다. 그렇기에 현실적으로 부도덕한 의사에게서 높은 수준의 의료서비스가 나올 수 없음에도, 상반되는 내용의 홍보를 동시에 했던 것이다. 의사가 부도덕하다는 생각을 국민들이 할수록, 건강보험 등 의료 관련 문제로 정부가 비난을 덜 받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정부가 ‘의사의 부도덕성’을 홍보해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이 더 있다. 의사는 생명을 다루기에 다른 직군보다 더 도덕적이어야 한다. 옳은 얘기다. 하지만 더 도덕적이어야 하기 때문에, 의사의 도덕성을 강요하는 법을 만드는 것은 완전히 다른 얘기이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의사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과실이 없어도 보상을 해야 하는 법이 적용되는 직업이다. 의사도 과실이 없고 싶다. 하지만 인간이기 때문에 과실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심지어 과실이 없어도 법적으로 보상을 해줘야 한다. 이 법의 관점에서 보면 의사는 잠재적 범죄자이며, 이 법으로 인해 의사 집단의 부도덕적인 이미지가 강화되었다.
최근에도 일부 의사의 일탈적 범죄를 대서특필한 뒤, 그것에 관한 법을 만드는 과정이 이미 수차례 반복됐다. 뉴스에서 보도하는 것처럼 이 법의 최대 수혜자는 힘없는 국민이 아니다. 바로 정부와 정치인 그리고 그들에게 장단 맞춰준 언론들이다.
의사의 부도덕성을 강조함으로써 정부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앞에서 말했듯이, 노령화로 인한 의료비 증가의 이유를 부도덕한 의사 집단에게 돌릴 수 있는 것이다. 골치 아프게 국민들에게 의료비 증가의 이유와 대책에 대해 설명하지 않아도 되고, 표가 떨어져나갈 걱정도 안 해도 된다. 의사가 잘못해서 의료비가 증가한 것이며, 따라서 의사의 소득을 제한하고, 의료에 관한 모든 문제에 대한 책임을 의사가 지게 하겠다고 말하면 되기 때문이다. 이 말로 충분히 지지율은 올라가고, 이 법칙은 지금까지 충분히 증명됐다.
두 번째는 정부가 추진하는 의료 정책에 대해, 의사 집단이 의료 전문가로서 권고하는 것의 가치를 훼손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바로 지금이 이 사례가 적용되는 시기이다. 의료 서비스의 저하 없이, 노령화로 증가하는 의료비를 감당할 길은 건강보험료 인상뿐이다. 하지만 정부가 주도한 의사의 부도덕성에 대한 홍보로 인해, 의사집단의 권고는 이미 국민들의 신뢰를 잃었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지금까지 의사 집단에게 호의적인 정부는 없었다. 의사 집단에게 비호의적인 것이 정치적으로 유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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