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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신의학신문 Nov 20. 2017

스마트 알약, 정신의학 분야에 새로운 장을 열다?

[정신의학신문 : 신승호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조현병과 조울증과 같은 정신과 질환에 대해, 사람들은 ‘점점 나빠져, 결국 삶이 망가지는 병’이라는 편견을 가진다. 분명 악화일로의 경과를 겪는 사람이 있기는 하지만, 초기에 적절한 치료를 받고 난 뒤 큰 증상의 악화 없이 삶을 영위하는 경우도 많다.


이러한 정신과 질환을 치료하고 증상을 유지하는 데 있어, 걸림돌이 되는 요인 중의 하나가 바로 투약 순응도(drug compliance)의 저하이다. 알약의 개수가 너무 많아서, 약을 먹으면 몸이 쳐지고 졸려서, 이제는 다 나은 것 같아서, 심지어 약을 먹는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등과 같은 다양한 이유들 때문에, 유지치료에 필수적인 약물치료가 중단되어 증상이 재발하고, 재입원의 과정을 겪게 되는 경우가 많다. 실제, 투약 중단으로 인한 증상 악화, 재입원 등에 소요되는 추가적인 사회적 비용이 매해 1000억 달러에 달한다고 한다.


이러한 투약 순응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그간 많은 노력이 있었다. 달력이나 스케줄러에 투약 여부를 점검하거나 가족들에게 역할을 분담하는 간단한 방법에서부터, 약을 입에 넣는 순간 쉽게 녹도록 제형을 바꾸어 투약에 대한 부담을 줄이거나, 지속형 주사제재를 사용하여 투약의 경로 자체를 바꾸는 방법이 개발되기도 했다. 이는 비단 치료 중단에 대한 염려뿐만이 아닌, 시대가 변함에 따라 중요시되고 있는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방법이 될 수도 있다. 이러한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듯, 지속형 주사제재의 수요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기도 하다.


사진_Proteus Digital Health


이러한 시대의 변화에 발맞추어, 미 캘리포니아의 제약업체 프로테우스 디지털 헬스(Proteus Digital Health)는 2015년 스마트 알약(smart pill)을 개발, 발표했다. 알약 안에는 작은 센서가 내장되어 있는데, 이 센서가 위액에 닿게 되면 전기신호를 발생시키고 이 신호를 몸에 붙인 패치 형태의 수신기가 인식하게 되어 데이터화 한다. 물론, 이 센서는 구리, 실리콘, 마그네슘등의 인체에 무해한 성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체내에서 소화되어 버린다. 이 신호는 환자의 투약 여부 확인 등과 같은 다양한 분야의 모니터링에 사용될 수 있다. 미 FDA 는 2015년 프로테우스가 만든 스마트 알약의 안전성을 확인하고, 다른 전제조건 없이 사용을 승인하였다. 바야흐로 제약업계에도 IT 시대가 열린 것이다.


사진_아빌리파이 마이사이트


FDA의 사용 가능성에 대한 승인 이후에 꾸준히 실제 정신과 약물에 적용하고 연구한 결과, 현지 시각으로 11월 13일 미 FDA는 아빌리파이 마이사이트(Abilify MyCite)가 최종 승인되었음을 발표했다. 아빌리파이는, 조현병과 조울증에 대한 치료 및 우울증에 대한 보조적 치료제로 승인이 난 정신과 약물로, 국내에서도 정신건강의학과에서 많이 사용하는 약물이기도 하다. 기존의 알약 성분에 센서를 내장하여 투약 순응도 여부를 지속적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정신의학 분야의 종사자들은 이 약물의 승인 여부에 대해 반색하며 반기는 분위기이다. 하버드 의과대학의 의사인 아미트 사파트와리는 뉴욕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디지털 알약은 복용할 의지는 가지고 있지만, 이를 종종 잊어버리는 환자들의 건강을 향상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대중화될 수 만 있다면, 투약유지의 지속성을 높여 재발과 증상 악화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획기적인 방법이다.


사진_픽셀

하지만, 분명 스마트 알약을 사용함으로써 생길 수 있는 문제들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가장 큰 이슈는 인권과 윤리성이다. 물론 약물을 사용하기 전에는 충분한 설명과 동의의 과정이 있어야 하겠지만, 정신과적 약물을 사용하는 환자 중에는 자신이 사용 여부를 결정하고 동의하기 어려울 정도로 판단력이 저하된 이들도 있다. 자발성 없이 스마트 알약을 통해 자신의 행동이 모니터링된다면, 여기에는 분명 인권침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 기술이 더 발전하여 단순 투약 여부 뿐만이 아닌 생체 내의 정보를 모니터링 할 수 있다면 이는 더더욱 문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환자에게는 끔찍한 폭력의 행태로 느껴질 수도 있다.


조지오웰의 ‘1984’라는 소설에는 국민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빅 브라더’가 등장한다. 스마트 알약이 또 다른 형태의 ‘빅 브라더’가 될 지, 정신건강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는 시발점이 될 수 있을지는 연구자들뿐만 아니라 사회가 함께 고민해 나가야 할 부분일 것이다.




글쓴이_신재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계명대학교 의과대학 및 동 대학원 졸업

(前) 국립부곡병원 진료과장

(前) 국립공주병원 진료과장 / 아동청소년 정신건강센터 진료과장

(現) 순영병원 진료과장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한국인지행동치료학회 평생회원

대한불안의학회 불안장애 심층치료과정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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