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신의학신문 Dec 04. 2017

SNS로 유명 배우를 진단한 동료 의사에 대하여


[정신의학신문 : 김정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2017년 11월 26일 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유명 배우에 대한 개인적인 소견을 본인 SNS 올렸다. 그 유명 배우가 작성한 SNS와 그 이외에 몇 가지 근거를 토대로 급성 경조증 상태임을 주장한 것이다. 이에 해당 배우는 물론, 대한정신건강의학과 봉직의협회를 포함한 전문의들, 네티즌들까지 이런 언급 자체가 전문가로서 부적절한 처신이라며 비난을 했다. 하지만 지난 29일 해당 전문의는 자신의 소견을 SNS에 올린 것이 ‘정신과 의사로서 의무를 다한 것’이라며 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이에 현재 쟁점이 되고 있는 몇 가지 사항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


첫 번째. 정신과 진단은 의사-환자 관계가 성립된 이후에 내리는 것이 가능하다. 법적으로 환자나 환자의 법적 대리인이 요청하지 않는다면, 의사-환자 관계가 성립되지 않지 않는다. 의학적으로도 이 관계없이 정신과 진단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진단을 위해 환자를 진료실 안에서 관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진료실 밖에서의 생활을 아는 것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처음 보는 의사와 진료실에서 면담을 하게 되면 누구나 어느 정도 위축되기는 마련이다. 하지만 진료실 밖에서도 그 사람이 위축되어 있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그렇기에 진료실 안에서의 환자 모습으로만 진단을 하는 것 자체가 정확성이 떨어지는 일이다. 따라서 진료실 밖 정보를 전달해 줄 사람이 필요하고, 이 사람은 보통 환자 본인이거나 보호자다. 그렇기에 진단에는 의사-환자 관계가 필수적이다. 해당 정신과 전문의와 유명 배우는 의사-환자 관계조차 아니기에, 급성 경조증 상태임을 말하는 것이 부적절하다. 또한 의사-환자 관계가 없기 때문에, 그가 주장하는 ‘정신과 의사로서 의무’도 실재하지 않는다.


두 번째. SNS를 근거로 한 진단이 얼마나 타당성이 얼마나 있는지 여부이다. 최근 정신과 영역에서도 머신 러닝을 활용한 진단에 대해 활발히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환자가 사용하는 언어와 심리 검사 결과 등의 자료를 활용하여 자살 위험, 조현병 가능성 등을 예측하는 연구들이 이에 해당한다. 하지만 기분장애 환자들의 SNS사용 패턴 변화에 대한 논의는 정신과 의사들의 사적인 대화에서 오가는 수준이지, 연구로 제대로 검증된 바 없다. 또한, SNS는 결코 개인의 평균적인 생활을 반영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을 때는 조증 환자처럼 보인다. 별 것 아닌 것도 즐겁고 행복하며, 말과 행동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모습이 그 사람의 평균적인 생활을 반영하는 것은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없을 때, 그 사람의 모습은 또 다르기 때문이다. SNS역시 마찬가지 이다. 개인의 평균적인 생활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단점 때문에, 아직은 정신과적 진단 소재로 검토되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검증된 적 없는 이론과 방법을 주된 근거로, 한 사람에게 정신과 진단을 내리는 것은 폭력이다. 왜냐하면, 정신과 진단을 받았다는 것 자체가 아직 우리 사회에서는 ‘주홍 글씨’ 이기 때문이다.


세 번째. 윤리적 문제이다. 진료를 요청하지 않은 사람을, 검증된 적 없는 이론과 방법으로, 진단을 내리고, SNS에 공개했다. 이 과정 하나하나에 윤리적인 문제들이 있어, 그 모든 것을 구체적으로 언급하기 힘든 정도이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취득을 위해서는 필기시험을 통과해야 하며, 자신이 수행한 정신치료증례에 대해 검토 받는 과정이 있다. 이 증례 검토에서 중점적으로 확인하는 부분이 바로 치료가 윤리적으로 진행이 되었는지 이다. 만약 해당 전문의가 이 유명 배우의 증례를 전문의 시험에서 검토 받는다면, 정신과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지 못할 것이 자명하다.


해당 전문의가 유명 배우에게 내린 진단이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위의 근거들을 토대로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정신과 전문의로서 옳은 진단을 한 것이 아니라, 한 개인이 우연히 진단을 맞춘 것일 뿐이다.’


전문가로서 자신의 지식을 활용하는 것은 그 사람의 자유이다. 하지만 한 인간이 자신의 사적인 부분을 지키고자 하는 것은 권리이다. 내 자유와 다른 이의 권리가 충돌할 때, 자유는 권리를 이길 수 없다. 전문가는 종종 이 점을 착각하곤 한다. 만약 해당 전문의가 이런 착각으로 인해 실수를 한 것이라면, 실수를 인정하고 발언을 철회했으면 한다. 이런 인정과 철회가 해당 전문의를 다시 전문가로 회복시킬 것이다.




정신의학신문 홈페이지 바로가기

www.psychiatricnews.net

작가의 이전글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자살 심리부검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