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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자는 차이콥스키 5번을 만났다: 연습에서 음악으로

심리학자의 좌충우돌 바이올린 도전기 (6)

by 단팥크림빵

오케스트라에서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을 연습한 지 네 달이 지났습니다. 매주 수요일 퇴근 후 이어지는 두 시간의 합주는 늘 기다려졌습니다. 지휘자 선생님의 해설을 들으며 곡이 달라지고 다른 파트의 선율이 들리기 시작했어요.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내는 순간은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처음 5월에 곡을 접했을 때는 아무것도 또렷하지 않았습니다. 무엇이 주제인지, 왜 그것이 중요한지조차 들리지 않았고, 악보를 펴고 들어도 음정과 박자는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감흥은 잠시 스치듯 흘러가 버렸고, 답답하고 막막했어요.


결국 7월부터 개인 연습을 시작했습니다. 작년에는 겨우 열 번의 연습으로 무대에 올랐지만, 30분에서 90분까지, 스물한 번의 연습을 채워왔습니다. ‘의도가 없는 연습은 반복 노동일 뿐’이라는 작년의 교훈을 기억하며, 프레이즈, 스케일링, 활 쓰기 등 구체적인 목표를 잡고 다루려고 했습니다. 횟수가 적더라도 방향이 있는 연습을 할 때 즐겁게 계속할 수 있었습니다.


연습을 거듭하며 여러 문제와 습관을 자각할 수 있었는데요.

옥타브가 올라갈 때마다 왼손 약지가 흐트러져 소리가 뭉개짐 → 약지를 단단히 누르고 천천히 소리를 내며, 강약은 오른손 활로 조절하기.

활을 윗팔로만 그어 소리가 둔탁해짐 → 활이 미끄러지거나 팔로만 움직이고 있지 않은지 점검하기.

“천천히 못 하면 빠르게도 못 한다”는 원칙 → 메트로놈을 140이 아니라 80부터 켜고 차분히 쌓아가기.

프레이즈 시작과 끝에서 소리가 튀는 문제 → 손목에 충분한 탄력을 주어 ‘피아노’도 꽉 찬 소리로 시작하고, 매끄럽게 마무리하기.

피아노와 포르테의 대비가 살아나지 않는 어려움 → 기본기를 자동화하면서 손목과 활의 조율을 더 세밀히 연습하기.


이 과정을 통해 드러난 것은 단순한 테크닉의 문제가 아니라 제 마음가짐이었습니다. 연습을 하다 보면 조급하게 활을 그어대고 싶은 욕구가 불쑥 올라옵니다. 하지만 그것을 바라보고 다스리는 과정이 곧 음악을 잡아가는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합주에서 단원들의 연주를 들으며 따라가고, 지휘자 선생님의 해설을 떠올리며 연주하다 보면, 자세와 표정이 저절로 변하고, 그 안에서 음악이 조금씩 살아났습니다. 예전에는 연주자의 몸짓과 표정을 단순한 연출로 여겼는데, 이제는 음악이 흘러가며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표현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곡의 구조가 완전히 들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반복 속에서 “같지만 다른” 흐름, 피아노에서 포르테로 치닫는 긴장, 반복되면서도 달라지는 차이를 발견하게 됩니다. 악보와 지휘자 선생님의 해설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고민해보기도 합니다. 그 고민 속에서 지금까지의 합주와 해설, 개인 연습의 경험들이 엮여 음악이 점점 보이고 들리기 시작합니다.


이대로 무대에 오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여전히 벽처럼 느껴지는 부분들이 많습니다. 연습을 통해 덜 빠른 구간은 조금 더 자신감 있게 자동적으로 수행하면서 의도를 담아내보려 합니다. 무대까지 하고 싶은 만큼 열심히 해볼 뿐입니다. 전공자가 아니라 취미생이라는 사실을 떠나, 최고의 음악이 아니라 최선의 음악이 제가 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의 마지막 작품을 남기려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합주와 연습을 통해 음악이 읽히고 들리고 잡혀나가는 과정, 그 안에서 생겨나는 질문들과 고민들, 그 자체가 즐겁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무대에서는 단원들과 함께하기에, 나의 부족한 음정과 색깔은 그 속에 가려질 수 있습니다. 그렇게 또 가봅니다. 어떤 음악으로 펼쳐질지 모르는, 그래서 더 재밌는 미지의 세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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