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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dam Jan 21. 2023

그는 왜 초상화만 그렸을까?

영국의 구상화가 루시안프로이트에 대하여

루시안 프로이트(Lucian Michael Freud, 1922-2011)는 건축가 에른스트 프로이트의 아들이자

오스트리아의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프로이트 손자이다.  또 그의 형제 중 하나인 클레먼트는 정치가 겸 작가이자 방송인이다. 이렇듯 유명한 가문 출신이지만 정작 그는 대중들 앞에 나서는 것도 , 그럴듯한 공적인 직함을 얻는 것도 극도로 싫어했다고 한다.


루시안은 위대한 사실주의 화가 가운데 한 명이지만 그의 그림은 천천히 발전했기 때문에 그의 명성은 비교적 적인 수의 작품들에 의존할 뿐이다. 따라서 공공 미술관에서 그의 작품들을 많이 접하기는 사실상 

매우 어렵다.



영국 내셔널 갤러리 외부에 있는  루시안 프로이트의 전시회 안내판 (출처: 내셔널갤러리 홈페이지)


이렇게 쉽게 접하지 못할 그의 전시회가 현재 영국 내셔널 갤러리에서 현재 진행 중이다.

(2022.10.1-2023.1-22)

이 전시회는 영국 최고의 구상 화가 중 한 명인 Lucian Freuddml 그림을 10여 년 만에 만날 수 있는 

첫 메이저급 전시로 그의 초기 작품에서 그의 잘 알려진 대규모 캔버스와 기념비적인 벌거벗은 초상화에 이르기까지 약 70년의 경력 기간 동안 프로이트의 그림이 어떻게 변했는지 보여주는 보기 드문 전시회이다.



현재 진행 중인 영국 내셔널 갤러리의 루시안프로이트 전시회 전경(출처: 내셔널갤러리 홈페이지)


베를린에서 태어난 루시안프로이트는 1933년 독일 나치즘을 피해 영국으로 이주해 온 유대인이다. 

그의 초기작품들은 예기치 않은 대상들의 초현실주의 적인 배열과 꿈같은 신낭만주의적인 특징이 

결합되어 있다.



루시안 프로이트의 두 번째 부인의 초상화 (출처: 내셔널 갤러리 홈페이지)


1940년대에 비교적 이른 나이에 결혼을 한 그는 총 2번의 공식적인 결혼을 하게 된다.

하지만 공식적인 결혼을 한 상황에서도 다른 여인들과의 관계를 통해 열명이 넘는 혼외자들을 낳게 된다.

그의 초기 작품 중 하나인 위 작품을 보면 큰 눈을 한 여인의 모습과 비교적 자세히 그린 터치감 하나하나가 상당히 세밀하고 자세하게 그런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무렵 그는 부드러운 붓질을 위해 '흑담비털로 만든 붓'을 사용했다고 하는데 이는 상당히 오랜 시간 인내심을 가지고 세심하게 작업해야 하기 때문에 Super Realist 적인 면모를 보여줬다고 볼 수 있다.



첫 번째 부인의 초상화 (출처: 내셔널 갤러리 홈페이지)


고양이를 안고 있는 첫 번째 부인의 초상화 (출처: 내셔널 갤러리 홈페이지)


고양이를 안고 있는 첫 번째 부인의 초상화 확대 사진 (출처: 내셔널 갤러리 홈페이지)


그는 세심한 관찰과 표현이 돋보이는 그만의 개성적인 초상화 양식을 발전시켰는데 위 작품에서 볼 수 있듯이 윤곽선과 질감의 명료한 표현과 형태의 소박함, 그리고 지나치게 커다랗게 묘사된 얼굴의 과장된 표현 등이 그의 초상화에서 두드러지는 특징이라 볼 수 있다.  또한 전통적으로 초상화에서 자주 사용되는 꽃과 동, 식물을 배치하기도 했다.


사실 그가 활동했을 20세기 초에는 피카소를 중심으로 한 입체파나 큐피즘, 초현실주의 같은 화풍들이 

유럽전역에 유행했을 때였기 때문에 그의 이런 정확하게 인물의 특징을 묘사하는 화풍이 어찌 보면 그 당시에는 상당히 독특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의 두 번째 부인과의 모습을 담은 사진



흰 개와 함께 있는 여자 


그는  종종 그림의 주제, 즉 초상 인물을 사물이나 동물과 함께 묘사하곤 했다. 

예를 들어 위 작품에서 수컷 테리어는 소녀의 팔에 기대어 누워 있다.  

이는 동물과의 교감을 보여주는 그의 작품 속 하나의 특징이라 볼 수 있겠다.




이 작품의 경우도 성소수자로 보이는 두 남자가 누워있는 모습을 비스듬한 각도로 묘사하고 있는데

한 남자는 벗은 상태로 엎드려 있고 또 다른 남자는 그런 남자의 다리에 한쪽 손을 얹은 채 (위에 강아지가 주인 팔에 발을 올려놓은 것과 비슷) 옷을 바르게 입은 상태로 천장을 보고 누워있다. 

각도나 방향성, 색조의 대비를 명확하게 드러냄으로써 관객의 시선을 강하게 집중시키고 있다.



호텔 베드룸(1954)


이 작품은 1954년 베니스 비엔날레 출품작으로 그의 인기작품 중 하나이다.

침대에 누워있는 여인의 모습 쪽은 마치 조명이 비친 듯 밝고 반대로 침대를 바라보고 서 있는 남자가 서있는 쪽은 얼굴도 , 입고 있는 옷 색깔도 매우 어둡다. 그의 평소 여성편력으로 미루어 짐작건대 여인과의 이별을 앞두고 있는 듯한 자신의 실제 상황을 그린 것 같다. 침대 위에 누워 초췌한 얼굴로 먼 곳을 지그시 응시하고 있는 여인의 모습을 통해 에로틱한 뉘앙스와 침대 위에 덮인 이불의 정밀한 디테일이 긴장감과 갈등상황을 미묘하게 묘사하고 있다.




초기에 자신의 여인들을 그린 초상화를 보면 붓을 아주 고운 흑담비털을 사용해 그릴 정도로 세밀하고 정밀하게 그렸다는 게 특징이라면 후기 그의 자화상은 붓터치가 상당히 굵직하고 두껍다는 것을 확연히 알 수가 있다. 이런 느낌을 살리기 위해 그는 흑담비털 붓에서 거칠거칠한 돼지털 붓으로 바꾸어 그렸다고 한다. 관객을 뚫어지게 응시하면서 바라보는 모습이 상당히 인상적이다.



자화상, 1956, 내셔널 갤러리 소장


개인적으로 그가 그린 수십 점의 자화상 중에서 특히 맘에 드는 작품이다. 

언뜻 보기엔 채색을 하다만 미완성 작품처럼 보이지만 자신이 의도적으로 보여주고 싶은 부분만 그려서 보여준 작가의 의도가 보이는 완성작품이다. 루시안 프로이트만의 개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라 생각된다.



자신의 딸 벨라의 12세 때 누드화


마지막으로 소개할 작품은 자신의 딸 벨라의 12세 때의 모습을 그린 누드화이다.

사실 그가 아무리 세계적인 정신분석학의 대가인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손자이고 유명한 예술가 집안의 화가라서 남들과의 다른 그만의 정신세계가 있다고 하더라도 2번의 결혼과 수십 명의 혼외자를 낳은 것도 모자라 단 한 번도 그런 자신의 성적 취향에 대해 죄의식을 느낀 적이 없었다고 하니 정말 어이없지 않을 수 없다.


거의 90살까지 엄청나게 긴 세월을 알면서 그를 거쳐간 수많은 여성들은 무엇이며 그들과의 관계를 통해 낳은 수많은 자녀들의 의미는 과연 무엇인지 한 번쯤 생각하게 만드는 부분이다. 하물며 위 작품 속 모델이 자신의 12살 난 딸아이를 그렸다고 하니 정상적인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의 작품세계가 희한하다고 느낄지 모르겠다.


작품을 보면서 느낀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존 버거가 쓴  '다른 방식으로 보기'라는 책 속에 'Nude"와 'Naked"의 차이점에 대해 나온 구절이 있다. 누드는 전통적으로 신화 속 여신을 그리거나 마네의 올랭피아처럼 여인을 바라보는 관람자의 시선을 응시한 지극히 '목적성'을 둔 작품이다.

하지만 위 작품처럼 고개를 숙이고 바닥을 응시하거나 신체적 묘사를 세밀하게 하지 않은 작품의 경우엔 naked(벌거벗은)에 해당됨으로써 다분히 목적성이 없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다시 말해 자신의 12살 난 딸의 신체변화에 대해 다른 사람들의 초상화를 그렸듯이 그의 딸의 누드화를

다른 사람에게 판매하기 위한 목적이 아닌 '단순기록'의 형태로 그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지 않고서야 정상적인 아버지로서 딸의 벗은 모습을 판매목적으로 그릴 수 있겠는가?




"If you don`t know them, it can only be like a travel book."

(내가 잘 모르는 사람의 초상화를 그린다면 그 그림은 마치 여행책자처럼 될 수 있다)



이 말은 루시안 프로이트가 한 말이다. 

이 말인즉슨 루시안 자신이 잘 모르는 사람의 초상화를 그린다는 것은 마치 모르는 미지의 장소에 대한 여행소개 책자처럼 그 대상을 '정확' 하게 알기 위해 그린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그의 작품은 '디테일'이 포커스가 아니라 '정확함'이 목적이란 것이다. 

자신도 잘 모르는 사람의 초상화를 그림으로서 그리는 동안 해당 인물의 특징을 발견하게 되고 그런 특징들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의도적으로 나타냄으로써 비로소 한 인물의 초상화를 완성할 수 있다는 뜻이다. 외적인 정확성을 강조한 그의 초상화들은 프로이트 자신의 성격적 특징인 동시에 조형적 스타일을 구성하여 특정 부분에 자신의 정밀함을 추구한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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