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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dam Nov 24. 2022

사람들은 왜 끊임없이 괴물들을 그리고 있는가?

그림 속 괴물들에 대하여

역사 속에서 등장하는 괴물은 인간의 역사와 함께 , 아니 어찌 보면 그 전 신화 속에 늘 등장하는 존재였다. 메두사, 아쉬타르, 사이렌(siren), 판(pan), 프랑켄슈타인, 등등 시대와 지역, 나라에 따라 부르는 명칭만 다를 뿐 이 모든 명사들은 모두 '괴물'을 뜻한다. 인간의 관점에서 볼 때 우리와는 많이 다른 그들의 존재가 물론 공포심도 있었지만 그에 앞서 '호기심'이 먼저 발현되어 궁금증을 야기시켰고 그런 호기심 때문에 그들 '괴물' 들을 문학, 서사, 신화, 회화, 역사 등에 언급해오지 않았나 싶다.


caravaggio , medusa (1597) 카라바조, 메두사


메두사(Medusa)는 신화 속에 등장하는 괴물이다. 

우리가 메두사를 떠올리면 뱀의 머리를 가지고 있는 흉측한 모습을 상상하곤 하는데 위 그림 속 카라바조의 대표작인 메두사를 봐도 엄청 징그럽기만 하다. 하지만 메두사는 본래 아름다운 여인이었다고 한다.


두 언니보다 더 아름다웠던 메두사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런데 몰래 포세이돈을 사랑했던 아테네는 메두사에게 질투를 느끼고 이에 끔찍한 모습을 한 괴물로 변하게 한다. 위 그림에서는 메두사가 마치 남자의 얼굴을 한 것처럼 그려졌지만 아테네는 메두사를 머리카락은 무수한 독사, 톱니같이  날카로운 치아, 멧돼지의 엄니, 청동 손, 황금 날개, 튀어나온 눈, 긴 뱀 혀를 가진 혐오스러운 모습으로 변하게 된다. 



메두사, 피터 폴 루벤스 (1618)


흉측한 모습으로 변해버린 자신의 모습을 본 메두사는 큰 충격에 빠졌고, 이내 두 언니들과 함께 먼 곳으로 도망쳐 살게 한다. 흉측한 모습도 끔찍한데 아테네는 누구든 메두사를 보는 자는 돌로 변한 게 되는 형벌을 추가한다. 도망쳐서 살고 있던 메두사가 아직도 계속 눈엣가시처럼 신경이 쓰였던 아테네는 페르세우스를 시켜 메두사의 머리를 갖고 오게 하고 현명했던 페르세우스는 메두사를 만나자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거울'을 준비해 스스로 죽게 만들어 머리를 얻게 된다.


이런 명화 속 스토리에 반드시 포함되어 있는 신화들을 살펴보다 보면 늘 느끼지만 그리스 로마 신화 속 여신들의 사랑과 질투는 지금의 막장드라마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진 않은 것 같다.



사진 속 초상화에 등장하는 인물은 Morgante, 우리말로 굳이 해석하자면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에 나오는 '난쟁이'란 뜻이다.  지금도 우린 이런 분들을 100% 우리와 같은 사람으로 차별이 전혀 없는 시대에 살고 있진 않지만 이 그림이 그려진 1553년도에는 기독교 교리에 어긋나는 대상인 Morgante에 대한 차별은 상당히 심했다. 사람들에게 푸대접과 냉대를 받은 이유는 그 당시 인간 신체에 대한 기준이 존재하였는데 이 기준은 기독교 교리에 나왔던 내용을 기반으로 하였고 그에 미치지 못한 이런 사람들은 error of Nature(자연의 실수), Physica Curiosa (신체적인 호기심 대상들)라는 말 같지도 않은 이름으로 낙인찍혀 살아야 했다.


위 작품도 성기를 가리고 Morgante가 마치 전쟁에 나가서 승리를 하고 온 장군처럼 독수리를 들거나 사냥에서 잡아온 동물을 들고 서있지만 마치 과학 검사를 하듯 Morgante의 신체를 아주 상세하게 샅샅이 그려 이들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하기 위한 수단으로 그려지곤 했다. 이는 그들의 호기심의 대상인 이들의 몸이 과연 어떤 형태로 되어 있는지 몹시 궁금해서 이들을 그렸을 뿐이지 정말 장군이나 공작, 백작처럼

경외하거나 찬양하는 마음으로 그린 것이 아니었단 뜻이다.



Portrait of Antonietta Gonzales, 1595


카나리 제도에서 발견된 야만인이었던 돈 피에트로는 프랑스의 왕 앙리에게 보내졌다가 이후 파르마의 대공에게 보내졌다. 내 이름은 안토니에타이고 돈 피에트로는 내 아버지이다. 지금은 소라냐 후작부인 레이디 이사벨라 팔라 바치 나의 궁에서 생활하고 있다.



이 글은 위 작품 속 소녀(?)가 들고 있는 편지 속 내용이다.

이 소녀의 아버지 돈 피에트로는 온몸에 털이 많은 다모증에 걸렸었고 이를 신기하게 본 각국의 왕과 왕족들은 이 남자에게 상당한 호기심을 갖게 된다. 그래서 편지의 내용처럼 이 남자를 이곳저곳으로 보내어 마치 서커스의 광대처럼 살아가게 한다.




단순한 궁금증과 호기심을 넘어 이 남자가 정상인 여인과 결혼을 하여 자식을 낳으면

과연 어떤 모습이 될지 궁금했던 당시 사람들은 이들을 돌보던 간호사와 강제로 결혼을 시키고

그림 속 내용처럼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를 낳게 한다.

이 그림 속 여자아이의 모습이 바로 윗 그림 속 편지를 들고 있던 소녀의 모습이다.

이들은 일반적으로 정상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간 게 아니라 괴 물화된 사람들 (Physica Curiosa)의 대상으로 냉대와 무시를 당하며 살아간 것이다.



John henry fuseli , The nightmare ,1781


이성이 잠이 들면 괴물이 깨어난다


18세기로 넘어가면서 산업혁명과 같은 근대화 혁명이 일어나게 되고 사람들은 세상을 이성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성적 사고가 과도하게 발달하면서 인간 자체의 욕망들이 억눌리게 되고 결국은 괴물이 탄생하게 된다. 이러한 괴물들은 이성적 인간들의 악몽 속에 주로 등장하게 되는데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헨리 푸 젤리의 '악몽'이란 작품이다.


침대 끝에 머리를 늘어뜨리고 긴 목을 드러낸 잠자는 여성은 관람객의 시선을 여인 위에 올라탄 인큐버스에 의해 잠식된다.  잠자는 여인은 마치 생명이 없는 것처럼 보이며 등을 대고 누워 악몽을 꾸는 것으로 믿어지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그녀의 화려한 색채는 배경의 더 어두운 빨강, 노랑과 대조를 이루고 있다.  단순한 여인의 꿈속 괴물을 묘사한 것이 아니라 일부 학자들 사이에선 노골적인 섹슈얼리티를 묘사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왼쪽 그림은 르네 마그리트의 collective invention, 1934이고 오른쪽은 1984년에 개봉되었던 영화 'splash'에서 주인공으로 나온 인어의 모습이다.


이 두 그림을 보면 어떤 생각이 나는가?

왼쪽 마그리트의 작품은 머리가 물고기지만 하체는 여인의 다리이고 오른쪽은 그와 반대의 상태이다.

왼쪽은 소통이 불가능하지만 오른쪽은 소통이 가능해 감정을 공유할 수 있다. 하지만 왼쪽의 경우엔 비록 소통은 불가능하지만 혹시라도 사랑에 빠지게 된다면 그 이상의 남녀관계를 진행할 수 있겠지만 오른쪽 인어의 경우엔 감정을 공유하고 소통에 성공하더라도 결국 그 이상의 관계를 진행할 순 없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둘 중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 또한 둘 중 어느 쪽을 괴물이라 하겠는가?




Ulysses and the Sirens,  John William Waterhouse, 1891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사이렌 소리'는 위 작품과 관련이 깊다.

경적소리, 사이렌 소리는 사실 우리 귀에 그다지 좋은 소리는 아니다. 

알람 소리같이 귀를 시끄럽게 자극하여 환기를 시키거나 주목을 시킬 목적으로 많이 쓰인다.


사이렌 소리의 siren은 원래 여자의 몸 + 새가 결합된 일종의 '괴물'이다.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사이렌은 바다에 살고 있다가 배가 나타나면 마법의 소리 같은 이상한 소리를 내어 선원들을 홀리게 하고 결국은 정신이 나간 선원들 때문에 배가 침몰하게 된다고 한다.

이런 전설을 갖고 있는 사이렌은 예나 지금이나 그리 좋은 이미지의 단어는 아닌 것 같다.



에곤 실레, 두 개의 자아 , 1915


마지막으로 소개할 작품은 에곤 실레의 두 개의 자화상이다.

에곤 실레는 오스트리아의 화가로서 28세의 짧은 생을 살다 간 화가이다.

그 처럼 그의 아버지도 일찍 돌아가셨는데 어린 시절 아버지의 부재로 일찌감치 화가가 되기로 작정한 실레는 그의 동경의 대상이던 구스타프 클림트를 아버지처럼 따라다니며 그림을 배우기 시작한다.

장남으로서의 무게와 책임감이 컸던 실레는 예술가로서의 삶도 놓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런 그는 늘 자신 속 이중적 자아를 놓고 엄청난 고민을 했다고 하는데

위 작품 속 '두 개의 자아'도 왼쪽은 긍정적 자아, 오른쪽은 독설적 자아를 그려 

혼돈 속의 자신의 모습을 그림으로 표현했다고 한다.


사실 그때나 지금이나 시대를 초월하여 간혹 '사람'에게는 자신의 모습을 하나의 자아가 아닌 두 개 세 개, 혹은 그 이상의 여러 가지의 자아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있다.

지킬과 하이드의 모습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지만 부정적 자아인 '하이드'의 모습을 인간의 이성으로 어떻게 현명하게 누르고 살 수 있을지의 싸움이란 게 우리들의 자아 속에 숨어 있지 않을까? 


나 스스로 별 것 아닌 일에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라 극도로 짜증이 나거나, 그다지 흥분하지 않아도 될 일에 과하게 흥분할 때, 혹은 하지 않아도 말을 하면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거나 극도로 예민하게 때, 이런 우리에게 가끔 육체의 모습은 멀쩡해도 '괴물'의 모습이 보일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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