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의 진화와 인간의 적응 속도 사이 우리는 아직도 사바나에 머문다
인간은 사바나 환경에서 수백만 년 동안 살면서 그곳에 뇌와 마음을 적응시켜왔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발생한 산업혁명으로 도시라는 새로운 서식지가 등장했고, 여기에 적응하려 노력하고 있지만 빠르디 빠른 환경의 진화에 비해 느린 인간의 적응 속도 탓에 아직도 사바나를 그리워하는 중이다. 급기야 사람들은 도시에서도 ‘사바나 코스프레’를 시도하며 도시 생활을 재정비하고, 자신만의 자연을 사유하고 있다.
아직도 사바나 환경을 기준으로 작동하는 인간
광활하게 펼쳐진 초원이 하늘과 맞닿아 있는 사바나 초원. 그곳이 바로 최초의 인류,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고향이자 삶의 터전이었다. 손을 뻗으면 딸 수 있는 과일이 주렁주렁 열려 있고, 들판에는 사냥감들이 뛰어다녔다. 맹수가 나타날 때면 중간중간 서 있는 나무 위로 후다닥 대피했다. 인류는 이곳 사바나에서 수백만 년 동안 터전을 잡고 살면서 그 환경에 최적화되었다. 아직도 인간이 사바나 환경을 기준으로 작동한다는 진화심리학적 증거가 곳곳에서 발견된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물에 대한 우리의 감정이다. 우리는 왜 물을 보면 이상하리만치 안도감과 쾌감, 평화로운 감정을 느낄까? 그것은 바로 사바나 초원에서 유난히 얻기 어려웠던 자원이 물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물 없이는 단 일주일도 살 수 없다. 그러나 사바나에서 마실 수 있을 만큼 맑은 물을 얻기가 쉽지 않았다. 이 때문에 수도꼭지만 틀면 쉽게 물을 얻을 수 있는 지금까지도 그 때의 습관이 남아있어 물을 보면 자연스레 안도감과 쾌감을 느끼는 것이다. 수백만 년 동안 사바나에서 살면서 민감해진 생존을 위한 신호에 자연스레 반응하는 것이다.
하지만 어느순간 시작된 산업혁명으로 서식지 환경이 바뀌기 시작했다. 어려서 친구들과 놀던 뒷동산에 아파트가 세워졌고, 물고기가 노닐던 냇가는 주차장이 되었다. 발전이라는 명목 하에 그 어디에도 ‘노는 땅’이 허용되지 않았다. 사람들도 한동안은 도시의 매력에 빠진 듯 보였다. 너도나도 아파트로 이사를 하였고, 논과 밭이었던 곳에 세워진 백화점에서 쇼핑을 즐기며 자동차에 물건을 가득 싣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인간은 풀 한포기 없이 규격에 맞춰 짜여진 공간 속에 사는 것에 점점 불편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광산과 발전소 개발로 주변 자연이 훼손되자 삶의 질이 떨어졌다고 느끼는 것은 물론, 정체성의 혼란을 느꼈다. 오랜 세월 광활한 자연 속에 살아왔으니 꽉 막힌 회색빛 도시에 답답할 수 밖에. 환경심리학자인 미국 일리노이대학교의 프란시스 밍쿼 교수는 창밖으로 황량한 풍경만 보이는 곳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잘 정리되지 않더라도 녹지가 보이는 곳에서 사는 사람들에 비해 성격이 퉁명스럽고, 흥분을 잘하며 다른 사람을 때리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다. 이는 아직도 인간의 두뇌가 사바나 환경을 기준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조금 남아있던 자연도 오염으로 위태위태하다. 사람들은 눈, 코, 입, 얼굴로 직배송되는 미세먼지를 막으려 마스크는 기본이요, 미세먼지 차단 화장품, 미세먼지 물티슈 등 ‘미세먼지 전용 상품’을 구매한다. 심지어 ‘대기오염 특별 수당’을 지급하는 회사도 있다. 코카콜라나 파나소닉 등의 다국적 대기업은 중국으로 파견을 나가는 직원을 대상으로 대기오염 특별 수당을 지급한다., 공기 청정기나 정수기를 지원하는 기업들도 늘어나고 있다.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을까? 그토록 그리운 사바나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급기야 도시에서 사바나를 코스프레하다
그렇다. 가만히 있을 인간이 아니다. 인간은 도시에서도 본능을 좇아 ‘사바나 코스프레’를 시도하기 시작했다. 가짜 자연으로 진짜 자연의 그리움을 해소하기도 한다. 노르웨이 국영방송공사인 NRK에서는 기차에 카메라를 달아 서남부의 해안 도시 베르겐에서 수도 오슬로까지의 차창 밖 풍경을 7시간 동안 방영하는 대담함을 보였다. 덜컹거리는 바퀴 소리도 편집 없이 그대로 노출하고, 터널의 어둠이나 열차가 잠시 멈춘 동안 정지 화면도 그대로 보여주었다. 기차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는 듯한 느낌을 생생하게 전달한 것이다. 아무런 서사도 없이 자연만 줄곧 보여주는 방송임에도 불구하고 노르웨이 인구 절반에 가까운 250만 명이 시청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집안에 인공 하늘을 설치하기도 한다. 인공조명 창문으로 실제 태양과 하늘을 재현해주는 조명인 코룩스Coelux는 열대·지중해·북유럽 햇빛 등 원하는 지역의 스타일의 하늘을 제공해준다. 나무 그늘에 있을 수도 있고, 해가 진 후 땅거미가 내린 하늘로 바꿀 수도 있다. 하늘이 지루하면 스와이핑하여 바꿀 수도 있으니 오히려 다양해진 사바나의 모습을 즐길 수 있다.
자신이 누리고 있는 환경을 사바나 퀄리티에 맞추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공기 질이다. 매일매일 미세먼지를 측정하고 조처를 한다. 공기청정기 시장은 매년 2배 이상씩 성장하고 있다. 그중에 급성장한 제품이 바로 개인형 공기질 측정기인 어웨어 Awair이다. 어웨어는 온도, 습도, 이산화탄소, 미세먼지 등 공기에 영향을 미치는 다섯 가지 요소를 분석하고, “사람은 명품인데, 공기는 명품이 아니네요? 격을 맞춰봅시다!”라며 공기 관리 방법을 안내한다. 밖에 나갈 때는 개인형 웨어러블 공기청정기를 차고 나가기도 한다. 글로벌 가전 그룹 일렉트로룩스 Electrolux도 가방이나 옷 등에 핀으로 고정하여 어디서나 맑은 공기를 마실 수 있도록 하는 개인용 공기 청정기 콘셉트 디자인을 내놓았다. 같은 공간 안에서도 다른 공기를 마시는 세상이 된 것이다. 요즘 사람들은 이렇게 환경을 사유함으로써 다른 사람들과의 차별성을 둔다.
사실 자신만의 자연을 사유하기란 쉽지 않다. 질 높은 자연을 접하기도 쉽지 않고, 이를 사유하려면 물질적 여유가 뒷받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느 날 갑자기 제주도에 가서 아무도 없는 곳에 집을 지은 이효리의 삶을 부러워하는 것 아니겠는가. 오죽하면 숲세권이 부동산 시장의 영향을 줄 정도이니 말이다. 점점 더 평범함 속에서 ‘깨끗한 자연'을 누릴 수 있는 것이 하나의 고급스러운 기준이 되고 있다.
자연이 주는 럭셔리함
워싱턴에 있는 백인 추장(대통령)이 우리에게 편지를 보내 우리 땅을 사고 싶다는 뜻을 전했습니다. 하지만 하늘을 어떻게 사고팝니까. 맑은 대기와 찬란한 물빛이 우리 것이 아닌데 그것을 어떻게 사겠다는 것인지요.
- 1852년 시애틀 인디언 추장의 편지
미국 정부가 보낸 서신에 대해 인디언 추장이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추장이 생각하기에 환경은 값을 매길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추장의 생각과는 달리, 지금은 오히려 소유주가 없는 땅이 있다는 게 이상하다.
희소성은 수요보다 그것을 충족시켜주는 수단이 질적・양적으로 부족한 상태에서 생긴다. 희소성이 있는 자원은 누구나 갖고 싶어 하지만, 다 가질 수 없으므로 그 가치가 높아지기 마련이다. 물, 공기, 숲 등의 자연은 부존량이 어마어마한 데다가 자원의 질이 기본적으로 높아 누구나 고급 자원을 풍부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 아무도 자연을 사용할 때 돈을 지불할 생각은 하지 않았기에 대동강 물을 ‘판매한’ 봉이 김선달은 사기꾼 취급을 당했다.
그러나 환경오염으로 인해 깨끗한 자연이 희소해지자 자유재의 대표 격이던 자연이 경제재로 변질되었다. 맑은 공기, 숲에 가까운 집 등 환경을 사유하는 현상으로 공적 자원의 질적 차등화가 발생한다. 그리고 깨끗한 물과 공기를 가진 사람과 이를 가지지 못한 사람 사이에 거래가 일어난다. ‘돈을 물 쓰듯 펑펑 쓴다’라는 표현이 있었을 정도로 부족함을 느끼지 못했던 물도 돈 주고 사 마신 지 오래지 않은가. 이제는 생수 가격은 발원지와 포함 성분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지불한 금액에 비례해 더 맑고, 좋은 물을 마실 수 있다. 이러한 추세라면 머지않아 공기를 사기 위해 돈을 지불하는 시대가 도래하지 않을까? 물론 지금은 같은 하늘 아래 같은 공기를 마시고 있지만, 환경 사유화가 확산될수록 같은 하늘 아래 서로 다른 공기를 마시는 때가 오지 않을까? 맑은 공기를 파는 것이 당장은 사람들을 꾀는 것처럼 여겨질지 몰라도, 지금은 봉이 김선달을 오히려 시대를 앞서간 비즈니스맨으로 평가하는 시대니 말이다.
모든 동물은 각자의 서식지에 적응하고, 그에 맞춰 진화한다. 인간 또한, 오랫동안 맹수를 피할 수 있는 나무, 생존에 필요한 물과 열매 등이 적절히 조화된 사바나에서 살아왔고, 그에 맞춰졌다. 그러나 어느 순간, 문명화라는 명목 하에 파괴적인 방식으로 자연을 개발했고, 오염시켰다. 아직도 DNA에는 사바나가 내재되어 있는 인간은 자연을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소유해야만 살아남고,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공유재를 가두어 소유한 사람들이 희소성의 매력을 쟁취하는 동시에 다른 사람의 삶의 기본 요소를 다스리게 되었다. 아마 머지않아 ‘원시시대의 순수한 자연을 소유할 수 있는가’가 럭셔리의 기준이 될 것이다.
<참고 문헌>
강한나, 김보름. 마이크로 트렌드 심리학. 미래의 창.
에드워드 윌슨, 《바이오필리아》, 안소연 역, 사이언스북스, 2010
Adam Rubenfire, “중국 파견 직원에게 ‘대기오염 특별 수당’ 지급하는 기업 증가”, [월스트리트 저널, 2014.07.16]
전중환. 《오래된 연장통》, 사이언스북스, 2010.
김현미, “보지 않고 틀어놓는 ‘트는 TV’에 주목하다”(기획칼럼_2. 편집과 연출의 제약을 없애다)”, [Trend Insight. 2014.08.04.]
찰스 몽고메리, 《우리는 도시에서 행복한가》, 윤태경 역, 미디어윌,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