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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혜림 Oct 13. 2017

#프롤로그 : 이름에게

모든 이야기의 시작. 공의 반란, start-

#프롤로그 : 이름에게

모든 이야기의 시작-

영 번째 편지-


이름에게


1

예전에 한 친구가 내게 건넨 편지에는 이런 구절이 적혀있어.

‘나는 빈틈을 많이 가지고 있어. 쉽게 감동하고 길게 우울해하지.

혜림아, 네게 말하자면 내 기본적인 정서는 부끄러움이야.’

나는 이 문장들을 여러 번 곱씹었어.

내 이야기 같아서, 저녁마다 편지를 다시 쥐고는 꼭 꼭 곱씹었어. 

쉽게 감동하고 길-게 우울해하지.

내 기본적인 정서는 부끄러움이야.

부끄러움이야.   

  

2

나는 나대로 살고 싶었어.

살아감에 행복했으면 좋겠고, 행복할 수 있는 일을 찾기를 바랐어. 언제나 그랬어. 

그런데 난, 나대로 살고 싶은 욕망만큼, 미움받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 속에 갇혀있었어.

꽁꽁 숨기고 있는 나의 나약함과 추하고 이기적인 모습과 

그다지 멋지지 않은 속내와, 겁과 상처와 

불안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순간,

사람들이 나를 하찮게 볼 것 같았어.

더 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을 것 같았어.  

누군가에게 미움을 받고, 그래서 겪는 외로움을 견딜 자신이 없었어.


그래서 난, 여전히 사람이 무서우면서 또 여전히 사람들 속에서 나름의 인정을 받고 싶어 했어.

그 욕구가 충족될 때 비로소 '자존감'을 되찾았고, 

누군가의 시선이나 말에 상처받는 순간 가차 없이 '자존감'을 잃던 나는 스스로를 하찮게 여겨버렸어.

하찮아진 나는 내가 부끄러웠지.


나는 참 주위 시선에 많이도 흔들렸어.

내 마음과 행동의 기준은 온통 내가 아니라, 타인이었던 거야.

나의 맥락이 아니라 너의 맥락으로

나의 시선이 아니라 너의 시선으로

내 삶이 해석되도록 내버려 두었던 거야. 


3

지난봄에, 한 친구랑 동네 놀이터에 앉아 이야기를 했어.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고, 공기는 조금 선선했지.

우리는 열아홉에 대한 이야기를, 불안을, 외로움을-

어쩌다가 하나 둘 털어놓았는데, 

그 아이가 문득 이런 말을 하는 거야. 

“내 인생 누가 대신 살아주는 것도 아닌데.”


앞뒤 맥락은 생각이 안 나. 그냥 이 문장만 마음속에 동동 떠다녀 아직도. 

그러게. 내 인생을, 누가 대신 살아줄 것도 아닌데. 그렇지?

내 인생을 향해 던지는 누군가의 단편적인 시선과 언어들에

왜 내가 흔들려야 하나-라는 생각을 그날 밤이 되어서야 처음 하기 시작했어.

타인의 삶의 맥락이나 시선에 휘둘리지 않고, 

나 살고 싶은 대로 살아보는 것.

그렇게 살아봐야 억울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처음 하기 시작했어.     


4

생각을 오래, 많이 했어.

그러다가 결국 나는, '지금 행복하기'-로 마음먹어버렸어.


‘그래도 대학은 나와야 하지 않을까’하는 불안감에 매달리는 맹목적인 입시 공부는 

더욱 나를 불행하게, 그리고 피폐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몇 번의 모의고사를 통해 깨달았어.

나는 언제나 글을 쓰고 싶었지만 글만 쓰며 살고 싶은 사람은 아니어서

한 가지 학과를 정해 대학에 가는 것이 현재의 나에게 큰 열망으로 다가오지 않아.

지금 행복하게- 살고 싶은 내 삶의 주목적이 대학은 아니라고 생각했어.


결국 열아홉의 나는 입시 준비를 하지 않아.

스무 살의 나는 대학에 가지 않아.


5

열아홉의 나는 입시공부가 아니라

은교와 창업 준비를 시작해.

글과 그림. 예술과 문학에 관심 많은 우리는, 

우리만의 상상력으로 무언가를 꾸준히 만들고 이야기하고 싶었어.   

본격적인 사업의 길로 들어서기 전에 몇 가지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로 했고

그렇게 ‘공(空)의 반란’ 프로젝트가 탄생했지!


'공(空)의 반란' 프로젝트는

‘타인의 삶의 맥락이나 시선에 흔들리지 않고 살고 싶은 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꾸준히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고, 공유하는 작업이야.

졸업하기 전까지 많은 사람들을 만날 거야.

그가 이 일을 하는 이유에 대해, 의미에 대해, 꿈과 고민에 대해 이야기 나눌 거야.

그래서 결국 그 사람의, 삶의 맥락을 전달하고 싶어.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구나,

살고 싶은 대로 살아도 괜찮구나,

라는 이야기를 건넬 수 있으면 좋겠어.

나에게. 너에게. 우리에게. 


6

안녕.

인사가 늦었네.

이런 꿈을 꾸는 우리는

'혜림이와 은교'.

나는, 열아홉 안혜림이야.




타인이 아닌 자신만의 '맥락'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나'의 이야기로 삶을 채우는 사람들의 이야기.

공(空)의 반란, 시-작




공(空)의 반란 프로젝트를 

글과 사진으로 기록하고, 전달합니다.

모든 글은 '이름에게' 전하는 편지입니다.

여기서 이름은 불특정 다수를 칭합니다.

결국 나는, 나에게. 너에게. 

'이야기'를 가진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나의 이야기를, 내가 만난 사람의 이야기를

꾸-욱 눌러써 보냅니다.  


사서함

pt007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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