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회사 떨어져도 괜찮아

by 노푸름

면접을 보러 갔다. 잡지사의 콘텐츠도 마음에 들고 일하고 싶은 열의가 생긴 곳이었다. 이런 콘텐츠라면 설령 연봉이 작아도, 출퇴근 시간이 멀어도 감내해야지. 암, 그렇고말고. 잡플래닛 평도 좋으니 나름 기대해 볼 만하다.


회사에 들어가자마자 한 중년 여성은 나를 반겨주며 자리로 안내했다.

내게 명함을 건네며 가볍게 인사를 하는 한 중년 남자. 그 사람은 내게 명함을 건네며 자신을 소개했다. 내게 그런 면접관은 언제나 호감이다. 조금 오버해서 겸손함도 보인 다랄까. 함께 일하는 파트너를 만났을 때의 일종의 예의 같은 느낌이 들어 기분 좋게 면접을 시작한다.


그래 이런 회사라면 느낌이 좋지. 하며 마음속으로 고개를 연신 끄덕이고 있을 때, 나를 자리로 안내해 준 중년 여성이 판을 흩뜨려 놓았다.


"어, 나도 이력서 좀 줘봐. 보지도 못했네."

일단 면접자 앞에서 이력서를 보지 못했다며 실례를 범하는 것에 일말의 스스럼없는 무례함에 기분이 상했다.


우리 면접자들도 면접관에게 충분히 기분이 상한다. 언제나 면접관들의 결점을 묵시할 뿐이지.


자신이 면접자라며 어떤 직위인지도 소개조차 하지 않았다. 면접관으로 참석할 건지 말 건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그녀는 사무실 이곳저곳을 어수선하게 돌아다녔다.


중년 남성은 답정너 스타일이었다. 이번 달 잡지책을 보여주며 내게 분석을 권한 뒤, 어떤 걸 느꼈냐고 물었다. 내가 내 생각을 말하자, 그는 자신의 생각이 정답이라는 듯 나를 가르치듯 말했다. 나는 분명 설교를 들으러 간 게 아닌데.


면접은 면접자는 어떤 회사인지,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지 알고, 면접관은 면접자가 본인 회사에 적합한 인재인지, 혹시 부적격한 곳이 있는 건 아닌지 그 점을 알아가는 시간이자 자리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콘텐츠가 마음에 드니 나는 잘 견뎌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중년 여성은 나의 예민함을 건드리는 말을 해버렸다.


"보니까, 지금 알바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이 일은 그렇게 청소하고 서빙하고 시키는 대로만 해서 될 게 아니거든요. 이 사람이 어떤 말을 하고 싶은지 생각해야 하거든요."


갑분싸였다. 알바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서빙 알바라 하더라도 손님이 원하는 것을 센스 있게 캐치해 내는 능력이 없으면 바로 지적이다. 조금만 느리고 쉬고 있을 틈이 없는 알바를 생각하고 말했다면, 알바를 해본 적은 없고 식당에서 보기만 한 사람일 것이다. 나는 경험도 없이 어떤 일을 폄하하는 사람에 알레르기가 있다.


물론 그 사람도 그런 의도로 말한 게 아니란 걸 안다. 자신의 의도를 이렇게 교양 없게 자신보다 낮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일을 비하하며 표현하는 것이 경멸스럽고 한심했을 뿐이었다.


백만 알바인들의 안티를 자처해 자신의 이미지를 까먹는 건 내 알 바가 아니었다.


중년 남자는 요새 들어 사람들이 자꾸 그만두는 바람에 사람을 뽑는 것에 회의감이 든다며 푸념했다.


"가르쳐 놓으면 그만두니까. 예전엔 안 그랬는데 이제는 사람들을 뽑아도 금방 그만두더라고요. 헝그리 정신이 없는 건지. 예전 우리는 정말 열정을 다 했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면접자 신분을 망각한 채 면접관을 찌릿 바라보았다. 예전엔 열정을 다했지만 지금 사람들은 열정을 다하지 않는다는 말인가?


"우리 때"라는 단어는 시대착오적인 말의 대표라고 생각했다. 나는 묻고 싶다. 당신이 3.1 운동 때 태어났다면 독립운동했을 것이냐고.


같은 한국이지만 각 시대는 다른 문제를 안고 있고 다른 교육을 받고 다양한 문화와 살고 있다. 왜 세상이 좋아졌다 하여 자기보다 좋은 상황이라 생각할까.


얼마 전 종영한 인기 드라마 스카이캐슬에서 가부장적이고 독단적인 세리아빠가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우리 때는 말이야. 등이 없어서 촛불 켜고 공부했어."

등이 생겨서 공부는 쉬워졌지만 경쟁은 더욱 심해졌고 학습 수준은 높아졌다.


취업도 마찬가지다. 구직자들의 학력 수준은 높아졌지만 회사의 근무 환경과 급여, 인력 관리, 성인지감수성, 복지 수준은 단언컨대 그 수준에 부합하지 않는다. 부합하는 극소수의 대기업과 공기업에 매달리자니 눈만 높다 한다. 그래서 눈을 낮춰 왔더니 성취감이나 동료애 따위도 바랄 곳이 아니다. 그럴수록 사회에 나가면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도 희미해진다. 자연스레 구직 의욕도 사라진다.


나는 또박또박 말했다.

"예전에는 일에만 몰두하는 삶이 옳은 삶이라 생각했었던 것 같아요. 새마을 운동이라던가, 산업이 흥할 때였으니까요. 근데 지금 젊은 사람들은 일과 자신의 균형을 맞추는 게 옳은 삶이라 생각하는 시대예요. 한 때 저도 열정과 꿈에 목을 맨 적이 있어요. 근데 행복은커녕 생활이 궁핍해지고, 삶에 여유가 없어지더라고요. 작은 것에 화가 나고, 너그러움을 잃었어요. 척박해지는 거죠. 그때 저는 꿈을 바꿨어요. '사람처럼 살고 싶다.' , '열심히 일한 만큼 벌고 싶다.' 그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것도 꿈인 세상인 것 같아요. 열심히 일하면 괜찮은 아파트가 생기고, 결혼할 수 있는 행복한 세상이 아니에요. 그러다 보니 급여나 복지에 만족감이 부족한 회사에 헌신하고 싶은 생각은 조금 부담이죠. 요새는 1년도 오래 버티는 거예요."


속이 후련했다. 늘 "그렇죠"라고만 대답하던 내가 이렇게 길게 말하다니. 여기는 정말 갈 일이 없다고 생각하니 당당하게 내 소신과 생각을 말했다.


면접이 끝나고, 그분들은 내게 함께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전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정할 수가 없어 생각해보겠다고 했다.


집에 오는 내내 생각할수록 나는 거기서 매번 부딪히면서 일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좋은 콘텐츠는 그 잡지사가 아니어도 만들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자. 자신감을 잃지 말자. 나와 맞지 않는 신발을 신어 보고 벗은 것뿐이니.


그래도 며칠 뒤에 또 후회하겠지?

어쩔 수 없는 시간이다. 내게 맞는 회사를 찾기까지 버틸 수 있을 때까지는 버틸 계획이다.


또 이렇게 별로인 회사에 굽히고 들어가면 우리 청춘들의 대우가 그 정도로 굳혀질 것이다. 시위 아닌 시위를 해야지.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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