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인정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함께 사는 사람의 불만을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 상대방의 불만을 들으면 짜증부터 나기 십상이다. 그렇다면 불만이 짜증스러운 이유는 뭘까. 나는 그 당연한 것에 질문해 보았다. 그 답은 뇌 과학에서 찾을 수 있었다.
우리의 뇌는 자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일수록 대뇌는 나를 떠올릴 때 반응하는 부위와 가까운 부위에서 자극이 일어난다고 한다. 그 말은 즉, 상대방을 떠올릴 때, 자신을 떠올릴 때와 비슷하다는 의미다. 만약 나와 가까운 상대가 아플수록, 내 스스로가 아픈 것과 같다는 생각이다. 그 때 내가 화가 난다면, 아마 내 스스로가 아플 때 스스로를 다그쳤을 가능성이 높다.
'왜 아파서. 지금 할 일이 많은데.'
'지금 아파서 어떻게 한담. 아픈 거 너무 싫다.'
아픈 나를 대할 때와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이 아플 때, 우리는 비슷한 모습으로 대하곤 한다.
그 원리를 알고 나니, 상대방의 불만을 다뤄내는 데 편안해졌다.
"아! 어떡해. 카드를 두고 왔네."
예전 같았으면,
"아니, 어떻게 그걸 두고 와?" 라고 말하며 상대방을 탓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아, 두고 왔어? 얼른 다시 가지러 가자. 다음엔 잘 챙겨야겠다."
이렇게 말하고 만다.
내 자신에게 생기는 불만이나, 불안한 감정에 대해서도 다뤄내기로 했다.
'왜 그것밖에 못해?'
'너, 그거 못하면 어떡할래?'
'그럴 땐, 그렇게 했어야지. 정말 답답하다.'
이런 불만이 생길 때가 있다. 그렇지만 내 스스로가 불만을 인정해 줘야 한다. 그것이 나를 사랑하는 일이자, 상대방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일이 될테니까.
'그래, 이것밖에 못했네. 그래도 나름 잘 했어.'
'못하면 속상할 거야. 그래도 해 보자.'
'답답할 수 있지. 그렇지만, 이만큼 해 낸 게 어디야.
상대방의 불만을 들을 때도 쉽게 적용이 된다.
"아니, 나는 그 일에 대해서 기분이 나빴어. 나한테 말도 안 하고 했던 거잖아."
그 때 내 자신을 변호하는 말이 많이 생각났지만, 상대방의 불만을 인정하기로 했다.
"그래. 그건 기분이 나쁠 수 있겠어."
누구의 잘잘못을 떠나, 상대방의 마음을 존중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긴 것 같다.
자신에게 관대해져야 상대방의 불만도 거뜬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이제는 상대방의 불만을 잘 들어줄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