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나는 솔로를 보는 게 그렇게 재미있었다.
"세상에, 어떻게 저래? 진짜 이상한 사람이다. 저건 아니지!"
"하하. 진짜 심하다."
아니, 실은 나는 솔로에 나오는 인물들을 보고 뒷담화를 하는 게 더 즐거웠을지도.
그 인물을 보며 한 때는 오만한 생각을 했었다.
"그래, 저기 나오는 사람들보다는 너가 훨씬 낫다."
이렇게 말하면 추켜 세워주는 것 같은 기분도 들고, 실제로 그런 마음이 들었다.
정말로 이 사람을 만나서 다행이라는 기분이었다.
그렇지만, 짝꿍과 <돌싱글즈>와 <끝사랑>을 보며 내 오만한 생각이 바뀌었다.
"나도 저렇게 요리해 주면 좋겠다."
"하하."
"웃지만 말고. 나도 해 줘."
어느샌가 그 사람과 나의 짝꿍을 비교하고 있었다. 그리고 별안간 불안감이 들었다. 세상에 정말 좋은 사람이 많은데, 내가 너무 성급하게 이 사람으로 정한 건 아닐까하는.
요리를 잘 하는 사람과 살 것인가, 요리를 못 하는 사람과 살 것인가로 나누는 건 바보 같은 짓 같았다.
우리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고, 삶 또한 그렇기 때문이다. 아침 식사를 차려주는 모습을 보고 부러운 사람이 있겠지. 또 다른 사람은 이렇게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요리를 잘 해주기보단, 요리를 해 주면 누구보다 내 요리를 맛있게 먹어주는 사람이 좋은데."라고 생각이 들 수 있다.
나는 인정욕구가 높은 사람이다. 누군가의 환심을 사기 위해 무모하게 노력하고, 무산되면 좌절의 늪에 빠지기도 한다. 그런 나의 마음을 위로하는 건, 이해와 인정이다. 거기에 '무조건'이 붙는다면, 또 그 대상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보다 더 바랄 게 무엇이 있을까.
"이거 먹어 봐. 좀 짜게 됐는데, 맛이 어떠려나 모르겠네."
"음. 너무 맛있는데. 어떻게 이렇게 잘 만들어?"
"진짜?"
"푸름이는 소질이 있는 것 같아. 그냥 보고서 뚝딱 만들잖아."
"아니야. 그렇게 어렵지 않아."
"난 봐도 모르겠던데."
그리고 나서 내가 싫어하는 설거지까지 해 준다면, 이것도 나에게 행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세상을 살면서 무수하고 아주 우수한 조건을 가진 사람들이 나를 스칠 것이다. 그리곤 내가 가진 것과 끊임없이 비교하며, 내 것을 보잘 것 없게 바라볼 때도 있겠지. 그때마다 저게 좋았을까, 아니 저게 정답이었을까하면 그것만큼 아쉬운 게 없을 것 같다. 내 곁에 바짝 붙어 있는 행복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만큼이나 인생에 아쉬운 일이 또 어디있으랴.
나는 오늘로서 선언한다. 세상에 좋은 사람, 좋은 면모 참 많지만, 내겐 너만을 사랑이라 이름 짓겠다고.
고민하고 후회하는 시간이 아깝기도 하고.
그냥 이번 생은 얘랑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