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HD이고, 미니멀리스트입니다> 18화

비워진 공간을 회복으로 채우는 간소함의 행복

by 노푸름

딴 길 새기 천재 ADHD 환자를


미니멀리스트로 만든 생활 백서

무조건 줄이기만 하는 미니멀리즘이 아닌,

취향도 지키고, 정리도 간편한

ADHD 맞춤 정리정돈법


나를 어지럽히는 산만함에서 벗어

비워진 공간을 회복으로 채우는

간소함의 행복






보이지 않으면 없는 것이다


부엌의 상부장과 하부장은 ADHD에게 가장 위험한 '블랙홀'이다. 문을 닫으면 그 안의 혼돈이 사라진 것 같지만, 사실 우리 뇌는 보이지 않는 물건의 위치를 기억해 내느라 끊임없이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그 에너지를 아껴줄 직관적인 시스템을 제안한다.




과부하를 막는 1단 수납의 법칙

상부장은 눈높이에 위치해 있어 가장 편리해 보이지만, 깊숙한 곳은 '망각의 늪'이 되기 쉽다.


겹쳐 쌓기는 금지, '세우기'가 정답: 접시를 층층이 쌓아두면 아래쪽 접시를 꺼낼 때 이미 뇌는 스트레스를 받는다. '접시 꽂이'를 활용해 모든 접시를 세로로 세우세요. 한눈에 보이고, 한 손으로 꺼낼 수 있어야 한다.


투명 소품의 마법: 앞서 이미지로 확인했듯, 불투명한 수납함은 금물이다. 투명 바구니를 사용하여 내용물이 80% 이상 보이게 하자. "아, 저기에 간식이 있구나"라고 뇌가 즉각 인지하는 것이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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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임택은 뇌의 네비게이션: 바구니마다 [간식], [소스], [차] 등의 라벨을 붙이자. 물건을 꺼낸 뒤 "이게 어디 있었더라?"라고 헤매는 시간을 0초로 만들어 준다.



무거운 물건과 '동선'의 결합

하부장은 허리를 굽혀야 하는 불편함이 있어, 자칫하면 '안 쓰는 물건들의 무덤'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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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게 중심 낮추기: 무거운 냄비나 프라이팬은 하부장에 둔다. 단, 이때도 '프라이팬 정리대'를 사용해 하나씩 독립적으로 두어야 한다. 물건끼리 부딪히는 소음과 꺼낼 때 생기는 걸리적거림, 번거로움은 ADHD의 집중력을 흐트러 뜨리는 주범이다.



동선 최적화(청킹 수납): 개수대 밑에는 세제와 볼을, 가스레인지 밑에는 프라이팬과 오일을 두자. 뇌가 "요리 시작 -> 아래에서 팬 꺼내기"라는 흐름을 자연스럽게 타게 하여 사고의 단계를 최소화해야 한다.



'주전공'만 남기는 결단

서랍을 열었을 때 가득 찬 조리도구는 뇌를 압도당하게 만든다.


가위는 하나, 집게도 하나: "이따가 또 쓸 거예요"라며 가위를 여러 개 두지 말자. 가장 잘 드는 것 하나만 수저통에 꽂아두고, 나머지는 과감히 비웁니다. 선택지가 하나일 때 우리 뇌는 가장 평온하다.



수저 서랍의 칸막이: 숟가락, 젓가락, 포크가 뒤섞여 있으면 안 된다. 명확한 칸막이를 통해 각 물건의 '집'을 만들어 주자. 어린 시절 들었던 "쓴 건 제자리에"라는 잔소리가 물리적인 환경 덕분에 저절로 실천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ADHD의 리얼 정리정돈


자주 쓰지 않는 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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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안 쓰는 것들 모조리 버리는 거야!' 라는 단호한 마음으로 부엌에 섰다. 막상 그릇들을 보니 버리기가 아깝다. '이건 플리마켓 가서 샀던 그릇', '이건 일본 여행 가서 귀여워서 산 그릇' 등 모두 추억이 들어있다.



그릇을 정리할 기준이 없이는 부엌에서 백전백패할 것 같았다. 그 기준을 세우기 위해 '내가 자주 사용하는 그릇'을 알고, 정말 쓰지 않는 그릇은 왜 쓰지 않았는지 원인을 파악하기로 했다.



내가 자주 사용하는 그릇은 '내가 자주 먹는 음식'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내가 자주 먹는 음식은 간단한 게란 후라이, 볶음밥, 국, 요거트, 야채찜 등이다. 그 음식에 자주 먹는 그릇을 추려본다. 밥그릇, 국그릇, 투명 유리컵, 중형 냄비, 중형 후라이팬 하나로 좁혀졌다.



'손님 초대'라는 굴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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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쓰지 않는 그릇을 보았다. 스테이크 플레이팅 그릇, 중형 파스타 접시, 소형 파스타 접시 등이었다. 연말 파티에 쓰는 물건들이었다. 그 그릇 앞에서 이런 생각을 했다. '내가 연말에 정말 자주 파티 음식을 해 먹었던가?'


20대 후반에는 연말에 친구들이 자주 놀러와서 그릇이 필요했다. 지금 그 친구들은 모두 결혼하고 가정을 꾸렸다. 그 친구들이 우리 집에 와서 연말을 보낼 확률이 얼마나 될까. 10% 미만이다. 그 적은 확률 때문에 찬장을 가득 채우는 건 합리적이지 않다.


10% 확률로 그런 일이 생긴다면 어떡하지? 불안이 온다. 그럴 땐 그냥 놀러온 친구들에게 그릇만 챙겨오라고 부탁하는 센스를 발휘해 보기로 한다. 그게 어려운 친구라면, 외식을 하는 편을 선택하리라. 그릇을 비우다 보니, 이제야 알겠다. 내가 쌓아두었던 건 막연한 불안이었다는 걸.


연말에 필요한 건 플레이팅을 아름답게 할 그릇이 아니라, 그 공간을 채울 즐겁고 유쾌한 마음이면 충분하다.



버릴수록 채워지는 '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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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은 같지만 사이즈만 조금씩 다른 그릇들, 그리고 '혹시 몰라' 남겨두었던 넓은 접시들이 찬장의 터줏대감처럼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 나름의 이유각 있던 아이들이다.


'이건 카레 먹을 때!'

'이건 좀 더 국물이 많은 음식을 먹을 때!'

'이건, 나머지 외 상황!'



곰곰이 생각해보니 지난 2년 동안 그 그릇들을 꺼낸 기억이 전혀 없다. 그 말은 즉, 앞으로의 2년도 그 그릇들 없이 거뜬히 살아갈 수 있다는 확신이었다.



내 경험상 그릇에 굳이 꼭 맞지 않아도, 음식을 모두 담아내지 않아도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아무래도 간소하며 즐겁게 사는 법을 터득한 것 같다.


단순한 일상이 주는 '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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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식장 한 켠을 차지한 채 빛나고 있던 찻잔 세트. 분명 '예뻐서' 샀고, 언젠가 근사하게 소서(Saucer)를 받쳐 들고 격식 있는 티타임을 즐기리라 다짐했던 물건이다. 문득 깨달았다. 집에서 그 찻잔을 꺼내 격식을 차렸던 기억이 단 한 번도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분위기 있는 시간을 위해 찻잔을 소유하려 하지만, 사실 그런 무드는 잘 가꾸어진 카페나 전문적인 커피숍에서 충분히 누릴 수 있다. 집이라는 공간까지 카페의 격식을 흉내 내려다보니, 정작 집이 주어야 할 '휴식'과 '편안함'이라는 본질은 희미해지고 물건 관리라는 노동만 남게 된다.



결국, 소서까지 갖춘 완벽한 찻잔 세트를 비우는 것은 '아름다움'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대신 그 자리에 '단순함'과 '집중력'이라는 더 큰 가치를 채워 넣는 일이다.



향기가 머물다 간 자리의 잔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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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커피를 좋아한다. 원두를 갈 때 퍼지는 고소한 향과 정성스레 물을 내리는 그 시간, '드립 커피'는 내게 단순한 음료 이상의 휴식이었다. 하지만 ADHD의 일상에서 이 허울뿐인 취미는 때로 예기치 못한 '에너지 도둑'이 되곤 한다.



커피 한 잔을 마시는 즐거움은 10분 내외지만, 그 뒤에 남겨진 일들은 뇌의 작업 기억력을 끊임없이 괴롭힌다. 원두가 떨어지고 새로운 드리퍼를 사고 싶었다. 언젠가는 쓰겠지, 언젠가 쓰겠지 염불처럼 외던 습관을 이제는 버리기로 결심했다.



비움의 선순환


한없이 높게 쌓여 위태롭던 건조대가 이제는 평온한 여백을 유지한다. 물건이 줄어드니 건조대에 그릇이 쌓일 틈이 없다.



닦아야 할 그릇의 절대적인 양이 줄어들면서, 설거지는 이제 에너지를 훔쳐가는 '난제'가 아니라 가볍게 해치울 수 있는 '단순 작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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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f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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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장을 열었을 때 쏟아질 듯 겹쳐진 그릇 대신, 필요한 것만 딱 들어차 있는 모습은 ADHD의 뇌에 즉각적인 안정감을 준다.



비우기 전에는 그릇을 소유하는 것이 풍요라고 믿었지만, 비우고 나니 '설거지로부터의 자유'야말로 진정한 풍요임을 깨닫는다.



집 안의 물건을 줄이는 것은 결국 내 삶의 복잡도를 낮추는 일이다. 이제는 설거지통 앞에 서는 마음이 한결 가볍다.


찬장 맨 윗칸의 다른 말, '잠재적 부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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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방 정리를 하다 보면 자꾸만 욕심이 생기는 공간이 있다. 바로 까치발을 들어도 손이 잘 닿지 않는 '찬장 맨 위 칸'이다.



보통은 1년에 한 번 쓸까 말까 한 커다란 찜통을 '언젠가는 쓰겠지'라는 미련과 함께 밀어 넣는 곳이다. 하지만 나는 이번 정리에서 그 칸을 아예 비워두기로 했다.


ADHD의 뇌는 '눈앞에 보이지 않는 것'을 유지하고 관리하는 데 일반인보다 몇 배의 에너지를 소모한다. 보이지도 않고 닿지도 않는 칸에 물건을 채우는 순간, 그 물건은 ADHD인 나의 작업 기억력을 갉아먹는 '잠재적 부채'가 된다.



보이지 않으니 잊어버리고, 잊어버리니 관리하지 못하고, 결국 먼지만 쌓여가는 그 악순환을 끊어내는 유일한 방법은 그곳을 '물건의 자리'가 아닌 '공기의 자리'로 남겨두는 것이다.



이제 주방에 서서 찬장을 바라보면, 텅 빈 맨 위 칸이 나에게 말을 거는 것 같다. 안간힘을 써서 도달해야만 하는 삶보다는, 내 호흡에 맞춰 닿을 수 있는 만큼의 삶을 살아가는 것. 그것이 ADHD인 내가 미니멀리즘을 통해 도달하고 싶은 진짜 목적지다.



하부장 정리


주방에서 가장 관리하기 까다로운 곳을 꼽으라면 단연 '하부장'이다. 허리를 깊숙이 숙여야만 내부가 겨우 보이고,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빛이 닿지 않아 무엇이 들어있는지조차 파악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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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부장은 문을 열기도 번거롭고 내부 시야 확보가 어렵다 보니, 한 번 들어가면 다시는 햇빛을 보지 못하는 '물건의 무덤'이 되기 십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부장을 활용해야 한다면, 나는 반드시 '슬라이딩 박스'를 추천한다. 이것은 단순히 수납 도구를 넘어 ADHD의 시각적 한계를 보완해 주는 '보조 장치'다.


서랍 속의 선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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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방의 첫 번째 서랍을 열 때마다 느끼는 묘한 쾌감이 있다. 수저와 포크, 작은 티스푼들이 칸막이(Insert)라는 명확한 가이드라인 안에서 각자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풍경이다.


예전 같으면 서랍을 여닫을 때마다 이리저리 뒤섞여 결국엔 정체불명의 덩어리가 되었을 물건들이, 이제는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은 채 고요하게 머물러 있다.


ADHD에게 '칸막이'는 단순히 물건을 나누는 도구가 아니다. 그것은 뇌가 처리해야 할 시각적 정보의 경계선을 그어주는 '사고의 안전장치'다.


나는 이제 이 주방 서랍의 원리를 내 삶 전체로 확장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엉망으로 뒤섞인 일상에 명확한 '인서트'를 끼워 넣는 일 말이다.


결국, 서랍을 정리하는 것은 내 삶을 구조적으로 설계하는 연습이다. 선을 긋고, 자리를 정하고, 서로 침범하지 않게 배려하는 것. 이 작은 서랍 속의 성공 경험이 모여, 어느덧 나의 하루도 흔들림 없는 구조를 갖춰가길 기대해 본다.




다음편 19화 : 한없이 어지럽힐 질 수 있는 곳 '식탁'



오늘도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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