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기술이 세상을 이롭게 변화시킨다1
by 김지영 Jan 22. 2017

[접속] 제가 한번 개발자를 만나 봤습니다.

시즌1 에피소드07 : 이일민님 편

이 인터뷰는 2014년 2월 지앤선 티스토리 블로그를 통해서 소개되었던 인터뷰를 다시 브런치에 재등록하는 글입니다. 개발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프로그래머를 꿈꾸는 학생들과 젊은이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기획된 프로젝트입니다. 이 프로젝트는 지금도 계속 진행 중이다.

*중간중간 붉은색으로 표기된 부분은 인터뷰 도중 내가 느낀 점을 간략히 적은 것이다.


지난 3월, 호주에 계시는 이일민님이 일 때문에 한국에 잠깐 귀국하셨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인터뷰를 요청하고 싶었지만 그 유명한 ‘토비의 스프링’은 경쟁사에서 나온 도서이다 보니 혹시 불편해하시지 않을까 걱정되는 마음에 선뜻 연락을 못 드리고 있었는데 다행히 지인을 통해 인터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흔쾌히 시간을 내주시어 호주로 출국하시는 날 낮에 만나 뵌 이일민님은 따뜻한 미소와 친절함을 가지고 계시는 분이었다. 


2017년 추가 : 이일민님은 현재 유튜브를 통해 생코딩 방송을 운영 중이시다.


Q 우선 잘 모르는 분들을 위해 본인 소개부터 해주세요.

A Toby라는 닉네임을 사용하는데, 현재 호주에서 사용하는 영어 이름이다. 시민권을 받으면서 지었던 이름이었다. 운영하는 블로그가 알려지면서 도서 제목으로도 사용하게 되었다. 지금은 호주의 브리즈번에서 거주 중이며, Epril이라는 기술 회사를 운영 중이다. 유명 IT기업은 거의 없는 작은 도시(한국으로 치면 대구나 광주 정도)에서 살고 있다. 대부분의 고객은 천 킬로 이상 떨어진 대도시나 외국에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시간은 원격으로 일을 한다. 고객사의 규모, 일의 종류나 보수, 기술보다는 내가 원하는 삶의 방식을 유지할 수 있는 -조용한 도시에서,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내고, 일하는 시간을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는 대부분 원격으로 작업이 가능한- 일을 하려고 한다. 주로 자바 기술을 사용해서 기업용 애플리케이션이나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다. 인터뷰를 마치고 며칠 뒤 런닝맨이라는 프로에서 호주 특집을 방송했는데 이일민님이 사신다는 브리즈번이란 곳이 나왔다. 왠지 아는 곳 같은 느낌이 들고… 신기했다~


Q 프로그래머가 된 계기랄까, 언제 프로그래머가 되야겠다 결심하게 되셨어요?

A 80년대 초반에 처음 컴퓨터를 접하고, 6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프로그래밍을 하기 시작했다. 마이크로소프트웨어라는 잡지 등을 보면서 취미생활로 계속 프로그래밍을 했다. 교류할만한 친구도 없었고-당시에는 인터넷은 커녕 PC통신도 없었다- 혼자서 책과 잡지를 보면서 프로그래밍을 하다 보니 그저 하나의 취미 정도로 생각했다. 프로그래밍 대회에서 수상을 하기도 했지만 굳이 직업으로 삼고 싶은 만큼 흥미를 느끼지는 못해서 대학도 당시에 더 매력을 느끼고 있던 화공 쪽으로 갔다. 대학 다니면서 꾸준히 취미로 프로그래밍을 했는데, 대학교 3학년 겨울방학 때 아르바이트를 찾다가 우연히 C 프로그래밍(93년) 관련 일을 하게 되면서 완전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게 되었다. 당시 PC에서는 경험할 수 없었던 기업 규모(메인프레임과 유닉스 서버 환경에서 RDB를 사용하는)의 일이 너무 재미있어서 프로그래밍에 대한 새로운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아르바이트 때 평가가 굉장히 좋아서, 정규직으로 전환을 하게 되었다. 첫 일을 마치고 평가가 좋아서 개발 에이전시에서 계속 일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처음 일을 한 계기는 용돈만 가지고는 읽고 싶은 책을 충분히 사볼 수가 없어서 돈이 필요했기 때문이었지 프로그래밍 일을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다. 학생 신분으로 기업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것이 당시에는 흔치 않은 일이었고, 굳이 취미로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래밍을 가지고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도 없었던 터라 처음에는 고민을 하다가 기업용 시스템 개발에 대한 호기심과 새로운 기술을 접할 수 있는 기회라는 매력 때문에 일을 하기로 했다. 학교를 다니면서 회사를 다닐 수 있게 회사에서 배려를 해준 덕에 4학년 내내 일을 할 수 있었다. 졸업 때 취업이냐 대학원이냐로 갈등을 했다. IMF 전이라 취업 걱정은 전혀 없었는데, 전공을 살리냐 IT로 가냐도 고민이었다. 일 했던 회사가 트러블 슈팅(프로젝트에 발생한 각종 문제를 해결하러 다니는)을 주로 하는 회사였는데, 그 당시는 프로젝트 하나당 짧게는 3개월 길게는 6개월이 걸렸다. 프로젝트마다 새로운 기술을 썼고 책을 보면서 공부하고 선배들한테 배워가면서 일 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더불어 그 당시는 프리랜서라는 직업에 큰 매력을 느끼고 있었다. 자유를 느낄 수 있는 직업이라는 생각에 매력을 더욱 느꼈던 것 같다. 그래서 IT업계에서 프리랜서로 시작하게 되었다. 프로젝트마다 새롭게 공부를 하고 배우면서 하셨다면 거의 잠도 못 자고 했을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런데도 그런 것들이 매력적이었다니… 프로그래머란 학자와 비슷하다는 느낌도 든다.

국민학교 6학년 때 친구에게 유연히 컴퓨터 홍보용 책자를 받았는데, 그 책에 나온 컴퓨터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어서 책을 100번 정도 읽고, 책에 나온 간단한 프로그램을 다 외우고, 동네 컴퓨터 매장에서 직원과 친해진 다음에 매장에 비치된 프로그램 코드가 나온 책들의 소스코드를 모두 입력해보면서 3개월을 보냈더니, 아버지께서 세운상가에 가셔서 컴퓨터를 하나 사주셨다. 예전에는 카세트테이프에다가 저장을 했단다. 카세트테이프에 어떻게 소스나 프로그램을 저장하지??? 음악도 아니고...  첫 컴퓨터에는  디스크가 없어서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버를 사주실 때까지 3년 동안은 개발한 프로그램을 어디에도 저장을 못하고 전원을 끌 때마다 날려야 했다. 디스크가 없으니 게임을 할 수가 없어서 프로그래밍밖에 할 것이  없었다. 오락실을 다니는 것을 좋아했지만 항상 돈이 모자랐다. 그래서 프로그래밍을 해서 오락실의 게임을 비슷하게 만들어서 했는데 저장을 할 수가 없으니 매번 날리고 다시 만들고 하면서 반복적으로 프로그래밍을 하게 됐다. 우와~ 저장 기능이 제대로 안 된 것이 어쩌면 이일민님께도 더 도움이 된 거구나 그 당시는 용돈을 받으면 마이크로소프트웨어라는 잡지를 구입했다. 당시에는 마소에 대학에서 배우는 강의가 연재되기도 했다. 옛날 이야기하면서 웃으실 때는 소년 같으시다~^^


Q 업계에 들어와서 가장 영향을 받은 개발자를 꼽으라고 하면 어떤 분을 꼽으시겠어요???

A 제일 처음 입사했을 때 멘토를 해주셨던 선배 개발자!!! 본인 말로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UNIX 프로그래밍을 했다고 말했었던 분이었다. 그분이 그때 당시 40대 초반이었던 것 같은데, 그때는 프로그래머는 35살 정도가 넘으면 관리자가 되어야 하는 분위기였고, 40대의 프로그래머는 생각도 못하는 시절이었다. 나이 들어서 프로그래밍을 하면 뒤에서 수근 거리고는 했었다. 그런데 그분이 만든 코드를 보면 너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들 코드는 기능만 돌아가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분이 짠 코드를 보면 한 편의 시를 보는 것 같고, 아무 설명 없어도 코드만 읽어도 다 이해가 되었다. 그때 처음으로 코드를 깔끔하고 아름답게 할 수 있다는 걸 느꼈다. 새로운 기술이 나오면 찾아서 공부하시면서 프로그래밍에 계속 재미를 느끼시는 모습을 보면서 프로그래머라는 ‘직업’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99년에 처음으로 Dallas의 MS에서 열리는 MS 개발자 콘퍼런스에 가봤는데, 당시에 제일 핫한 세션을 들으러 갔는데 주변을 둘러보니 머리가 희긋희긋한 사람들이 많더라. 처음에는 놀러 온 사람들인가 싶었는데 질문 시간에 적극적으로 질문하는 모습을 보면서 해외에서는 나이 들어서도 개발을 한다는 건 직접 체험하게 되면서 처음 멘토를 만났을 때 가졌던 막연한 기대가 확신으로 바뀌게 되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계속 개발자로 남는다는 것에도 일장일단이 있다고 하셨다. 나이 든 만큼, 경력이 있는 만큼, 젊은 친구들보다 기여를 많이 하면서도 꼰대 짓 안 하고 나이 어린 친구가 관리자가 되었을 때 지시에 따를 수 있는지가 문제라고 하셨다.


Q 개발자로 일하면서 가장 힘들 때는 언제인가요???
A 단지 돈을 벌기 위해서 프로그래밍을 하는 상황일 때가 힘들다. 예를 들어, 내가 쓰기 싫은 기술을 써야 한다거나 혹은 효율적이지 않은데 관습적으로 따라야 하는 상황을 말한다. 프로그래머가 가장 즐겁고 재미있을 때는 자기가 재미있고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생활이 유지될 때(돈을 벌 때)이다. 그런데 돈 때문에 내가 틀렸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일해야 하는 경우가 너무 싫다. 사람하고의 스트레스보다는 기술에 대한 스트레스가 더 큰 것 같다. 

Q 함께 일하기 싫은 프로그래머가 있나요???
A 제일 같이 일하기 싫은 사람은 당연히 고집 센 사람이다. 기술적으로 주장이 있고 고집이 있는 사람은 좋은데, 자기만의 생각을 답이 나온 후에도 굽히지 않는 사람은 함께 일하기 싫다. 틀린 것을 인정할 줄 모르는 사람은 힘들다. 전 세계 어딜 가나 그런 사람은 다 있더라. 그리고 팀의 성과나 실적을 독차지하려는 사람과도 일하기 싫다. 그런 사람들은 의외로 승승장구하는 경우가 많은데, 개발자들의 기운을 빠지게 하는 인간들이다. 그런 사람들은 개발자들뿐만 아니라 같이 일하는 모두의 기운을 빠지게 한다. 참 다행인건 난 한 번도 그런 사람 중에 승승장구하는 사람을 보질 못했다.

Q 직원을 뽑기 위해 인터뷰어로도 많이 활동하셨을 텐데, 그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어떤 것인가요??? 또 그런 것들을 파악하기 위해서 어떤 방법을 쓰시나요???

A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제일 우선으로 본다. 자신이 할 수 있다고 말한 기술이 사실인지 알아보면 된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 분명히 알고 있고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보통 프로젝트 레벨에서 개발자를 뽑기 때문에 그 프로젝트에 필요한 기술에 대한 핵심적인 질문만 잘하면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인터뷰어도 그 기술에 대해서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예상 질문에 대한 답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것을 방지하고자 요즘은 창의적인 질문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Q 이 일(직업)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A 무언가 창조한다는 느낌이 이 일의 가장 큰 매력이다. 반복적인 작업이라기보다는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느낌이 강하다. 또 내가 만들어낸 것을 누군가 사용하는 것을 볼 때의 보람이랄까, 뿌듯함도 이 일의 매력이다. 대기업보다는 중견기업이나 소규모 기업에서 일해주면 좀 더 보람을 느낀다. 개발한 시스템을 적용하고 난 후 회사에서 구성원들이 직접적으로 느끼는 편리함에 대해 피드백을 받았을 때 기분이 좋다.


Q 해외로 나가게 된 배경이나 이유를 말씀해주세요.

A 한국에서 처음에는 프리랜서로 일을 하다 회사(벤처)를 시작했다. 당시에 규모가 제법 큰 서비스를 준비를 했는데 오픈하기 1달 전 IMF가 터지면서 협력업체들이 모두 도산하면서 서비스는 시작도 못했다. 그 후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일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조금씩 경제가 나아지면서 일이 많이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무리해서 모든 일을 받아서 했다. 그러다가 쓰러지게 되었다. 병원에 갔더니 컴퓨터 앞에 고정된 자세로 너무 오래 앉아 있어서 신경에 자극을 줘서 발생하는 병이라고 했다. 별다른 치료법이 없고 좋아지려면 컴퓨터 앞에 앉아 있으면 안 되니 직업을 바꾸라고 하더라. 개발자에게 더 이상 개발을 하지 말라고 한다면, 일반적인 직장인과는 다른, 스포츠 선수가 더 이상 운동을 할 수 없게 된 것과 같은 느낌일 것 같다. 한 달 정도 병원에 입원하면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대로 살다 간 죽겠다 싶었다. 솔직히 그때 최고로 대우받고 여러 가지 비즈니스 기회도 좋았지만, 인생이 더 중요하다 생각해서 회사도 모두 정리하고 호주로 어학연수 겸 휴식을 취하러 갔다. 6개월 공부/6개월 여행하려고 갔는데 생활해보니 너무 좋더라. 생활 자체도 좋았지만, 나이 들어서도 개발자로 지낼 수 있는 환경에 매력을 느껴서 알아봤더니 자격을 갖추기가 어렵지 않아서 영주권을 받고 체류하기 시작하였다. 그때가 1999년이다. 우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오래되셨다. 어느새 15년 정도… 

Q 해외에 체류하기로 결정하면서 영어에 대한 부담감은 없었나요??? 공부는 어떻게 하셨어요???
A 엔지니어와 이야기하는데 큰 불편함이 없는 정도만 하고 갔는데, 지금은 오래 살아서 하는 정도이다. 기술적인 영어는 단어만 알면 크게 중요하지 않고 회사에서 일해도 컴퓨터와 대화하는 시간이 더 많다. 굳이 소셜 라이프를 즐기지 않으면 (아무도 강요하지 않음) 크게 필요 없다. 어쩌면 이 부분은 회사를 운영하시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 싶다. 직장에 다닌다면 회의나 토론 등도 많았을 테니…

Q 개발자로서 해외로 나가서 일하고 싶어 하는 분들에게 조언을 주신다면 어떤 말을 해주고 싶으신가요???

A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을 수 있는 활동을 해라. 오픈소스 활동이라든가... 영어 공부하면서 가고 싶은 나라의 IT 사정에 대해서 조금 더 깊게 알아볼 필요가 있다. 처음부터 취업을 해서 나간다면 모르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비자 문제부터 잘 알아보도록 해라. 무작정 나가면 현지 한인 회사에서 (비자 구실로) 얽매여서 일을 하기가 쉬운데, 비자 문제 때문에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Q 프로그래머가 되지 않았다면 어떤 일을 하셨을 것 같으세요???
A 딱히 상상이 안 되지만 전공 쪽으로 나갔으면 평범함 직장인??? 아냐 아냐~ 이건 뭔가 너무 어울리지 않는다. 흠…

Q 취미가 있으신가요???

A 음악 쪽을 좋아해서 예전에는 악기 연주를 많이 하곤 했었다. 굉장히 오래전부터 해외에서 인터넷을 통해서 CD를 구매하곤 했었는데, CD NOW라는 곳을 통해서 CCM을 구매하고 동호회 활동도 하고 그랬다. 그 분야에 대해서 잡지 기고도 하고 CBS 방송 중에 일요일 방송을 맡아서(원고/선곡/패널) 하기도 했다. 해외 음반사에 편지를 보내서 카탈로그나 관련 자료를 받기도 하면서 자료를 모아서 평론이나 잡지 기고 등을 했다. 그 당시는 유튜브 등이 없어서 해외에서 구매한 뮤직비디오를 전국을 돌면서 동호회 사람들과 같이 보고 해설해주고 했다. 음악 평론가라… 그런 쪽은 조금 어울리는 것 같기도 했다. 수염을 조금 기르신다면 그 모습이 상상이 갈 것도 같은…


Q 최근에 가장 관심 있게 보는 것은 어떤 것이 있으세요???
A 빵 만들기!!! 천연 발효 빵 만들기에 관심이 많다. 집에서는 직접 만든 빵만 먹는다. 호주에 처음 가자마자 오븐을 보면서 오븐을 이용할 수 있는 요리를 뭘 할까 생각하다가 빵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한국식 빵을 만들다가 천연 발효 빵을 2~3년 전부터 만들기 시작했다. 요리를 많이 하는 편이다. 아 그래!!! 이거다. 이거 어울리신다. 빵집 아저씨~~~~ 완전 딱 어울리실 거 같다^^

Q 최근에 가장 짜릿한 경험을 하신 적이 있다면 언제인가요???
A 감정이 메말랐는지 딱히 생각나지 않는다. 최근에는 모르겠지만 예전에는 IT 도서를 보다가 막 두근두근하고 가슴이 벅찬 경험을 느끼곤 했었다. 어떤 도서를 보면서 두근거리셨는지 여쭤봤더니 제일 생각나는 도서는 ‘켄트 백의 테스트주도 개발’이라고 하셨다. 6~7년 전이지만,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접근하는 도서라 자극이 많이 됐다고 말해주셨다. 아이들을 키운다는 것은 계속 새로운 것을 경험하는 것이더라. 특히 요즘은 둘째(딸)가 혼자 노래를 지어서 부르기 시작했는데 정말 신기했다. 

Q 혹시 지금, 꿈이 있으신가요???

A 7년 전쯤에 중국 연변에 연변 과기대를 방문했을 때, 그곳의 IT교육원에서 몇 개월 봉사로 수업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 굉장한 자극을 받았다. 그곳의 조선족 아이들의 상당수가 특별한 꿈이 없이 살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 그 친구들에게 IT 쪽에서 일할 때의 가능성과 비전 등을 보여주었더니 굉장히 자극을 받더라. 그 뒤로 제3세계에 가서 IT교육을 하고 싶어 졌다. 에티오피아의 경우, 예전에는 그 나라 언어로 컴퓨터를 사용할 수 없었다. 조금 이해를 못하고 어리둥절해 있는 나에게 OS나 오피스에서 언어를 지원해주지 않아서라고 설명해주셨다. 아~ 프로그램이 전 세계의 모든 언어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지... 그런데 리눅스가 들어가면서 그런 상황에 변화가 오게 되었다. 그런 나라들은 옛날 우리나라처럼 자원과 경제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곳의 엘리트 인력에 의지를 많이 해야 하는데 기본적으로 교육을 제대로 못 받고 있다. 가지고 있는 기술이나 지식을 그런 학생들에게 나누어주고 싶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오픈소스는 유럽의 작은 나라들 중에서 뛰어난 개발자들이 만들어낸 경우가 많은데, 사람만 있다면 교육만 충분하다면 가능성이 많이 있다고 생각한다. 


Q 본인 스스로 어떤 개발자라고 생각하시나요???
A 게으른 개발자!!! 개발자는 성실하게 일해야 하지만, 단지 부지런하기만 해서는 안 된다. 약간 게으른 사람들은 일을 조금 쉽게 할 수 없을까 궁리하기도 하면서 지루한 작업을 싫어하다 보니 자꾸 새로운 것을 찾아내려고 노력한다. 

Q 후배 개발자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어떤 건가요???

A 개발자가 되고 싶다면 먼저 정말 자기 적성인가를 잘 파악하도록 하자. 적성에 맞지 않고 그냥 직업으로만 생각하면 IT만큼 힘든 곳이 없다. 새로운 기술은 자꾸 나오고 젊은 친구들은 올라오는데, 도전정신이 없다면 힘들다. 한 번쯤은 심각하게 적성인가를 생각해보라. IT업계를 떠나라는 뜻이 아니라 이 분야에서 다른 방향들도 있다. 

중고등학생 프로그래머들은 학교 공부도 열심히 해야 한다. 기술집약적인 것이기 때문에 기술만 생각하면서 개발할 수도 있지만, 기술과 연결된 사람/기업에 활동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본다. 학교 수업에 충실해서 다방면에서 충실히 지식을 쌓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기술에만 집중하다 보면 단편적인 면만 보게 되어서 사회성이 결여될 수 있다. 음악이나 스포츠 등 10대에 입문하지 않으면 하기 힘든 것들이 많지만 프로그래머는 치매에 걸리지 않으면 꾸준히 할 수 있으니 너무 조급하게 마음먹지 말아라. 
대학생 프로그래머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서 열심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찾고 나면 그쪽을 깊이 있게 파고들고 열심히 하자. 
프로그래머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다. 자기 실력을 높이고 자기 가치를 올려서 가능하면 자기가 좋아하는 기술로 자기가 원하는 곳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나이를 먹다 보면 언젠가는 돈을 꼭 벌어야 하고 가족을 부양해야 하니 싫은 것도 할 수밖에 없을 수도 있지만 젊었을 때는 조금 더 자기 자신에게 투자를 많이 해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자기가 하고자 하는 것에 대해서는 뿌리까지 깊게 파야 한다. 

호주에 와서 자유롭게 일하다 보니 원하지 않는 기술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너무 좋다. 그렇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능력이나 조건을 갖춰야 한다. 그래야 여러 회사에서 원하는 인재가 될 수 있다. 스스로 부족하다면 기술을 따지지 못하고 시키는 대로 일하게 된다. 나는 평생 프로그래밍을 취미로 하고 싶다.



인터뷰 후 느낀 점… 이일민님을 처음 뵙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해맑은 미소에 무슨 이야기든 다 들어주실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야기를 나누면서 느낀 점은, 그 미소 안에 냉철함도 가지고 계시다는 것이었다. 믿는 것에 대한 소심을 굽히지 않으시면서 냉정하게 분석하고 하지만 여러 이야기에 마음과 귀를 열고 계시는 모습은 멋진 개발자이기 이전에 멋진 어른의 모습이었다.    by 앤(&)

keyword
magazine 기술이 세상을 이롭게 변화시킨다1
매일 하나씩 새롭게 배우기...
댓글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