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인 공동경영의 성공 가능성
시험대에 오른, 3인 대표 체제의 스타트업
내 주말 루틴 중 하나는 걷기다. 홍제천을 따라 걷다 보면, 오리와 원앙새, 두루미와 같은 조류를 종종 만나곤 한다. 물속을 유영하는 잉어 떼의 모습은 이제 친숙하기까지 하다. 가끔은, 여기가 서울이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서울 하늘 아래, 나를 품어줄 수 있는 동네가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홍제천을 따라 쭉 걷다 보면, 곧 한강공원(망원)이다. 늘 위태로워 보이는 성산대교 아랫길은 빠르게 지나치게 된다. 양화대교 옆 절두산 성당 벤치에 잠시 앉아 숨을 고른다.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내고, 다시 걸음을 재촉하면 젊음의 거리 홍대 입구에 이른다. 연남동 경의선 숲길은, 내게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가까워졌다는 신호다. 아이러니하게도, 중년을 맞이한 나에게, 젊음의 거리 홍대는 편안함이다.
오늘 내가 만난 청년 기업가의 법인 소재지가, 바로 홍대입구역 1번 출구 근처다. 출장길이라기보다는 내 일상에 그가 들어온 느낌이다. 따라서, 오늘 나는, 그의 사무실 문을 편안하게 두드릴 수 있었다.
K 대표는, 90년대 초반생이니까, MZ 세대의 중심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아니나 다를까, 그의 나이, 사업장의 위치마저 그의 사업과 관련이 깊다. 사업가 K는 MCN 사업가다. MCN은 Multi Channel Network의 약자로, 우리말로 해석하면, 다중 채널 네트워크다. 풀어써도, 여전히 보충 설명이 필요하다. 유튜버나 인플루언서, 셀럽들의 기획사 정도로 보면 될 것 같다. 유튜버나 인플루언서 혼자서는 광고 섭외, 굿즈 기획/판매, 저작권 관리 등을 다 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들을 관리하는 회사들이 여럿 생겨났다. 시대가 낳은 새로운 산업군이라 할 수 있다.
특이한 건, K가 동년배 2인을 공동 사업 파트너로 두고 있다는 점이다. 동업은 뜯어말리는 게 상책이라 했는데, 그런 이야기를 입 밖에 꺼냈다간, 꼰대 소리 듣기 쉽다. 살펴보니, 이 회사의 주주는 K 대표가 아니었다. 다른 법인이 지분 100%를 보유 중이다. 경영권이 누구에게 있는지, 회사의 실제 소유주가 누구인지 파고 들어가는 일은 피곤하다. 처음과는 달리, 나와 K 대표 사이에는 긴장감이 생겼다.
실로 오랜만에 목격한 창업자와 주주의 불일치다. 첫인상은 부정적이었다. 여기가 무슨 대기업도 아니고, 유명인이 소속된 연예기획사도 아닌데, 지분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걸 보니, 숨은 경영실권자가 있으리라는 의심이 생겼다. 과거의 경험에 따른 동물적(?) 판단, 아니, 확신이었다. 그러나, 나의 이런 판단이 선입견이었음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야기는 이렇다. K 대표와 그의 동업자, K2, K3 대표는 모두 대학생 창업동아리 출신이었다. 취업보다는 창업을 염두에 둔 그들은 창업동아리 활동에 누구보다 열심이었다. 여러모로 뜻이 맞았던 3인방은 그렇게 의기투합했다. 5년 전, 그들은 1/3씩 공동출자를 하고, 납입자본금 5천만 원의 법인을 설립했다.
미래 성장성이 높다는 판단하에, MCN 회사를 설립하고, 각자 자신 있는 업무를 맡기로 했다. K는 영상 콘텐츠 제작에 특화했다. 다른 창업자들은 각각 셀럽과 유튜버 섭외(계약), 온라인 판매에 적합한 상품확보, 외부 투자자 모집(IR) 등 자신 있는 분야를 맡아 집중했다.
까탈스러운 셀럽(유명인)들의 계약 조건, 요구 사항들을 들어주는 건, 사실 도박에 가깝다. 선급금을 지급해야 하고, 광고 대행 상품이 생각만큼 팔리지 않으면, 오롯이 손실이 되기 때문이다. 소위, 젊은 소비자들에게 먹히는(?) 유튜브 영상 콘텐츠를 제작하고, V-log, 인스타그램 등 SNS 채널 홍보를 하려면, 제작비/광고비 집행에 과감해야 한다. 하나둘 계획을 실행하다 보면, 자본금은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빠르게 소진된다.
다행히, 그들의 분업 전략은 성공적이었다. 우선, 그들은 저예산, 단편 청소년 웹드라마 영상을 제작하고,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다. 무명의 젊은 배우들이 기꺼이 동참했다. 청소년들의 일상과 꿈, 사랑, 우정, 고민을 담은 단막극은 또래의 공감을 사기에 충분했다. 구독자 수는 빠른 속도로 늘어났고, 기업들의 PPL 요청도 증가했다. MCN 사업이 잘되니, 연속적으로 전자상거래 소매업(패션/뷰티 상품 온라인 판매)도 매출이 성장했다.
20대의 청년들은 사업 실패의 두려움, 부담감을 낮추기 위해 공동창업이라는 방법을 선택했다. 정답이라 할 순 없어도, 최선이었다. 청년 창업가의 열정은 넘치지만, 주머니 사정은 넉넉지 않고, 한 사람이 모든 분야에 능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들 3인 청년 창업가의 기업가정신에는 혁신성, 진취성, 위험감수성 3가지 핵심 요소 외에도, (경제적) 책임감 분담 그리고 상호신뢰성이라는 나름의 안전장치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예비 청년 창업가들이 염두에 둘 만한 내용이다.
막대한 영상 콘텐츠 제작비용은 광고 대행 수수료만으로 충당하기 어렵다. 다행스러운 건, 그리고, 참으로 대단한 건, 적절한 시점에 투자자가 나타났다는 점이다. 모 화장품 제조 대기업이 전략적 투자자로, 모 벤처투자법인이 재무적 투자자로 참여했다. 20대 창업가 3인은, 법인설립 3년 만에, 안정적 사업 기반을 갖춘, 어엿한 경영인이 되었다.
한 회사가 총자산이나 매출액 면에서 어느 정도의 규모에 다다르면, 더 이상 3인 공동 대표이사 체제로 운영되기는 어렵다. 처음이야, 셋이 밤낮없이 머리를 맞대고 토론하고, 의견의 합치를 보는 데 어려움이 없었을 것이다. 최고경영자 겸 직원으로 근무하니, 밤샘 근무를 해도 누구 하나 야근수당을 요구할 리도 없다.
그러나, 회사가 커지면, 초심을 유지하려 해도, 시스템이 이를 거부할 확률이 높다. 그리고, 세 명의 사람이 늘 같은 의견을 내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사람 셋이 모이면, 없던 호랑이도 만들어 낸다는 고사성어가 있다(三人成虎). 물론, 조금 결이 다른 이야기이긴 하지만, 상상 속에서는 없던 호랑이의 이름을 짓는데도 의견일치를 볼 수 있다. 하지만, 내 지분율에 따른 배당액과 경영권이 달린 회사 운영에 관한 결정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같은 동아리 출신 청년 3인방의 우정은 영원할 수 있지만, 각자 대표이사 3인의 갈 길은 모두 제각각일 수밖에 없다. 기업가는 소설이 아닌, 현실을 살기 때문이다.
시간이 흘러, 그들이 공동으로 설립한 법인은, 지주회사로 변모했다. 묘수(妙手)였다. 광고 대행사, 연예 에이전시로 시작된 모기업은, 이제, 여러 자회사에 대한 경영자문업(컨설팅)과 투자 후속 관리를 전담으로 하는, 모기업으로 안착했다. 그리고, 공동 설립자 K, K2, K3는, 별도의 자회사 CEO로 자리를 옮기는, 아름다운(?) 이별을 선택했다. 물론, 그들은 서류상 이별을 했을 뿐, 실제로는, 여전히 한 지붕 아래에 터 잡고 있다.
지주회사는 3개의 법인을 새로이 낳았다. K가 대표이사로 취임한 회사도 그중 하나였다. K2, K3도 각각 다른 회사의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K는 모기업의 요체라 할 수 있는 유튜브 제작과 광고대행업을 이어가기로 했다. 한편으로는, 하던 일을 계속하면 되니, 운영 리스크가 낮은 것이라고 볼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꾸준한 성장을 이끌어, 다른 자회사들의 안전망, 최후의 보루 역할을 다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부담감도 커졌다. 좋고 나쁜 건 결론 내리기 어렵다.
서울대 출신의 브레인 K2 대표는, 신규 설립한 자회사 운영 외에도, 모기업의 CEO를 병행하기로 했다. 패션, 화장품, 가전제품 분야에 관심이 많던 K3 대표는 전자상거래 소매업체의 최고경영자가 되었다. 그밖에, 모기업의 창업 멤버였던 직원들도, 연관 분야(화장품, 가공식품, 건강식품) 계열사의 CEO가 되었다. 현재 자회사 수는 총 10개에 이른다.
사업 아이템별로 분사(스핀-오프)를 하는 게 정답인지는 잘 모르겠다. 고리타분한 생각일 수도 있지만, 굳이, 이렇게까지 수직 계열화할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먼 훗날 시간이 흘러, 많은 분석이 나올 수 있겠으나, 그 역시 결과에 대한 사후적 해석에 불과할 것이다. 완벽한 조직, 기업, 시스템이란 없다. K 대표 역시, 모회사에 여러 사업 부서를 두는 게 좋은지, 지금처럼 여러 자회사를 두고, 경영의 독립성을 강화하는 게 더 나은지에 대한 해석을 유보했다. 어떤 선택을 하든, 후회하지 말고, 그저 최선을 다하면 될 일이다.
공동창업자 3인은, 매월 1회 정례적으로 기업 운영 현황을 공유하고, 자회사 간 시너지를 고민한다. 월간 보고서를 작성해 투자자들에게도 보고한다. 다행인 것은, 투자사들이 동종업계 대기업과 재무구조가 안정적인 투자 전문회사라는 점이다. 그들은, 회사의 성장에 도움이 될만한 유용한 정보도 제공하고, 영업 네트워크를 확대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 당장, 배당금을 내놓으라고 종용하지도, 다른 기업에 지분을 넘기려고(Exit) 서두르지도 않는다. 아직은, 쉽게 찾아보기 힘든 장기적 투자자, 천사(Angel) 투자자로 보아도 무방하다. 이런 투자자를 만났다는 건, 그들의 복이다.
하지만, 위태로운 점이 없는 건 아니다. K 대표가 몇 년 전 야심 차게 설립한 법인 하나는 여전히 적자다. 화장품 도소매업의 경쟁이 워낙 치열하기 때문이다. 감원을 통해 판매관리비를 줄이고, 신규 아이템을 출시해 매출액도 조금씩 오르고 있긴 하지만, 모기업의 출자금, 장기대여금을 생각하면, 부담감이 크다. 그래도, 주력인 MCN 회사가 안정적인 성장세를 보인다는 점이 참 다행스럽다. 사업을 병행하는 게, 좋은 건지 그렇지 않은 건지, 아직은 잘 모를 일이다.
K2 대표, K3 대표가 개별적으로 운영하는 법인들도 사정이 비슷하다. 그들도 모두 2개의 법인을 운영 중인데, 공교롭게도 그중 하나는 잘 되고, 하나는 잘 안된다. 이들도, 사업의 흥망성쇠가 경영자 때문인지, 사업 아이템 때문인지, 직원 때문인지, 잘 모르겠다고 한다. 분명, 사업에는 사람의 통제밖 영역이 실존한다.
세 명의 공동창업자가 모두 같은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도 왠지 신경 쓰이는 대목이다. 현 지배구조하에서는, 어느 1인의 독단적 의사결정이 불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만약, 한 명의 주주가 다른 마음을 먹고, 외부 투자자들과 합심한다면, 두 명의 공동창업자를 배신(?)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회사를 재벌 드라마나 조폭 영화 속, 흔한 소재로 등장하는 경영권 분쟁, 암투에 빗대 비교하는 건, 온전히 내 상상이다. 창업 동기, 관계, 지배구조, 협업 등을 살펴보건대, 앞으로도, 그들은 적절한 견제와 균형, 공동 의사결정 체제를 유지하며, 시너지를 발휘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자회사 간 경영성과의 차이가 크게 날 경우다. 그들은 공동 의사결정권자로서, 자회사에 대한 추가지원 여부를 두고, 서로 다른 의견을 낼 수 있다. 현시점에도, 자회사 중 절반은 자본잠식 상태다.
나는, 기업 외부인의 위치에서, 적자 기업에 대한 추가적 지원을 하지 말 것을 요청했다. 물론, 모기업의 자금 사정에 여유가 있고, 주력 자회사들의 유동성도 충분한 편이지만, 앞으로의 일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는, 3인 간 오랜 상호신뢰를 훼손할 우려가 크다. 손해 앞에 장사 없다.
오랜 우정과 인연으로 똬리를 튼, 20대들의 의기투합이, 전형적인 전래동화 이야기처럼, 해피 엔딩으로 막을 내릴지는 미지수다. 그들은 어느덧, 30대가 되었고, 휘하에 수십 명의 직원을 두고 있다. 투자자, 지역사회 등 다수의 이해관계자들로부터 다양한 책무를 요구받는다. 어엿한 강소기업의 CEO는 사실상, 이 사회의 공인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들은 곧, 각자 자신의 가정도 꾸릴 예정이다.
냉정과 열정 사이, 차가운 머리와 뜨거운 가슴 사이, 그들의 순수한 우정은 시험대에 올랐다.
판단컨대, K 대표의 MCN 기업은 전도유망하다. 유튜브 구독자 수는 수십만 명에 이르고,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유명 셀럽들도 속속 유입되고 있다. 안정적인 모기업의 재무구조, 여러 기업의 광고 후원 요청도 향후 비즈니스에 긍정적이다. 한 단계의 성장을 하기 위한 정책자금 필요성도 인정된다. 이제, 자체적인 자금의 선순환 구조가 기대되고, 이를 활용한 양질의 콘텐츠 제작도 가능해 보인다.
부디, 이번의 정책자금 지원이, MCN 기업의 성장뿐 아니라, 공동창업자 3인의 동업 정신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마중물이 되길 기대해 본다. 때로는 티격태격하고, 중요한 의사결정을 앞두고 난상토론을 할지언정, 진짜(!) 이별만은 하지 않기를 바란다.
실증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믿어지는, 3두 체제의 경영권이, MZ 세대에 이르자, 무난히 안착한 사례로 기록되면 좋겠다. K 대표의 회사를 필두로, 삼인동업(三人同業)이 성공의 대명사를 뜻하는 신조어로 자리매김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