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창업은 위험하다. 하지만...
오늘은 강서구에 있는 자동차 공업사에 다녀왔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고, 가끔 문제가 생기면 차량 수리도 맡기는, 그런 평범한 수리업체다. 조금 다른 게 있다면, 외형 복원과 판금, 도장에 특화된 법인기업이라는 점, 그리고, 대표이사가 70대에 접어든 시니어 창업가라는 점이다.
다행히, 함께 일하는 직원분들의 실력이 좋고, 모 고등학교 학생들이 정기 실습생으로 힘을 보태고 있어 인력 운영이 효율적이다. 도장에 특화된 회사로 소문도 잘 나서, 일반 소비자들 외에 고정 거래처들도 꽤 확보하고 있어 매년 매출액이 꾸준히 상승 중이다.
문제는 탄소배출이었다. 판금, 도장 과정에서 가열 과정이 필요하고, 이때 CO2 배출량이 늘어나 공기 중에 그대로 배출된다는 점이다. 그동안은 별 얘기가 없었으나, 이제는 규모가 작은 소기업들에 대한 단속도 강화추세다. 탄소배출이 없는 전기방식으로 도장 부스가 전면 교체되어야 하는 시점이 왔다. 명색이, 단속 공무원 출신 CEO로 이런 상황에는 더욱 선도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그렇다. 이 회사의 대표는 공무원 출신이다. 계산을 해 보니, 20대 초반부터, 무려 40년에 가까운 시간을 공무원으로 근무한 듯하다. 약력을 살펴보니, 차량 거래와 폐차, 경유 차량 단속 등 해당 업계 종사경력이 상당하다. 규제를 담당하던 베테랑 공무원의 처지가 바뀐 것이다. 그간의 사정을 자세히 알진 못하지만, 아무래도 쉽게 상상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아무리 자신감 넘치는 사람이라도, 고위직을 역임한 공무원이라 하더라도, 정년퇴직과 동시에 창업을 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노년을 황금기라고 부르는 건 다 이유가 있다. 행여라도 사업이 잘못되어 노년무전(老年無錢)이라도 되면, 이보다 더 불행한 일은 없다. 시니어 창업은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할 일이다.
다시 살펴보니, 그가 퇴직 후 바로 법인설립을 한 건 아니었다. 처음엔 중고 자동차 매매와 임대, 매매단지 관리를 전문으로 하는 기업의 관리 이사로 영입되었다. 일종의 전관예우다. 예전에는 이런 상황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었다. 감독기관의 일원이 피감기관의 고위직으로 자리를 옮겨, 각종 이권에 개입하고, 비리도 덮어주며, 그 대가로 높은 급여와 복지, 법인카드의 혜택을 받는, 뭐 그런 범죄스릴러 영화, 아니 저녁 9시 단골 뉴스 같은 이야기가 떠오르니까.
하지만, 내가 보고 들은 세상이 그렇게까지 엉망진창은 아니다. 실제로는, 공무원이 직접적 이해관계가 있는 직종으로 이직하는 데는 많은 제약이 있다. 입법 보완과 꾸준한 단속, 관공서들의 자정도 작용한다. 판검사 출신이 대형 로펌으로 이직해서 흉악, 경제 범죄자들을 위해 변호를 하고, 형량을 줄이거나 무죄를 만들기 위해 현직에 있는 동료 판검사들에게 로비를 벌이는, 그런 사례를, 이 경우에 대입하는 건 무리다.
60세의 퇴직자는 아직 청춘이다. 만혼 추세에 따라, 부양해야 할 자녀가 아직 어린 경우도 많다. 정년퇴직이 남은 인생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편히 쉬어야 할 때라고 이해하는 사람은, 이제 없다. 자동차 매매단지 내 입주회사들의 애로사항을 취합, 해결하고, 차량 폐차 및 수출입 업무를 관할하는 업무에 불법, 비리가 개입될 여지도 별로 없다. 그가 관리이사직을 마다할 이유는 하나도 없다. 차라리, 그의 이력과 경력, 평판이 퇴직 후 이직으로 이어진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보는 편이 낫다.
하지만, 세상사가 그리 호락호락하지는 않다. 1~2년이 지나자, 회사는 그가 밥값을 못한다며 은근한 압박을 준 모양이다. 공무원으로서의 경력이 자연스러운 업무성과로 이어지는 시기가 영원할 순 없는 법. 그도, 본능적으로 자신이 떠날 때가 되었음을 알았으리라. 저마다의 인생, 저마다의 사정이 있는 법, 완전한 은퇴가 시기상조였던 그의 선택은, 창업이었다.
60대 중반에 이른 시니어 창업가는, 전기차 충전소 부지개발을 전문으로 하는 경영 컨설팅 법인을 차렸다. 하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그를 찾아오는 손님은 많지 않았고, 부동산 개발주선도 생각보다 어려웠다. 관공서를 상대로 개발 허가를 취득하는 것은 참 힘든 일이라는 것을 몸소 체험했다. 갑이 을 되는 일은 쉽지 않다.
다행히, 1인 법인이었던 회사의 자본금은 그대로였다. 결국, 차선책으로 그는 지금의 회사를 인수하기로 했다. 경영컨설팅업도 아직 완전히 접은 건 아니었기에, 기존 법인의 자본금을 재원으로 최대 주주 지위에 올랐다. 부족한 인수대금은 본인 소유부동산을 담보로 대출받아 조달했다. 이로써, 그는 어느 정도 사업 기반이 갖추어진, 자동차 공업사의 어엿한 대표이사로 취임하게 되었다. 순식간에 2개 회사의 대표가 된 거다.
디지털 시대, 인공지능의 시대, 챗 GPT의 시대를 맞이했어도, 정보의 비대칭성은 여전하다. 40년간 공무원 생활을 하던 시니어 창업가가, 회사를 속속들이 분석한 후 적정한 대금을 지급하고, 기업을 인수하기는 어렵다. 실제로, 4년 전, 그가 인수하던 시점의 회사는 적자 누적으로 거의 자본잠식 상태였다. 그렇다. 겉으론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재무적으로는 지급불능 직전 상태인 법인을, 그는 무려 3억 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인수했다. 시쳇말로, 세상엔 물 반(정상인), 고기 반(사기꾼)이라더니 영락없었다. 전 대표이사는 연락 두절이라 했다. 세상인심 참 씁쓸하다.
예나 지금이나, 공직자들은 세상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경우가 많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리라. 대충 계산해 보니, 내가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후 주변 지인들에게 빌려주거나 투자했다가 돌려받지 못한 금액도 얼추 2~3억 원은 되는 것 같았다. 내가 그에게 동병상련(同病相憐)을 느낀 이유다.
다행히, 그의 회사는 코로나 사태의 위기도, 저탄소 기술혁신에 대한 시대적 요구도 무난히 극복 중인 것으로 보인다. 그가 회사를 인수한 후 3년 동안, 매출액은 꾸준히 오르고 있고, 사내 유보금과 금융기관 대출금을 적절히 활용할 경우, 도장 부스의 전면적 교체와 시스템 업그레이드도 무난할 것 같다. 물론, 부각되는 문제점들이 없는 건 아니다. 자동차 공업사다 보니, 내부 경영관리 업무가 미숙했다. 세무 대리인에게 장부기장을 모두 맡기다 보니, 결산 재무제표도 실제 회사의 모습을 잘 반영하지 못한다. 이미 지급한 금액은 미지급금으로 이중 계상되어 있고, 법인 대출금은 통째로 누락되었다.
하지만, 꼬리가 몸통을 흔들 수는 없다. 지엽적인 측면보다는, 전체 상황을 이해할 필요가 있었다. 무엇보다, 그와 직원들은 본연의 업무에 충실했다. 차량 수리와 성능개선, 판금과 도장 업무에 진심이었고, 그 결과는 늘어난 고객 수와 매출액으로 확인할 수 있다. 직원의 처우 개선이나 신규 인력 채용에도 적극적이다. 직원들에게는 조금 더 나은 환경을 제공하려 하고, 고객들에게는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려고 노력했다. 도장 부스의 전면적 교체에 드는 비용이 많긴 하지만, 요즘의 물가 상승, 원자재 가격 상승률을 고려하면, 투자는 필수 불가결하다.
정책자금 지원 여부와는 별개로, 그가 생각했던 은퇴 후의 삶이 현재의 모습과 얼마나 닮아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부족한 운영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이렇게 노심초사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으리라. 인생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 같다는 나의 넋두리에 그도 동의했다.
그는 올해 고희(古稀, 70세)를 맞았지만, 아직 정정하다. 아마, 여전히 현역이기 때문이리라. 매일 새로운 이벤트가 발생하고, 일일이 대응하느라 골치 아프긴 하지만, 은퇴한 동년배에 비해 훨씬 젊고 건강하다. 힘든 현실이지만, 극복이 가능한 수준의 시련이라고 믿는다. 지금의 일시적 자금난은 조금 더 탄탄한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한 통과의례라고 말씀드리자, 내심 안심하는 눈치다.
물론, 시니어 창업은 위험하다. 이 생각엔 변함이 없다. 한 번 무너지면, 회복이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외 없는 규칙은 없는 법. 은퇴 후 10년을 버텨 온 시니어 창업가에게, 터무니없는 실패는 없으리라 믿는다. 그가 살아오면서 체득한 경험치, 네트워크, 통찰력이 여전히 빛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매년 10%씩 꾸준히 오르는 매출액이 그 증거다. 오랜 시간 그의 곁을 지키며, 더 나은 회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주니어 관리자들이 옆에 있다는 점도 다행스럽다.
정년퇴직 후, 20년이든, 30년이든, 남은 인생 복지 혜택만을 누리며 사는, 편안한 노후가 더 바람직한 건지도, 잘 모르겠다. 지금 같아선, 가능한 오랜 시간을 현역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이다. 백세시대라는 말이, 은퇴 후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는 재산 지키며 살라는 의미도 아닐 거다. 십중팔구, 그의 시니어 창업을 말렸지만, 그를 지켜본 모든 이들은, 이제 그의 도전이 성공하기를 바란다. 나 역시 그러하다.
2023년 4월, 1/4분기의 부가가치세, 근로소득세, 4대 사회보험료가 전기 대비해서 더 오른 것 같다며 한숨지으면서도, 납부기일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여전히 공무원 같은(!), 성실한 시니어 창업가를 격하게 응원한다. 역시, 70세는 사업하기 딱 좋은 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