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대, 창업, 투자, 성공적
창업과 학벌의 상관관계
공교롭게도 한국 벤처 1세대로 불리는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故 김정주 전 넥슨 대표, 김범수 카카오 의장,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는 모두 비슷한 또래의 서울대 공대 출신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청년 창업가 중 이들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많다. 태어나보니 금수저 집안이거나, 타고난 머리로 의대나 법대에 진학해 전문 자격증을 취득하거나, 국가고시를 패스하는 등 전통적인 방식 외에, 성공 방정식을 푸는 공식이 하나 더 생긴 셈이다. 바로, 창업이다.
물론, 스타트업의 성공 요인 1순위는 사업 아이템(아이디어)과 기술력이다. 하지만, 창업가의 역량, 시쳇말로 스펙(Spec)도 중요한 요소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언론에도 “서‧카‧포‧연‧고 나와야 유리한 투자유치, 벤처도 학벌”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버젓이 공개되는 것이 현실이다.
게다가, 서울대 출신 창업가가 시작한 IT, 게임, 플랫폼 기업들이 십수 년 만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대기업으로 성장한 사실까지 확인되었으니, 아무래도 투자자 입장에서는 스타트업 대표의 학력이 눈에 들어오게 마련이다.
실제로 몇몇 연구자들의 분석에 따르면, 벤처캐피털(VC)로부터 연속 투자를 유치한 국내 스타트업 대표 중 유독 서울대, 카이스트 출신이 많다. 10명 중 6명 이상이 상위 5개 출신 대학 출신이라는 통계, 심지어 10명 중 4명이 두 대학 출신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물론, 아이디어의 신선함과 혁신성, 향후 성장 가능성을 가장 우위에 두어야 할 벤처 투자가 인맥 투자로 변질이 된 데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투자자가 직접 발로 뛰어 잠재력 있는 기업을 찾기보다, 학연 등을 이용한 네트워크 투자에 의존하면, 수면 아래 진짜 숨은 진주를 발굴하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 보면, SKY나 카이스트, 포항공대에서 창업을 꿈꾸는 사람이 많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들에 대한 투자 비중이 높다고 해석할 여지도 있다. 실제로, 서울대학교 창업지원단 홈페이지에 접속해 보면, 가히 우리나라 청년창업의 메카가 따로 없다 싶을 정도로 창업/투자/지원 프로그램이 활성화되어 있다. 학교 동문 선배들이 후배들을 위해 자발적으로 투자금을 재단에 쾌척하거나, VC/펀드/금융사들도 끊임없이 지원단 소속 (예비) 창업가들과 소통을 진행하고 있으니, 그들에게 투자와 지원이 몰리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어쨌건, 내로라하는 인재들이 취업 대신 창업을 선택하고, 그런 창업가들에게 모험자본이 투입되는 현상은, 실(失)보다 득(得)이 큰 것이 명확하다. 우리나라 최고의 인재가 의대나 법대(로스쿨)에 진학해, 전문 직업인이 되는 일도 필요하겠으나, 신약 개발에 주력하는 바이오 기업이나, 법률 자문과 산업재산권 개발을 돕는 법률벤처 기업의 CEO가 되는 일은, 국가 경제의 파이(규모)를 키운다는 측면에서도 훨씬 장려할 만하다.
오늘 만난 K 대표는 서울대 출신이다. 그는 서울대에서 경영학과 컴퓨터 공학을 복수 전공했다. 공동창업자 겸 2, 3대 주주인 후배들도 모두 같은 대학 공대 출신이다. 십수 년째 사무실도 서울대입구역 근처에 있으니, 명색이 서울대라는 브랜드에 부합함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K 대표 본인도, 서울대 출신 프리미엄을 굳이 부정하진 않는다. 공동창업자 3인이 20대 대학생 시절 십시일반 마련한 초기자본금 2천만 원으로 법인을 설립한 이래, 지금에 이르기까지 7년간을 외부 투자금만으로 회사를 운영해 올 수 있었던 데는, 아무래도 서울대 간판이 한몫을 차지했을 터다.
그는 모교 창업지원단을 통해 에인절(Angel) 투자자, 엑셀러레이터(Accelerator) 같은 초기 투자자들로부터 수억 원을 유치할 수 있었고, 이후에도 벤처캐피털(VC)/사모펀드(PEF)/정부 모태펀드/외국 투자회사/대기업 자회사/시중은행 등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투자자들로부터 무려 수십억 원을 투자받았다. 중소벤처기업부, 신용보증기금, 기술보증기금,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등 정부/공공 기관들의 정책적 지원(자금)도 계속되고 있다.
누가 뭐래도, 일반적인 창업가는 생각하기 힘든 규모의 외부 조력이다. 하지만, 이런 결과만을 보고, 학벌이 깡패네, 기울어진 운동장이네, 같은 자조 섞인 푸념만 늘어놓기엔 다소 성급하다. K 대표는 회사의 핵심 경쟁력이 경영진의 스펙에 있지 않음을 자신 있게 증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회사는 비대면 교육콘텐츠 소프트웨어를 개발, 제작, 판매하는 지식기반 기술기업이다. 지금부터 7년 전 온라인 화상강의에 특화된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우리나라 사람들도 이젠, <ZOOM> 프로그램에 익숙한 데, 이와 비슷한 소프트웨어다.
그런데, 당시만 해도, 온라인 강의, 비대면 화상회의에 대한 수요가 적었기 때문에, 기술 투자 비용 대비 실제 매출은 많지 않았다. 학부모도, 학생도 직접 선생님(강사)과 대면해 수업받는 것이야말로 진짜 강의요, 이심전심(以心傳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K가 처음부터 그가 온라인 교육콘텐츠 전문 소프트웨어 개발을 주력으로 했던 것은 아니다. 그들의 첫 사업모델이 화상 과외 서비스였고, 외부 거래처에서 요청했던 웹서비스도 하필이면, 온라인 화상회의와 관련된 것이었다.
다행인 점은 온라인 교육 시장의 성장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K 대표는 메가스터디 같은 교육업체의 폭발적 성장, 줌(zoom) 프로그램의 보편화를 확인하고, 이 산업에 집중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고객들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끊기지 않는 동영상>, <자연스러운 필기도구 사용>, <미디어 간 높은 연동성>이 필요했다. 물론,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수많은 실패와 시행착오가 있었다. 천신만고 끝에 총 15건에 이르는 국내외 특허권을 취득했다. 이 산업재산권이 회사의 가치를 높이고, 외부 투자자들에게 어필한 핵심 요인임은 자명하다.
한편, 그사이 국내외 경쟁사도 하나둘 늘어났다. 특히, 줌,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같은 해외 대기업들의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국내 교육기업들의 수가 증가하는 것이 신경 쓰인다.
시장이 커지는 만큼, 경쟁도 날로 심해지는데, 기술 고도화를 위해서는 소프트웨어 구매, 서버 증설, 개발자 채용을 멈출 수는 없다. 거기에 더해 사무실 월세, 각종 비품, 공과금까지 내야 하니, 매월 최소 1억 원 이상은 고정비용으로 지출된다. 창업자 3인방의 인건비를 줄이고, 외부에 맡기던 서버 유지를 내부화하고, 사무실 규모를 줄이면서 판매관리비를 줄이는 중이다.
남들은 투자금으로 벤츠도 사고, 강남에 사무실도 내고, 급여와 복지를 높여가며 개인 주머니도 두둑하게 챙긴다던데, K 대표에게는 그저 먼 이야기다. 어느덧 회사는 7년 차에 접어들어, 회사의 기술력과 경영진의 역량이 시장에서 인정받기 시작했고, 매출액도 최근 3년간 300% 이상 드라마틱하게 성장 중임에도, 그는 여전히 검소하고, 겸손하다.
다행히, 올해 하반기 들어 유명한 교육기업들이 외국기업의 소프트웨어 사용을 중단하고, K 대표의 회사를 파트너로 선정했다. 8월부터는 프로그램 동시 접속자 수가 몇십 배 많아졌다. 정해진 수수료를 받는 방식에서 접속자 수, 사용 시간 수를 기준으로 매출액 산정 기준이 바뀌었으니, 회사 자금 사정도 크게 개선될 전망이다. 게다가 겨울방학 성수기도 다가오고 있으니, 외부 투자자들의 피 같은 투자금으로 7년을 버텨낸 결실이 어느 정도는 맺어진 셈이다.
그러나, 여전히 K는 투자자들에게 미안하다. 올해 매출액은 30억 원 이상으로 예측되나, 거래처가 하반기 이후 늘어난 탓에, 아직 손익분기점(BEP)을 넘어서지 못하기 때문이다. 올해도 조심스레, 적자가 예상된다. 고금리, 경기침체 탓에, 투자시장은 여전히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고, 회사 곳간도 비어 가는 중이었던지라, K의 마음고생이 이만저만 아닌 모양이다.
아직 회사 근처 오피스텔 전세살이를 면치 못하고 있는 K 대표는, 올 초까지만 해도 전세보증금을 빼서 회사에 투입하는 것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회사를 안정적 성장궤도에 올려놓기 전까지, 결혼은 염두에 두지 않고 있다는 점이, 이제 와선 오히려 다행스럽다고 말하는 걸 보니, 서울대 출신 기업가에게도 창업은 정말 녹록지 않은 일임을 새삼스레 깨닫게 된다.
그래도, 초기 소액 투자자들부터 십억 원대 후속 기관투자자에 이르기까지, 십수 명에 이르는 외부 투자자들은 여전히 K 대표를 신뢰하고, 응원한다. 회사의 성장성과 기술력, 그리고 대표이사의 윤리성과 진정성을 믿기 때문이다. 매월 경영현황과 자금 현황을 업데이트해서 일일이 주주들에게 보고하고, 본인 인건비를 선제적으로 줄이는 와중에도, 고객 수와 매출액, 특허출원 건수는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으니, 과연 누가 그를 탓할 수 있으랴.
본래, 투자는 모험(Venture)이다. 그러니, 벤처투자자니, 벤처기업이니 하는 용어가 붙는 것이다. K 대표가 사기꾼이 아닌 것이 확인된 이상, 사실 그가 투자자들에게 책임질 일도, 미안해할 필요도 없다. 투자자는 주어진 정보를 토대로 최선의 의사결정을 내린 것이고, 기업가는 투자금을 바탕으로 꿈을 실현하기 위해 한 발씩 내디딜 뿐이다. 맞고 틀린 건 없다.
K는 내년을 해외 진출의 원년으로 삼고, 다양한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아무래도, 국내 온라인 교육 소프트웨어 시장은, 기업상장(上場)이라는 꿈을 이루기에는 규모의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영국에서 열리는 교육‧테크 기업 박람회 참석(출품)을 시작으로, 스페인/독일/미국의 온오프라인 전시회에 계속 참여할 예정이다.
다행히, 반응은 좋다. 온라인 시연회를 지켜본 스페인과 독일의 플랫폼 기업들이 벌써 기술수출을 의뢰하거나, 업무협약을 요청해 왔다. 그에 걸맞게 K 대표도 해외 영업과 홍보를 담당할 직원을 추가로 채용하고, 개발인력도 충원할 예정이다.
꿈은 미국 나스닥 상장이다. 그때까지 회사가 계속 생존, 성장을 하려면, 기술력을 계속 업그레이드하고, 새로운 사업모델도 발굴해야 한다. 사람과 기술에 대한 투자가 핵심 경쟁력인 기업이다 보니, 외부 투자도 추가로 유치해야 한다. 국내, 해외 거래처들을 대상으로 계속 기술 시연도 하고, 거래처도 늘려야 한다. 아직, 갈 길은 멀다.
그러나, K 대표는 남에게만 손 벌리지 않는다. 꿈을 공유하기 위해, 성장의 과실을 나누기 위해, 얼마 전 직원들에게 주식매수선택권, 즉, 스톡옵션(Stock Option)을 제공함과 동시에, 본인의 1년 치 연봉을 고스란히 회사에 재투자는 유상 증자를 단행했다. 이렇다 보니, 내부 직원들도, 외부 투자자들도 회사의 계속기업 가치, 사업 실현 가능성을 높게 평가한다.
현실적으로, 상장 기업이 될 확률은 만 분의 일도 되지 않는다. 게다가 나스닥 상장이라니, 어쩌면,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는 것보다 어려울지도 모른다. 꼭 기업을 외부인들에게 공개하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 규모를 키운 후에 다른 기업에 매각할 수도 있고, 외국계 사모펀드에 경영권을 넘길 수도 있다.
그러나, K는 그동안 믿고 응원해 준 수많은 이해관계인, 그리고, 선의의 천사(!) 투자자들을 위해 가급적 상상 이상의 선물로 보답하고 싶다. 모험투자자에게는 뭐니 뭐니 해도, 상상과 모험으로 가득한 어드벤처(ad-Venture) 영화티켓(Movie- ticket)이 제격이다. 시나리오 하나만 보고도 기꺼이 제작비를 투자한 스태프에게 영화 상영 수익에 따른 러닝 개런티(Running-guarantee)를 제공하는 건 자연스럽다. 어디로 흘러갈지 모르는 다이내믹한 서사의 무료 관람은 덤이다.
그의 고객, 시장, 산업은 이제 글로벌이다. 확대된 세계관 속에서 치열한 경쟁을 뚫어낸 후, 세상에 증명해야 한다. 서울대 진학이 지상과제의 끝이 되어서는 안 됨을, 서울대 출신이어서 투자받기 쉬운 것이 아님을, 우물 안 개구리로 사는 데 만족해서는 안 됨을 말이다.
오히려, 서울대 출신임에도, 일반적인 동문과는 달리, 벤처창업으로도 성공할 수 있음을, 겸손의 미덕으로 존경받는 CEO가 될 수 있음을, 물심양면 도움을 주는 이해 관계자들에게 성과와 보상으로 보답할 수 있음을, 책임경영/투명경영/윤리경영과 같은 교과서적 용어들이 실제 현실에도 적용될 수 있음을, 기꺼이 증명할 일이다.
서울대 출신 창업가가, 온라인 교육업계에 투신한 건, 참 흥미로운 지점이다. 대치동 일타강사가 되거나, 학원을 차려 부자가 될 수도 있었으리라. 그러나, 이젠, 되돌아갈 길은 없다. 어쩌면, 대입을 목표로 하는 고3 학생만을 고객으로 한정 짓지 않을 수 있다는 점에서, 더 큰 기회일 수도 있겠다. 배움에 대한 수요는 세대와 국경을 뛰어넘는다.
화상강의를 통해 확률통계 문제 풀어주던 수학 강사가, 이젠 확률 통계적으로 거의 답 없는 문제 앞에서 고심 중이다. 그러나, 그의 지성과 감성, 야성이라면, 충분히 기대할 만한 문제다. 자신감 있는 말투와 눈빛을 보니, K는 풀이 과정을 알고 있는 듯하다. 또한, 그의 진면목(眞面目)을 알아본 투자자, 거래처의 수도 늘고 있으니, 한층 마음이 놓인다. 또 하나의 유니콘 기업이 생겨나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