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개인회생 후 재기에 성공한 CEO

중년의 집념

by 임요세프

사업에 실패한 후, 다시 도전해 성공할 수 있는 확률은 얼마나 될까. 아쉽게도, 아직은 객관적 통계자료를 찾아보기 힘들다. 사업에 성공한 후, 기존 회사를 매각하거나, 인수․합병시키고 난 후, 연쇄 창업한 사례는 많다. CEO가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도 쉽고, 자랑스럽게 성과를 오픈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번 경제적으로 실패하면, 빚 독촉에 시달리거나, 주변인들로부터 비난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경우, CEO의 행적은 불투명하기 마련이다. 꼭 통계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사업 기반을 상실한 후, 경제적으로 재기하는 것이 쉽지 않음은,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사업 성공의 핵심은 사업 아이템, 자격증, 기술력이 아닌, CEO의 역량이다. 일반적으로, CEO 역량은 아이디어와 경험, 그리고 사회적 평판으로 가늠된다. 여전히 유교문화가 생활 깊숙이 영향을 미치는 우리나라에서는, 명예와 체면이 사회적 평판과 직결된다. 실패로 인해 실추된 명예는 사람을 움츠러들게 만들고, 본래 그가 책임져야 할 몫 이상의 부담감을 지운다. 한 번 넘어진 자에게, 웬만하면 두 번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박사과정에서 <재도전 제도의 효과성>에 관한 주제로 논문을 썼다. 논문 주제는 여러 사람의 관심을 얻기에 충분했지만, 선행연구와 통계 데이터, 설문답변 등을 구하기가 어려웠다. 아무리 사회과학이라지만, 명색이 박사학위 논문인데,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근거가 없다면, 그건 논문이라기보단, 한 편의 에세이일 뿐이다.


결과적으로, 나의 논문에서도 사업 실패 후 재기는 어렵다는 것이 다시 확인되었다. 2010년대 이후 정부와 정책금융 기관들은 각 조직의 특성에 맞는 여러 재기 지원 제도를 도입했다. 사라지면 (사회적으로) 손해인 기술력과 아이템, 유무형의 자산확보한 성실한 실패자를 선별해 내고, 그에게 맞춤형 정책 자금을 다시 지원하더라도,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재기 지원 금융(제도)과 재무적 성과 사이에 긍정적 상관관계는 발견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재기 지원 제도가 의미 없는 것은 아니다. 창업, 그리고 재창업은 자본주의 시스템이 작동하는 근본 원인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제품과 상품, 서비스가 계속해서 생겨나지 않으면, 발전이 없는 죽은 사회가 된다. 한 번 실패했다는 이유로, 두 번 다시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아무도 창업에 도전하지 않을 것이다.

기업인이 고의부도를 내거나, 자금을 사적으로 편취하지 않는 이상, 응당 책임질 만큼만 책임지면 된다. 법적으로 탕감받을 수 있는 채무는 탕감받은 후 나누어 상환하고, 회생이나 파산·면책 절차를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일부러 숨어버리거나, 자포자기하지 않는 한, 다시 기회의 문은 열릴 수 있다.


비용편익 분석 결과, 손실이 뻔함에도, 여전히 <재기 지원 제도>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 우리 사회가 함께 감내해야 할 몫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제아무리 자본주의라 하더라도, 피와 눈물은 있다.




L 대표는, 30대 중반 창업했다. 지금으로부터 15년 전이다. 대학에서 건축공학을 전공한 그는, 중견 건설사에 취업하는 것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전공, 자격증, 거기에 7년의 경험까지 더해지니, 자연스레 독립에 대한 꿈이 생겼다. 현장 밥도 먹을 만큼 먹어 사람 다루는 법도 터득하고, 알음알음 거래처 사장님들도 많이 알게 되니, 창업은 정해진 수순이었다. 주변에서 은근히 창업을 부추기기도 했다. 당신 같은 젊은이가 사업하지 않으면, 누가 사업하냐는 독려는 L의 창업 의지에 불을 지폈다.

L은 실내 건축공사, 인테리어 공사업으로 자기 사업을 시작했다. 아무래도, 생애 첫 사업이고, 자금력도 충분치 않다 보니, 소규모 공사에 집중하는 게 낫다는 판단이었다. 시작은 좋았다. 좋은 건축자재를 쓰면서도 합리적인 공사가격을 제시했다. 솔선수범하며 현장 인부들을 진두지휘하고, 공사 납기도 잘 맞추니, 만족도가 높았다.


소문은 빠르다. 가격경쟁력, 품질경쟁력을 갖춘 청년 기업가에게 일을 맡기려는 고객은 늘기 마련이다. 주택이나, 소형 건물 실내 공사 위주로 시작했는데, 어느새 오피스텔, 대형 건축물 공사 하도급까지 맡게 되었다. 자재비와 인건비가 늘어나는 건 당연지사다. 보통, 총 공사대금 중 계약금으로 10% 정도를 받고, 공사 진행률에 따라 중도금을 나누어 받는 구조이니, L은 돈 받기 전에 원재료 비용과 공사 현장 근로자들의 급여를 먼저 지급해야 했다.


공사가 마무리되면, 원 발주처가 중간 도급업체에 공사대금을 지급하고, 이는 다시 여러 하도급업체에 전달된다. 대개의 경우 원 발주처는 입주자들의 분양금이나, 금융회사들의 프로젝트 파이낸스(PF) 대출금으로 공사대금을 받는다. 만약, 미분양이 나거나, 자금시장이 경색되기라도 하면, 문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관련 회사들이 도미노처럼 무너지게 된다.


L이 독립해 한창 회사를 키워가던 시기는 2000년대 후반이다. 안타깝게도 미국발 금융위기, 즉,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발생했다. 건설업, 부동산 산업 분야가 가장 먼저 타격을 입었다. L 대표 역시 이 파고를 넘을 방법은 없었다. 미분양이 속출했고, 튼실했던 발주처가 어느 날 갑자기 부도났다. 공사대금을 받지 못했음은 물론이다. 당연히 입금되어야 할 돈이 수금되지 않으니, 회사는 심각한 자금난에 빠졌다.



보통, 중견·대형 건설사들은 공사대금을 나중에 지급해 준다는 약속으로, 하도급업체나 거래처에 <전자어음>을 발행해 준다. 그러면, L 같은 소규모의 전문건설업체들은 은행에서 어음을 할인해 미리 사용한다. 즉, 은행 선이자 떼고 대출받아 직원 인건비, 사무실 임차료, 원재료 매입비용 등으로 쓴다. 평소 같으면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만약 어음 만기일에 원청 건설사가 약속된 금액을 입금하지 못하면, 할인 대출받은 하도급업체에 상환의무가 생긴다. 어음제도의 폐해다.


L 대표도 이런 경우다. 공사대금 채권자가 졸지에 어음상 채무자로 신분이 전환된 셈이다. 어음법이 그렇고, 은행 상품이 그런 것이니, 어디 하소연할 데도 없었다. L 대표도, 이름 모를 수많은 기업인도, 그렇게 쓰러져 갔다.


가뜩이나 은행 할인율이 높아, 영업 이익금도 거의 없다시피 한데, 어느 날 갑자기 은행에서 돈 갚으라는 전화를 받는다면, 얼마나 황당하겠는가. 하도급 업체는 십중팔구 그 돈을 상환할 여력이 없다. 기업은 연쇄적으로 부도처리 되고, 돈을 빌려 쓴 CEO는 졸지에 신용불량자가 된다.


L은 그렇게 15년을 보냈다. 자존심 상하고, 억울했지만, 삶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경제적으로 파산하고, 명예와 평판은 실추됐지만, 자존감마저 버릴 수는 없었다. 애당초 본인 잘못으로 실패한 것도 아니니, 스스로 믿고 버텨야 했다.


금융기관 채무를 탕감받으려면, 개인회생을 신청해야 하고, 그러려면 고정 수입이 필요하다. 취업이 최선이었다. 계산해 보니, 가족들 부양하면서 빚도 갚으려면, 최소 10년 이상은 급여소득자 생활을 해야 했다. 절치부심, 기다림의 시간이다.

L은 지체 없이 지역 건설업체에 재취업했다. 그가 빚을 다 갚고, 재창업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무려 15년이다. 청년 사업가는 오간 데 없고, 중년의 밥벌이 직장인만 남았다. 왕년에 사업하던 사람이, 수백만 원 월급 받고 사는 건, 경제적인 문제를 떠나, 정신적으로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끝이 잘 안 보이기 때문이다.

급여로 생활비도 쓰고, 저축과 투자도 하며 살 수 있다면, 문제 될 건 없다. 그러나, L은 일반적인 직장인이 아니다. 씀씀이를 줄이고, 예전에 잘 나가던 기억을 걷어내는 데도 한참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나, 그는 그냥 허투루 직장생활을 하진 않았다.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더니, 사업해 본 L은 남달리 시야가 넓고, 업계 인맥도 풍부했다. 급여 인상도, 승진도 빨랐다. 그는 이 업계에서 인정받으려면, 신용과 성실이 중요함을 하루도 잊지 않았다. 공사 현장에 작은 문제라도 생기면, 주말 밤낮 할 것 없이, 누가 시키지 않아도 먼저 움직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회복 불가라 여기던 사회적 평판이 시나브로 나아지는 게 느껴졌다.

오랜 시간 고생하며, 믿고 기다려준 아내에게 보답해야 했다. 10년 동안 은행 빚을 다 갚고, 바로 독립할 수도 있었으나, 5년을 더 회사 다니며, 아내 명의로 아파트를 마련한 후에야 재창업을 결심했다. L이 가족들에게 재창업을 공표한 날, 아내는 기다렸다는 듯이, 자본금 수천만 원을 쾌척했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요, 부창부수(夫唱婦隨)다.




50대의 재창업은 여러모로 특별하다. 업계 특성상, 청년 기업의 빠른 일 처리는 오히려 부실 공사를 의미할 수도 있는 법. 중년 기업가 L은 신중함과 차분함을 무기로 영업했다. 그런 점이 고객들로부터 의외의 호응을 얻고 있다. 해외에서 질 좋은 원목을 직접 수입하니, 경쟁사 대비 가격과 품질경쟁력도 한 수 위다.

재창업 2년 차, 연간 매출액은 벌써 50억 원을 넘었다. 민간 하청공사만 기다리지 않고, 수백만 원짜리 관급공사 수의계약에도 적극적이다. 지난달에는 대기업 건설사 협력업체로도 등록되었는데, 신생 법인으로는 이례적인 성과라는 평이다. 공사수주액과 거래처 수는 계속 늘어나는 중이다. 올해 채용한 직원만 15명이 넘는데도 일손이 부족한지, 경력직원 채용에도 한창이다.

거래처 선정 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점은, 다름 아닌 공사대금 결제기일이다. 늦어도 2개월에 한 번씩은 공사대금을 회수한 후, 그 돈으로 미지급금을 결제해 주는 걸 원칙으로 한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넘기다간 과거의 아픔이 반복될 수 있기에, 돈 문제만큼은 철두철미하게 하는 편이다. 두 번 실수는 없다.

최근 2년 사이 그가 낸 세금이 지난 15년간 상환한 부채보다도 많다. 20여 명의 직원들에게 매월 지급하는 급여만 해도 억대에 이른다. 불과 2년 만에 L은 신용불량자에서 국세청 모범 납세자로 거듭났다. 환골탈태(換骨奪胎), 신세 역전이다.


아직, 사업 실패 후 재기에 성공한 사례를 찾기는 어렵다. 제아무리 좋은 주식이라 해도, 15년을 계속 투자(매입)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인데, 온갖 장애물이 도사리고 있는 재창업의 세계야 말해 무엇하랴.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지만, 주변의 손가락질과 의구심을 이겨내는 건, 혼자만의 역량으로는 불가능에 가깝다. 가족과 친구들이 “넌 할 수 있어”라고 응원해 주는 것만으로도 부족하다. (경제적) 제도와 (사회적) 문화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L의 재기 성공 사례는, 아직은 특별한 스토리다. 그러나, 재도전을 응원하고 격려하는 문화가 자리 잡는다면, 앞으로 제2, 제3의 L 대표는 계속 나올 것이다. 재도전 성공 사례가 쌓이면, 재기 지원 제도 관련 각종 정책과 수준 높은 논문이 늘어날뿐더러, 우리 사회가 그간 실패자와 낙오자를 바라보던 부정적 시선도 획기적으로 변화할 것이다. 그의 성공을 계기로, 실패 후 재도전이 자연스러운 시스템으로 자리 잡기를 기대해 본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빚 권하는 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