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여행기 -1
버스는 잠든 승객들을 지고 광활한 대륙을 달려 바르샤바에 도착했습니다. 새벽 6시의 바르샤바 중앙역의 공기는 매우 청량합니다. 아직 사람들이 잠든 새벽의 차가운 하늘에는 천천히 어둠을 쫓아내는 해가 푸른 빛을 이끌며 다가옵니다. 어딜 가기에도 애매한 시간이라 우선 중앙역으로 들어가 봅니다. 어제 프라하 행 기차를 찾다가 포기했는데 오늘이라도 기차표를 얻길 기대합니다. 아직 사람이 없는 기차역안에는 환경미화원과 저처럼 방금 역에 도착한 여행자들만 보입니다. 기차표를 찾아보려고 무인 발권기에서 이것 저것 눌러 보지만 어떻게 해도 표가 나오지 않습니다. 누군가에게 물어볼까 싶지만 다들 바빠보입니다. 눈 앞에 기차가 있지만 타는 법도, 사는 법도 모릅니다. 하는 수 없이 근처 카페로 가서 프라하 행 버스를 휴대폰으로 예약합니다. 일전에 말했듯이 스마트폰이 없었다면 저는 여행을 중간에 포기했을 것입니다. 대신 더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 할 수는 있었겠지요.
불행 중 다행으로 역 안에는 캐리어를 맡길 수 있는 곳이 있습니다. 날씨가 생각보다 쌀쌀해서 라트비아에서 넣어둔 외투를 다시 꺼내 입습니다. 화장실에서 대충 씻고 역에서 나오니 해가 벌써 떠올라 아침이 밝았습니다. 역에서 가장 가까운 명소가 어디일까 찾아보니 문화과학궁전이라고 나옵니다.
폴란드에서 가장 높을 뿐만 아니라 유럽 연합에서도 8번째로 높은 문화과학궁전은 바르샤바의 랜드마크입니다. 230m의 높은 건물은 스탈린이 통치하던 1950년대 지어졌는데, 덕분에 러시아에서 많이 봤던 스탈린 양식의 높고 뾰족한 기운이 느껴집니다. 사회주의 체제였던 폴란드는 북한과 많은 교류를 나눴는데, 문화과학궁전 외벽을 돌다보면 북한 여성 투사의 동상도 있다고 합니다. 코트라 바르샤바 무역관에 따르면 입구에 있는 코페르니쿠스와 미츠키에비츠의 동상을 제외하면 외벽의 동상들은 온통 사회주의 혁명에 관한 동상들이라고 합니다. 날씨가 좋아 돌아다니기 충분합니다. 실컷 구경을 마쳤는데 아직 문화과학궁전이 열리지 않습니다. 전망대 입장은 9시부터 가능하기 때문에 기다려야 합니다. 폴란드에서 첫 식사를 하고 싶지만 넓은 광장에 보이는 것은 푸드트럭 뿐입니다. 푸드트럭에서 주문하고 싶어도 모두 폴란드어로 써 있어서 난감합니다. 하나씩 번역하고 있으니 사장님이 다가옵니다. 영어도 폴란드어도 한국어도 서로 통하는 언어가 없으니 손짓과 발짓을 섞어갑니다. 제가 무슨 말을 한 지도 모르겠지만 사장님은 오케이를 반복하며 음식을 조리합니다.
바게트 빵을 길게 세로로 자르고 그 위에 버섯과 치즈를 올려 오븐에 구운 요리가 나왔습니다. 한 눈에 봐도 엄청난 크기입니다. 따듯한 빵과 치즈는 맛이 없을수가 없지요. 다 먹고나서 보니 시간은 벌써 9시가 다 되었습니다. 바르샤바는 하루밖에 머무르지 않으니 신속하게 문화과학궁전으로 갔습니다. 표를 사고 전망대로 올라가니 탁 트인 바르샤바의 전경이 보입니다.
넓은 광장 뒤로 지평선이 펼쳐집니다. 푸른 하늘 액자에 담아 둔 바르샤바의 전경은 놀랍습니다. 네모 반듯한 건물 사이에 푸른 옷을 입은 나무와 공원이 가득합니다. 온 눈에 담기 바쁜 와중에 카메라의 셔터는 쉴 틈이 없습니다. 이렇게 넓은 평야는 처음 봅니다. 네 방면 모두 움직이며 바르샤바를 가슴에 담습니다. 사방이 모두 지평선뿐 그 흔한 언덕 하나 없습니다. 서쪽으로 이동하면 현대식 건물들이 아웅다웅 키 자랑하듯 서 있습니다. 빳빳한 종이로 만든 듯이 날카로운 건물들 사이로도 평야 뿐입니다. 눈부신 해를 피해 북쪽을 바라보니 훨씬 멀리까지 선명하게 보입니다. 미세먼지 하나 없는 멋진 풍경과 한가롭게 흐르는 비스와 강이 보입니다. 습관적으로 깨끗한 공기를 마시기 위해 크게 숨을 들이 쉽니다. 이렇게 깨끗한 도시의 풍경을 본 것이 얼마만인지 모르겠습니다.
넓은 평야에 위치한 도시답게 굴곡진 역사도 가지고 있습니다. 한때는 용맹한 정예 기병부대인 윙드 후사르가 호령하기도 하였고, 2차 세계 대전에는 나치의 기갑부대에 점령당하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평화로운 평야을 찾은 폴란드 바르샤바의 풍경은 아무리 바라봐도 눈이 피로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도시를 하루만 있는 것이 너무 안타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