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왕과 사는 남자>, 거장 지망생의 도전장
거장(진). 거장 지망생. 거장 직전 감독. 최근 이 영화 개봉 후 거장에 한 끗 정도 못 미치는 그를 부르는 별명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눈물 자국 없는 말티즈인 장항준은 이번 영화를 통해 환하게 박장대소 하는 말티즈가 될 수 있을까. 지금 흐름으로 천만 영화도 가능하다는 예측도 있는데, 정말 천만 영화라는 타이틀을 장항준이 가져갈 수 있을까. 기대 반 응원 반의 심정으로 영화를 봤다.
단언컨대 나는 시네필도 아니고, 장항준의 감독 스타일도 모르고, 그의 팬을 자처할 정도로 그의 전작을 모두 본 사람도 아니다. 그저 윤종신의 베스트 프렌드라는 것. 거장 김은희 남편. 굉장히 독특한 캐릭터로 웬만한 개그맨보다 웃기다는 것. 그 정도가 내가 생각하는 그의 모습이다. 다만 한 가지 이유 때문에 그의 영화가 갑자기 궁금해졌다.
가장 큰 이유는 엠티 썰 때문이다. 바야흐로 20여년 전 신혼이었던 그는 친한 친구들과 자주 우이동 계곡에 엠티를 놀러갔고, 우연한 계기로 자주 갔던 단골 꼬치집에서 일하던 20대 알바생에게 시간되면 엠티에 놀러오라고 했는데, 그녀가 진짜 엠티에 왔다. 그래서 신나게 그녀와 놀았는데, 그녀는 사실 화가 지망생. 하지만 집안 형편 때문에 화가란 꿈도, 대학도 포기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장항준 부부가 그녀에게 신혼집의 남는 방을 작업실로 내주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곳에서 그림을 그리며 꿈을 키웠고, 명문대 미대에 입학해서 화가로 성장했다는 썰이다. 이 지독한 낭만과 따수운 썰을 듣고, 그가 궁금해졌다. 그리고 감독의 예술이라 불리는 영화는, 과연 이 따뜻하고 낭만 있는 감독의 태도를 닮아있을까. 그게 나의 질문이자, 내가 영화를 보게 된 계기였다.
단종의 비극은 누구나 다 안다. 국사책에 버젓이 나오는 역사다. 공교롭게도 이 영화 주인공들이 찍은 사진도 정말 국사책을 찢고 나온 당시 조선 사람들인 것처럼 싱크로율 백프로를 자랑한다. 특히 연기 차력쇼란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유해진을 필두로 연기가 아주 귀가 막히고, 코가 막힐 정도로 잘한다. 지단, 앙리, 베컴 등 쟁쟁한 월드컵 스타들이 한 경기장에 우르르 뛰는 올스타전을 방불케한다. 다만 그 올스타전의 단점도 고스란히 공유한다. 모든 개인기의 연기적 완성도는 뛰어나지만, 그 완성도를 완전히 자연스럽게 이어가는 연출은 다소 삐끗한 면이 있다. 뭐 본 사람은 알 수도 있지만 호랑이 CG가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까. 무슨 시네필도 아니면서 까불지 말라고 할 수도 있기에, 비판은 여기서 생략한다.
영화의 새로운 발견이라고 하면 단종 역의 배우 박지훈이다. 박지훈은 과장과 구라를 500% 더해서 말하면 단종의 DNA를 물려받은 후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역사 속 단종이란 인물을 찢고 나온 인물 같았다. 단종이 가진 마음의 빛과 그림자를 섬세한 눈빛과 몸짓으로 표현한 점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단종의 서글픈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서 현장에서 부러 물 한 모금도 입에 대지 않았다는 썰을 들었다. 특유의 눈빛과 함께 그런 디테일이 있었기에 단종이란 인물을 완벽히 소화할 수 있던 것이 아닐까. 파수꾼에 나온 박정민 만큼 아주 흥미로운 데뷔였다고 할까. 앞으로의 가능성을 더 기대해본다.
앞서 연출이 모자란다고 했으나, 나는 단종이란 인물을 새롭게 바라보며 재창조한 점은 아주 칭찬한다. 늘 어딘가 병약하고, 나약한 존재로 단종을 그리는 사극들을 보며 지겹다는 생각을 했다. 장항준은 그런 이미지로 단종을 결코 그리지 않는다. 물론 폐위된 왕의 상처를 전반부에서 그리기는 하지만, 그걸 후반부까지 이끌고 가지 않는다.
그래서 전반부에 또 병약한 단종이 나올 때, 잠시 영화관을 나갈까 심각한 고민을 했다. 만약 별반 달라지지 않는다면 정말로 나갈 궁리를 하는 그 찰나에, 단종이 아주 딱부러지고 단호한 자세로 위기를 극복하는 모습을 볼 때 안도했다. 빤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너무 좋았다. 그래서 그 비극을 알면서도 끝까지 지켜봤고, 역시 실망시키지 않았다.
단종의 죽음. 마지막 단두대에 선 왕과 왕을 처형하기 위해선 선 백성 사이의 미묘하고, 미어지는 감정을 아주 폭팔적인 장면을 통해서 보여준다. 눈물이 나올 정도는 아니었지만, 울컥하기엔 아주 충분했다.
과한 칭찬은 지양해야지 하면서 썼는데, 너무 칭찬만 늘어놓은 것 같다. 하지만 마지막 칭찬으로 이 글을 끝낸다. 그가 동진찡이라는 부르는 빨간 안경 선생님 유튜브에 출연했는데, 동진찡이 전반부의 조악함에 대해서 살짝 짚었는데, 그걸 기분 나빠하지 않고 유쾌하게 받았다.
오히려 자신도 가장 다시 찍고 싶은 장면이라고 하면서 아주 솔직한 술회를 한 점에 감명을 받았다. 쪼와 자존심이 있는 감독이라면 분명 얼굴을 구기며, 반론을 했을 것인데, 그는 그렇지 않고, 자신의 오류와 단점을 겸허히 인정해버린다. 나는 척하는 사람보다, 솔직히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반성하는 사람에게 늘 정이 가고, 그런 사람이 정말 잘되길 누구보다 기원한다.
항준찡의 첫 천만영화 달성을 기원해보고자 다소 두서 없는 글을 영문객잔의 첫 번째 글로 써본다. 시네필도, 평론가도 아니지만 그저 영화, 그리고 그 영화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통해 세상과 예술을 배워고 싶은 한 명 소시민, 한 명의 딜레탕트로써 써본다. 수양대군이 광릉에서 벌떡 일어나, 장항주니가 거장이 될 상인가 물어본다면, 솔직히 아직은 모르겠다.
하지만 그의 다음 영화를 볼 것인가 물어본다면, 나는 예스라고 답하고 싶다. AI, 두쫀쿠, 반도체, 코스피 6000. 세상은 너무나도 빠르고, 힘차게 앞서가는 것들은 너무나도 많지만, 한 인간을 향한 따뜻한 정서와 마음을 간직한 채 사는 사람은 드물기 때문에, 나는 그런 사람이 만드는 영화, 그런 따뜻한 이야기의 영화를 보고 싶다. 끝까지 읽었는데, 아직도 항준찡의 영화를 못 본 이가 있다면 바로, 예매를 클릭하라!! 절대 뒷광고는 아니고, 그냥 아무 생각 없는 사심이다!!! 항준찡, 그대 보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