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자들이 만들어 가야 할 새로운 선택지
막장 프로그램의 연쇄 작용
논란을 불러일으켰다는 것은 일단 이슈화에 성공했다는 이야기이다. 이슈화 성공은 곧 시청률 수직 상승으로 이어진다. 욕 하게 만들고, 욕하면서도 본다. 끊을 수 없는 중독성 강한 프로그램. 욕하며 보는 프로그램 탄생의 연쇄 작용이다. 한국 드라마의 진부한 설정은 곧 막장 드라마라는 등식이 세워졌다. 출생의 비밀, 신데렐라의 탄생, 불치병, 불륜까지 기본 소재는 일맥상통한데 디테일만 조금씩 변화한다. 막장에 이미 내성이 생긴 시청자들을 TV앞으로 끌어오기 위해 막장성은 점점 강도를 더해간다. 해를 거듭할수록 조금 더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비틀기가 이어진다. 막장의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최근 종영한 <내 딸 금사월>은 마지막 회 34%의 시청률로 막을 내렸다. 첫 회 14%대에서 출발한 시청률은 극 중후반부터 급격한 상승 곡선을 그렸다. 악역 혜상의 막장 행각이 심해질수록 시청률은 크게 상승했다. 하지만 악역이 절대 악을 드러내고, 주인공이 이해할 수 없는 답답한 행보를 보일수록 시청자들의 비난도 커졌다. 아이러니하게도 시청률이 높아질수록 시청자들의 분노는 더욱 커진 모양새이다.
예능 프로그램의 상황은 조금 다르다. 종영일자가 정해져 있는 드라마와는 달리 매주 끊임없는 아이디어 싸움이 치열하다. 또 당장 시선을 끌지 못하면 시청률 경쟁 패배, 더 나아가 폐지의 쓴맛을 봐야하는 만큼 이슈화 경쟁은 상상을 초월한다. 힐링 예능, 착한 예능은 이미 설 자리를 잃은 지 오래고 악마의 편집, 자극적 자막, 출연자 몰아가기 등의 문제로 늘 시끄럽다. MBC의 <진짜 사나이- 여군 특집>과 Mnet <프로듀스 101>은 그야말로 논란-시청률상승-시청자불만-제작진 해명이라는 기본 공식이 성립된 것처럼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프로듀스 101>은 시들해진 오디션 프로그램에 인공호흡을 하듯 이례적인 선택을 하였다. 46개 기획사의 연습생을 100% 시청자 투표로 뽑는 직접적이고 자극적인 전개 방식을 내걸었다. 시청자들끼리 팬덤 경쟁을 부추기고, 특정 연습생을 부각시키며, 악마의 편집으로 연습생을 인성 논란에 빠뜨리는 등 늘 자극적인 전개로 시청자들의 눈길을 끈다. 제작진의 악마의 편집에 시청자들의 투표권은 영향을 받는다며 문제를 제기하는 시청자들도 적지 않다. 때문인지 막장 논란과 함께 프로그램 진행 방식에 대한 불만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다. 하지만 그럴수록 시청률, 화제성 지수만은 고공행진을 거듭한다.
이슈화 경쟁과 시청률 평가 구도는 방송가의 고질적인 문제이다. 시청률 지표가 곧 방송의 생명력과 연관되는 만큼 방송 제작자들은 기를 쓰고 시청률을 높이려 한다. 방송에 대한 올바른 가치와 신념만으로 착한 프로그램을 제작한다해도 시청자들의 외면을 받기 일 수이다. 착한 방송이 사라진 만큼 막장의 홍수를 막을 재간도 없어 보인다. 막장 프로그램의 악순환에 대해 제작자들은 방송 제작의 현실에 대해 이야기한다. 또 시청자들의 뜨거운 반응이 사실상 제작의 가장 큰 원동력이라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작자들의 항변에 시청자들은 맥이 빠질 수밖에 없다. 마치 막장프로그램 제작의 근본 원인을 시청자 탓으로 돌리는 것만 같기 때문이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
막장 프로그램의 악순환이 방송가 전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다. 시선을 사로잡기 위해 경쟁적으로 자극성을 부각시키다 보니 방송 전반의 질적 저하가 심각한 수준이다. '방송 드라마의 공적 책임, 이대로 좋은가?‘에 대한 토론회가 펼쳐질 만큼 이 사안에 대한 공론화까지 이루어진 상황이다. 방송 제작자들의 억울한 항변은 시청자들을 당혹스럽게 만든다. 제작자들은 욕하면서도 보는 시청자들 때문에 불편한 방송을 만들 수밖에 없다고 볼멘 목소리를 낸다. 막장 제작의 근본적인 원인을 수용자인 시청자들 탓으로 돌리고 있다. 시청자들의 입장도 억울하다.
양측의 주장이 완전히 설득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악순환을 조장하며 그 책임을 전가하기에만 바쁘다. 하지만 사태의 원인 찾기는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되지 못한다. 욕하며 보는 프로그램의 존재 가치, 이에 대한 책임 소재를 묻는 것은 사실상 의미가 없다. 악순환이 반복 된다는 것은 이미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만큼이나 불필요한 논쟁이다. 모순 같지만 자극성에 반응한다고 해서 시청자들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할 수는 없다. 문제의 심각성이 대두된 만큼 누구 탓? 보다는 누가 능동적으로 변화를 주도하느냐에 집중해야 될 때이다.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사실 하나는 있다. 욕하면서 보는 프로그램들, 드라마와 예능을 막론하고 초반 신선한 소재로 눈길을 끌었던 프로그램들이 내용과 에피소드가 불필요하게 늘어지면서 자극성만 남고 있다는 사실이다. 애초에 막장을 위한 막장은 소수에 불과하다. 열악한 제작환경, 늘어뜨리기 식 편성, 불필요한 자막과 효과 등이 프로그램 생태를 어지럽히고 있다. 결국 남는 결과는 막장이라는 꼬리표이다. 그럼에도 시청자들의 구미를 당기기 위함이라며 그 책임을 회피 할 수 있을까?
시청자들의 선택이 막장 프로그램의 제작을 독려한 적은 없다. 시청률이라는 소기의 목표, 방송사간의 경쟁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은 결과이다. 지난 설 연휴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KBS PD의 항변이 그 사실을 적나라하게 입증해 준다. 임팩트를 남기기 위해서라면, 이슈화에 성공 할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식의 변명은 시청자들의 비난을 받았다. 이에 시청자들은 능동적 대처로 막장 프로그램의 정규편성을 막았다.
시청자들이여, 치어머니가 되자!
지난 설 명절 kbs는 파일럿 프로그램 하나로 큰 곤욕을 치렀다. 파일럿<본분 올림픽>이 가학성과 선정성으로 논란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방송 직후 트위터, 페이스북 등 SNS와 시청자 게시판 등에서 갑론을박이 펼쳐졌다. 폭발한 트윗 버즈량과 댓글수는 얼마나 많은 시청자들이 이 프로그램에 분노하였는지 알 수 있었다. 프로그램은 여자아이돌을 상품화하여 품평회를 펼치는 등 인권을 철저히 무너뜨렸다.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상황에 희롱거리로 전락한 아이돌들의 모습에 시청자들은 가만히 보고만 있지 않았다. 시청률만 높이 나오면 된다는 안하무인식 제작 형태에 여론을 형성하여 프로그램 징계와 정규 편성 반대를 이끌어 냈다.
시청자들의 적극적인 행동에 제작진은 사과하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심의에도 회부됐다. 당연히 정규 편성은 불발되었고 KBS PD는 임팩트, 재미라는 두 가지 말을 남기며 사과했다. 프로그램을 보며 시청자들이 공영방송의 책임을 이야기했다는 것은 시청자들의 달라진 시청패턴을 대변한다. 막장 프로그램을 그저 바라만 보던 시청자들의 수동성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그 중에서도 tvN 치즈인더트랩의 ‘치어머니(치즈인더트랩+시어머니)’의 등장은 높아진 시청자들의 위상과 능동성을 띌 변화의 행보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제 시청자들은 소위 ‘치어머니’가 되어 제작 준비 단계부터 결말, 종영 후 관리까지 자신들의 의견을 적극 개진한다. MBC의 <마이 리틀 텔레비전>과 파일럿 <톡하는 대로> 등 SNS 실시간 소통형 프로그램이 신드롬을 일으킨 이유도 일맥상통한다. 이제 대중들은 더 이상 만들어진 콘텐츠의 수동적 소비자가 아니다. 자신들의 의견을 적극 개진하며 콘텐츠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렇듯 시청자의 능동적 수용문화야말로 막장 프로그램의 악순환을 막을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시청자들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면, 시청자들도 변화된 행보로 능동적인 방송 수용을 이끌어야 한다. 방송 프로그램의 마지막 선택권은 결국 시청자들의 손에 달려있다. 시청자들의 외면을 받는 프로그램은 더 이상 살아남지 못한다는 철칙 역시 시청자들의 소중한 권리이다. 시청자 의견이야말로 이 소중한 권리를 실행에 옮길 수 있는 강력한 힘이다. 방송 프로그램의 질적 저하, 누구의 탓인지를 따지는 것은 사실 중요하지 않다. 다만 시청자들의 능동적 수용과 제작진들의 상호 작용 노력이 함께 만날 때 비로소 변화는 시작 될 수 있다.
시청률 사수를 위한 고질적인 일방향 방송제작은 더 이상 시청자들의 선택을 받지 못할 것이다. 대중들의 의견을 적극 수용하는 자세야말로 제작진들의 프로그램 질 개선을 위한 변화의 첫걸음이 될 수 있다. 방송 제작의 공적 책임은 사실 시청자들을 위한 것만은 아니다. 제작자인 동시에 시청자일 수밖에 없는 미디어의 숙명에 책임의식을 갖고 스스로 경종을 울려야 할 것이다. 시청자들이 능동적으로 채워나가야 할 새로운 선택지, 그것이야 말로 막장 프로그램의 악순환을 뿌리 뽑을 수 있는 가장 단순하면서도 확실한 방법이 될 것이다.
<출처: 월간방송작가 4월호- 이현민 기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