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 해외봉사 오긴 왔는데 뭘 해야 하나

작은 일부터 찾아 합니다.

by 세렌뽕구


나의 임무는 2년간 페루의 초등학교에 가서 컴퓨터 봉사 단원으로 활동하는 것이다. IT를 전공했다는 이유로 연관이 있겠다 싶어 컴퓨터 단원에 지원은 했지만 장기간의 임무 수행 기간 동안 무슨 일을 하는지 가닥이 잡히지 않았다.


하지만 내심 하나만큼은 확신했다. 지구 반대편에 위치한 리마의 어떤 학교에서 나를 필요로 했다는 것. 일단 그곳에 가면 그 답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앞으로 하게 될 일에 대해 여러 상상과 기대를 품고 이곳에 왔던 첫 출근 날 나를 머나먼 페루까지 초대한 당사자인 교장 선생님은 내게 물었다.



당신은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나요?


상냥한 웃음을 지으며 던진 그의 질문에 나는 몹시 당황했다. 막연하긴 했지만 당연히 어떤 구체적인 역할을 놓고 활동을 조율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깐. 그런 내게 당신들을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냐고 묻는 질문이 가슴을 퉁 쳤고 무게가 너무 무겁고 막막해 당장 집으로 되돌아가고 싶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2년의 시간을 담보로 지구 반대편을 돌아서 여기까지 왔는데 돌아갈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름의 용기를 짜내어 "당장은 잘 모르겠지만 차차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겠습니다."라고 했다. 고개를 들어 둘러보니 창문 밖에서 선생님들과 학생들 그리고 학부모들까지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 대화 현장을 구경을 하고 있었다. 내게 보내는 기대 어린 눈빛에 부담감에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일단 이곳에서 내가 할 일을 찾으려면 지금의 학생들이 컴퓨터로 수업을 하는 모습을 봐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선생님들의 안내에 따라 컴퓨터실에 들어갔다. 대부분의 PC들은 윈도 98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당시 최신 사양은 윈도 7이었다.) 당연하게도 매우 느렸고 이런 와중에 몇 대는 켜지지도 않았다. 한 대의 PC에 두세 명의 학생들이 함께 앉아 컴퓨터를 쓰는 모습을 보며 슬그머니 자신 없는 마음이 고개를 들었다.


'2년간 뭘 가르쳐 줄 수 있긴 할까?' 하는 생각이 계속 맴돌며 긴장감에 꽁꽁 얼어버린 내게 컴퓨터가 느리지 않냐고 묻길래 나는 솔직하게 맞다고 했다. 이 말에 선생님들은 내가 컴퓨터실을 바꿔줄 것이라 확신했던 것 같다. 모두 일어나 박수를 치며 기뻐했기 때문이다.



브라보!
저 한국인이 컴퓨터가 느리다고 하네요!


아하, 저 낡은 컴퓨터들을 무상 교체하기 위해 간절히 날 원했구나. 하지만 실제 컴퓨터를 교체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하기 위해선 내게 최소 6개월의 현지에 근무 경력이 필요했다. 충분히 경력이 찬다 해도 프로젝트 승인이 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나는 새 컴퓨터를 바꿔주러 온 사람이 아니라고 이야기했지만 선생님들은 연신 내게 감사하다고 했다.




걱정으로 마음이 얼룩덜룩해졌다. 그렇다고 그동안의 스스로와 날 향한 많은 사람들의 기대감을 저버리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책상에 앉아 하루를 복기하며 앞으로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적어보았다.



컴퓨터를 잘 쓸 수 있는 법을 알려주고 싶다.


페루 사람들은 일을 많이 한다던데 인터넷과 워드 프로그램만 잘 사용할 수 있어도 일을 덜 할 수 있지 않을까? 한컴 타자처럼 스페인어 타자 프로그램을 찾아보고 없다면 칠판에 그려서라도 해봐야지.


1명이 1대의 컴퓨터를 쓸 수 있으면 좋겠다.


사람이 비해 PC가 부족하고 사양도 낮으니 가능할 것 같기도 하다. 언젠가 학생들은 졸업을 할 것이고 작은 지식이지만 내가 이곳에 있음으로 몇 년 후에는 더 나은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네.




수첩에 적고 나니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졌다. 몸에서 힘을 빼고 둘러보니 할 수 있는 일들이 꽤 많이 보인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한다고 컴퓨터는 장비빨이라는데 당장 장비가 없으니 일단 칠판과 종이 전지를 활용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주관적인 결론은 장기 해외 봉사는 나의 주력 분야와 나를 초청한 기관에서 원하는 것의 중간점을 찾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다. 봉사자라는 신분으로 새로운 나라 새로운 장소에서 살아도 시간이 지나면 역시 일상이 된다. 늘 처음의 마음을 기억하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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