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맨발로 가출
나는 이해의 폭이 넓은 평화주인자인 사람이지만, 나에게도 참을 수 없는 한 가지가 있었으니 그건 바로 술술술
기억을 더듬어 올라가 보면 김해인 씨는 학창 시절에도 늘 술과 함께 하는 사람이었다.
‘막차가 끊길 때 만나서 첫차가 다닐 때까지 마신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새벽팀 클럽의 당주였으며 모든 술자리에는 김해인 씨가 딱 중앙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게다가 어찌나 남자들에게 인기가 많던지 늘 형님형님 따라다니는 후배들이 많았다. 결혼 전에는 그게 남자답고 의리 있어 믿음직스러운 사람이라 멋지다고 생각했으나 세상에나…
그것이 우리 결혼 생활의 발목을 늘 붙잡고 있었다.
스무 살이 넘어 내가 연애를 처음 시작할 때 엄마는 말했다.
연애할 때의 장점은 결혼생활의 단점이 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이다.
그 말을 새겨들었어야 했다. 엄마의 말은 하나도 틀린 것이 없었다.
형님세계에서 김해인 씨는 후배들의 슈퍼스타였다.
세상에서 술을 젤 잘 먹고 담배를 젤 멋있게 피우는 (내 눈엔 제일 꼴 보기 싫은) 롤모델. 그게 이십 대의 김해인 씨였다.
결혼을 하고 나서도, 아이가 생기고 나서도, 약속이 생기면 오후 2시 약속이든, 밤 10시 약속이든, 다음 날 첫 차가 다녀야 집으로 돌아왔다.
술에 취한 정도가 아니라 술병에 들어가 밤새 수영이라도 한 사람처럼 , 술에 절여져서 들어왔다. 난 그게 정말 꼴 보기 싫어서 지구 저 반대쪽까지 땅을 파고 들어가서 소리를 빡 지르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리고 당연한 말이지만 술을 마시기 시작하면 전화를 안 받았다.
들어오지도 않고 전화도 안 받고, 이건 촬영 때도 똑같은 상황이지만 촬영할 때와 술을 마실 때는 내 마음이 달라서인가, 유난히 안달이 나고 짜증이 나고 미칠 것 같았다.
술 마시다가 집 앞에서 사라져서 경찰을 부른 적도 있었고 ( 벤치에서 자고 있었다) 큰 금액을 몽땅 결제한 날도 있었고 …
정말 내 얼굴에 침 뱉기 같아서 다른 사람에게는 말도 안 하고 내가 끙끙 앓고 살아온 커다란 문제였다.
주로 다음 날 촬영이 없으면 촬영이 끝나고 내도록 마셨다.
지금 생각하면 간이 그만큼 튼튼해서 다행인 건가, 건강한 신체에 감사한 마음이 마구 들고 그렇지만 어떻게 그 긴 세월을 그 꼴을 보고 살았던 거지?
결혼 생활에 대부분이 괜찮고 딱 한 가지가 싫다면 그 한 가지는 눈을 꼭 감고 사는 게 지혜라고 말을 한다.
하지만 나는 다 눈을 감고 살아도 이건 정말 눈을 감고 참기가 힘이 들었다.
나는 싸움을 좋아하지 않아서 부부싸움을 (거의) 하지 않고 살아온 편인데 술 마시고 들어온 김해인 씨에게 소리를 질러보기도 헀고, 울어보기도 했고, 협박을 하고 달래 보기도 하고 , 어머니한테 이를 거라는 유치한 으름장을 놓아 보기도 했다.
하지만 십 년이 지나고, 십일 년이 지나도 절대 고쳐지지 않았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결혼생활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며 내가 알게 된 진리가 바로 그것이다.
서로를 그대로 인정해야만 그 결혼이 평온하다는 것.
이해도 아니다. 그냥 인정.
그래도 연락 끊고 밤새 마시는 술은 인정이 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가을, 며칠 동안 두통이 심했다.
똑바로 걸어도 옆으로 걷는 것 같았고 그 정도면 mri를 찍어야 한다고 주변에서 이야기를 했다.
김해인 씨에게는 화가 너무 많이 나서 옆으로 날라차고 뒤집어 차고 등짝을 두들겨 패도 시원찮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아슬아슬한 평화라도 소중한 평화주의자인 나는 코 골며 잠자는 김해인 씨의 등짝을 발로 차고는 자다가 몸부림 때문에 그런 척, 그게 전부였다.
(난 그때부터 김해인 씨를 발로 차고 싶은 등짝이라고 부르고 있다.)
밤새도록 술을 마시고 들어와서 코 골며 잠자는 김해인 씨는 두고 집을 나섰다.
원래 계획은 서점에 갔다가 와인을 사서 돌아오는 것이었지만 딴생각을 하다가 정거장을 지나친 나는 에라 모르겠다, 이런 마음으로 김포공항으로 갔다.
그때 나는 한강 작가의 '내 여자의 열매' 소설을 읽고 있었는데 마치 내가 소설 속 주인공처럼 아파트 한 구석에서 말라비틀어져가고 있는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가장 빠른 비행기표 한 장 주세요, 이야기를 하자 가슴이 갑자기 시원해졌다.
양말도 신지않은 맨발에 장바구니 하나 들고 비행기표를 끊는 나에게 항공사 직원은 제주도민이세요? 질문을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제주도민은 비행기표 할인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집을 나선 지 세 시간 만에 제주도에 도착을 했다.
맨발로 장바구니를 든 채, 마치 동네 슈퍼에 가는 차림새로 제주에 도착한 나는 무작정 버스를 타고 동쪽으로 동쪽으로 달렸다.
그리고 그날 밤, 제주 동쪽의 작은 숙소에서 세상에서 가장 단 잠을 잤다.
깨지도 않고 뒤척이지도 않고 그런 달디 단 잠은 결혼을 하고 처음이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커피를 마시며 우리가 이런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우리의 인생은 훨씬 더 풍요로울 거야, 생각을 했다.
자전거를 타고, 책을 읽고 , 낮잠을 자고, 맥주를 마시고, 이보다 더 아름다운 하루는 없을 거라고 생각하며 아무 생각 없는 날을 보냈다.
그렇게 가출로 시작한 나 홀로 제주도의 끝은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나 혼자 고요하게 책 읽고 있는 방에 김해인 씨는 맥주와 만두를 사서 한 밤 중 나를 갑자기 찾아왔다.
나는 그 순간 마치 방안에 기린 한 마리가 들어온 것처럼 기이하며 낯설고, 한편으로 웃겨서 웃음이 났다.
밤 열 시에 갑자기 내 방에 나타난 김해인 씨라니.
아이들을 할머니댁으로 급히 보내며 아빠가 엄마 찾아올게, 이런 비장한 이야기를 하고는 비행기를 탔다고 한다.
그렇게 한 밤에 나를 찾아온 김해인 씨는 다음 날, 오름에 올라가며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나는 자신이 살아온 생에 대한 증거와 이유 같은 거라고.
그러니 옆에 꼭 옆에 있어달라고 말이다.
아… 이렇게 마음 약한 평화주의자의 가출은 이 한마디에 막을 내리고 말았다.
그렇다면 가출 이후, 과연 김해인 씨는 술을 끊었을까?
절대. 사람은 역시 쉽게 바뀌지 않는다.
다만 나가기 전에 어디에 가는지, 어디에 있는지, 몇 시에 올 것인지 이야기를 한다.
물론 그 약속을 다 지키지 않지만 그래도 최대한 약속한 시간에 맞추어 들어오는 노력을 한다.
더 이상 첫 차는 타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그 뒤로 주기적으로 혼자서 제주도에 가게 되었다.
일 년에 두 번,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동쪽의 작은 방에서 자전거를 타고 걷고 맥주를 마신다.
일 년을 마치 그 두 번의 제주행을 위해 사는 사람처럼.
그런 시간을 내 삶의 계획표에 넣고 난 후 나의 삶은 훨씬 더 풍요로워졌다.
올해도 제주도에 갈 때가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