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가족 독자 1호 2호 3호
1호는 우리 엄마.
2호는 꼬맹이.
3호는 시어머니.
책을 찾아온 그 다음날, 토요일이었다.
아침을 먹고 늘어지게 늦잠을 자고, 시부모님 댁으로 향했다.
낮잠도, 늦잠도 거의 자지 않는 내가 요 며칠은 자꾸 눕고 싶어진다.
책을 인쇄소에서 받아 들고 운전대를 잡던 순간부터, 틈만 나면 정신없이 졸음이 밀려온다.
책 한 권을 세상에 내는 일이란, 아이 하나 낳는 느낌이라더니 내게는 그 감정이 졸음으로 몰려왔다.
책 열 권을 산 우리 엄마의 뒤를 이어 두 번째 고객이었던 우리 꼬맹이는 내 책을 어찌나 정독을 하는지, 가방에 책을 넣고 다니며 수시로 읽고 또 읽는다. 모르는 게 있으면 물어보고 책에 나오는 영화와 드라마는 어디에서 볼 수 있을지 묻는다. 학교에서도 친구들에게 자랑을 너무 많이 해서 부끄럽많은 나는 어쩐지 책상 밑에라도 쪼그리고 숨고 싶지만, 김해인씨가 내가 마음껏 책을 쓰도록 자신의 모든 것을 허락해 준 만큼 꼬맹이가 누리는 이 감정도 꼬맹이의 것이다. 너도 맘껏 누리렴.
토요일 오후, 막히는 올림픽대로를 지나 시부모님 댁에 도착했다.
어머님은 외출 중이셨고, 아버님만 집에 계셨다.
책을 보여드리며 사시라고 했더니, 아버님은
“이런 건 선물로 줘야지, 파는 게 아니라."
이러면서 끝내 고집을 부리셨다. 우리 아버님은 은퇴한 목사님으로 별명이 압구정 돌지갑이다.
한번 지갑에 들어간 돈은 절대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는 전설의 돌지갑. 자린고비 김해인씨는 돌지갑 김일환씨를 그대로 닮았다.
다행히 어머님이 급히 돌아오셔서 서로 고집을 부리는 며느리와 아버님 사이를 중재하며 책 다섯 권을 제값 주고 사셨다.
“제발 한 권씩만 사세요”
말리는 내 말에도, 엄마도 어머님도 열 권, 스무 권씩 사고 싶어 하셨다.
*
주말 내내 책을 읽으신 시어머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들의 이야기, 며느리의 글이라는 걸 빼고 읽어도 재미있더라.”
이야기하시는데 토끼눈이 되도록 우신 눈치였다.
어디가 눈물의 포인트일까, 궁금해져서 친정엄마에게도 전화해 물어봤다.
“엄마, 내 책 읽으면서 울었어?”
그 질문에, 엄마는 울먹이며 말했다.
“어떻게 안 울겠니.
2장을 넘기고, 그때부터는 울어서 글을 못 읽었지.
아무 일 없이 신바람 나게 사는 줄 알았는데, 소심한 성격에 반지를 팔려고 길거리에서 서성이던 모습은상상만 해도 가슴이 무너지더라. 해인이가 일하는 모습은 또 어떻고... 그래도 발로 차주고 싶은 등짝이야기를 할 때에는 소리 내어 웃었어."
아... 정말 자식과 부모란, 서로에게 눈물의 포인트이다.
신파는 별로인데, 내 책은 가족들에게 뜻밖의 신파를 안겨주었다.
나를 응원해 주고 지지해 주는 다정한 마음들, 그 마음들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다는 것.
감사합니다. 모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