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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인 출판사, 나 홀로 대표>

6화. 첫 책을 500부 찍은 소심한 출판인입니다.

by 릴라


당연히 풍산 책방에서는 연락이 오지 않았다.
어렵게 이메일 주소를 찾아 보냈는데, 확인은 며칠 뒤였고, 오래 기다려도 답장은 오지 않았다.

문어르신... 읽씹이라니요. 읽씹이라니요...
물론 얼마나 이메일과 전화를 많이 받으시겠는가, 이해는 한다.
하지만 그동안 내 마음속에 쌓은 이미지가 있으니, 괜히 속으로 조금 궁시렁거렸다.

게다가 풍산 책방은 독립 서적을 다루는 서점이 아니라서, 개인이나 독립 출판물과의 거래는 어렵겠지, 어느 정도 각오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건, 김해인 씨의 소원이니까 !
이메일을 보완하고, 고치고, 직접 찾아가고,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포기하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으며 오랜만에 마음속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 나는 일을 빠르게 처리하는 사람은 아니고, 영민한 사람도 아니지만 느릿느릿 꾸준하게 해 나가는 장점을 가졌다.

내가 꼭 한번 해볼게, 김해인 씨, 나 믿지?



인쇄소에서 책을 받아온 다음 날부터 입고 메일을 쓰기 시작했다.
세상 물정을 모르는 나는 그저 메일만 보내면 책이 어디든 착착 꽂힐 거라고 생각했다.

이후북스, 스토리지앤필름, 내가 가장 사랑하는 제주도의 소심한 책방, 그리고 지난겨울 기록과 산책 친구들과 북토크를 나눴던 당신의 강릉까지. 내가 좋아하는 곳들엔 당연히 내 책이 들어갈 줄 알았다.

하지만 아무 데서도 연락이 없었다. 삼일이 흘렀다.
초조해졌다.
책을 어쩌지, 자다가도 한숨이 나왔다.
'나는 손도 작고, 뭐든 조금씩 하는 성격인데… 어쩌자고 책을 500부나 뽑았을까.'

그러다 첫 메일이 왔다.
스토리지앤북스의 거절 메일. 너무 단호해서, 더더욱 소심해졌다.

그리고 몇 시간 뒤, 이후북스에서 연락이 왔다. 우선 다섯 권만 입고해 보자는 이야기.
믿고 있던 ‘당신의 강릉’은 여전히 읽씹. 김민섭 작가님… 거절 메일이라도 주세요. 제발요.


이후북스로 책을 들고 갔다.
망원동의 이 조그만 서점은 내게 ‘독립 서적’이라는 걸 처음 알려준 곳이다.
내 책이 세상에 나오는 마지막 단계도 이후북스와 함께했다. 그래서 책 세계에서 나에게는 친정 같은 존재다.

책을 받자마자 인스타그램 피드에 단독으로 올려주셨고, 스마트스토어에도 바로 올라갔다.

내 책이 정말 모르는 누군가에게도 팔릴 수 있을까? 혹시나 악성재고가 되는 건 아닐까. 서점에 책을 두고 돌아오는 길에 생각이 많아졌다.

그리고 다음 날, 열 권 재입고 메일이 왔다. 신나서 홍대 가는 길에 들르려고 열 권을 챙기고 있는데 이번에는 메일이 아닌 급한 문자가 왔다.
<열 권을 더해서 총 스무 권 부탁드립니다.>

이런 일이 있다고? 조금 얼떨떨했다.
스무 권을 두고 돌아온 다음 날, 이번엔 40권 추가 입고 요청이 왔다. 거짓말 같았다.

누가 놀리는 건가? 한 사람이 다 사들인 건가?
내가 아는 사람들은 이미 다 내 손에서 책을 받았는데, 대체 누가 내 책을 사는 걸까?

마침 망원동에 갈 일이 있어서 직접 들고 가기로 했다.
책을 포장하고, 캐리어에 꾹꾹 눌러 넣으면서도 기분이 묘했다.


정말 누가, 내 책을 사고 있는 걸까?

그 궁금함도 잠시. 내 책에 아주 심각한 오타가 실린 채 전국으로 퍼지고 있다는 사실에, 얼굴이 화끈거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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