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린다. 쏴아아, 장마가 시작됐다. 나는 조명도 켜지 않은 거실에서 우두커니 컴퓨터 화면의 불빛에 의존하여 글을 쓴다. 모니터 위에 부착된 카메라가 나를 감시한다. 마치 취조과정을 주시하는 cctv처럼.
여기는 제주도다. 제주도 하면 낭만적인 섬의 이미지가 그려지겠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아니다. 내게는 우울한 섬이다. 지금 내리는 비도 그렇고 우중충한 날씨도 빛이 내리지 않는 음침한 숲도.
하지만 좋은 것이 있다. 마음은 가볍고 밝아졌다는 것. 다행스러운 일이다. 조바심 많고 경계심이 심한 내게는, 빠르고 편리하고 계획적인 생활에 적응된 직장인이었던 내게는 매우 낯설었다. 처음에는.
동백동산 지금으로부터 13년 전이다. 2010년 5월 6일. 아내와 아이들은 이미 하루 전날에 제주도에 도착했다. 그때 나를 태운 배는 서해대교를 통과하여 태안반도 어디쯤을 천천히 항해하고 있었다. 차와 함께. 지금도 잊히지 않는 인상적인 장면은 서해 대교 밑을 통과하던 때다. 바다라기보다 커다란 강을 통과하듯 배는 대교 밑을 유유자적 미끄러져갔다.
내가 탄 배가 세월호였다. 그 끔찍한 세월호 사고는 4년 뒤에 일어났지만, 지인들에게 말하면 약간의 충격을 받는다. 4년 후 참사를 당한 안산고 아이들이 타고 내려오던 그 배를 기다리고 있었던 건 제주도의 오현고 학생들이었는데 이 얘기를 하면 제주도 학생들이 더 충격을 받는다. 지금까지.
송악산 윤슬 나는 서울에서 떠나오면서 많은 것을 잊었다. 정확히 말하면 기억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도 대부분 그때의 사람들과 연락을 안 한다. 철저하게. 최근에야 문자로 연락을 주고받는다. 왜 그랬을까?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인데 나는 왜 외면하고 싶었을까? 그리고 지금도 생각나는 S강사. 어딘지 늘 우울한 그가 아직도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제주도에 내려와서 얼마 지나지 않아 길게 통화한 게 거의 전부지만.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아마 둘 다 그렇게 얘기하고 있었다. 나는 나대로 그는 그대로 나는 그가 그는 내가 걱정이었던 거다.
돌담 그늘 언젠가 제주도에서 만난 L 선배는 "차라리 외국으로 가지, 여기 내려올 용기면" 하던 말이 생각난다. 아마 외국으로 갔으면 시인은 영영 못됐을 거다. "바다를 건넜지, 괸당문화에, 같은 나라인데 여긴 말만 통하는 외국이야"라는 선배의 말에 나는 피식 웃었다. 맞는 말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해서다. 무뚝뚝한 도민들은 처음 본 이방인에게는 눈길이 매우 날카로워 잘못 오해할 수도 있었기에. 하지만 서울에서의 상냥한 인사말이 사라진 지금의 나도 할 말은 없다.
본태 박물관 연못 어쨌든 나는 시인이 되었고 제주도에서 산다. 성격상 아직도 도민들과 잘 어울리지는 못하지만 아내는 아니다. 그렇게 서울로 가자던 성화도 이제는 거의 잦아들었고 그녀는 도민 속에 많이 동화됐다. 역시 그녀는 성격이 좋다. 나는 그럴 시간에 시간 내어 해변을 걷고 발품 들어 산책을 즐긴다. 자연이 좋은 것은 알았지만 몸소 체험하는 자연은 생각과는 매우 달랐다. 자연은 친절하지 않았고 사람을 간섭하지도 않았다. 자연은 철저하게 자연스러운 나를 상대했다. 대도시에서의 생활과는 모든 것이 반대였다. 자연은 가까이 다가갈수록 나의 내면의 상처를 치유해 줬고 그럴수록 내 정신은 점점 건강해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