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시간 주권을 되찾다

'나'는 시인입니다

by 모루

갑자기 연락이 뜸했던 선배에게서 전화가 왔다. 인터넷상에서 검색하다가 보니 네 이름이 있다고. 네 이름이 특이하여 확인해 보니 네가 맞다고. 자기가 아는 사람 중에 시인이 된 사람은 너 하나라며 축하한다고. 그리고 네 시집은 꼭 사서 읽어 보겠다며.

퇴사 후 나는 개인 시집을 냈다. 무려 13년이란 시간이 흐른 뒤였다. 출간하면서 가족들 이외에 시인협회나 주변 지인들에는 알리지 않았다. 유명시인들은 출판사와 계약하면 출판사가 홍보를 대신해 주거나, 서점에서 독자들을 초대하여 출판기념회를 주최하는 등 책 잔치를 벌인다. 다른 방법은 본인이 300만 원에서 500만 원 정도 비용을 들여서 자비출판 형식으로 출판사와 계약하여 책을 만들고 출판사에서는 홍보를 대행하여 서점에 공급하는 방식이다. 작가에게 할당된 재고의 책들은 지인들에게 보내져 개인 시집을 홍보하는 것이다.

나는 이 두 번째 자비출판은 예전부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작가가 공을 들여 쓴 시를 무료로 지인들에게 배포하는 것은 최악수 중에 하나라고 판단했다. 때문에 출판사에서 출간 제의를 받아야 한다는 고집이 있었다. 몇몇 뜻깊은 지인들에게 자필 서명 책을 선물하는 것은 예의일 수 있겠으나, 작가의 노력을 고려하여 모든 독자들은 책을 사서 읽어야 한다고 본다. 소설이나 에세이 출간에 특별한 지인들과 독자들이 모여서 오히려 출간 기념회를 열고 책을 사주지 않는가.

시집: 바람의 노래

개인시집은 나에게는 꽤나 뜻깊은 일이었다. 드디어 작가로서 발을 뗀 순간이고, 수년 동안 써 놓은 시들이 세상이 알려지게 되는 첫 발자국이기 때문이다. 최근에 쓴 시들을 간추려서 네 파트로 나누니 73편의 시가 완성되었다. 이미 써놓은 시들은 삼백 편 정도 되었지만, 주제에 맞는 시를 간추리는 작업이라 고민이 많이 되는 순간이었다. 모든 시들이 다 내 자식같이 보였지만, 편집이라는 것은 주제에 맞지 않으면 과감하게 제거하는 것이라 판단했다. 마치 집안 정리란 빼기에 있듯이.

pod 방식은 주문자공급방식으로 책의 재고를 없애는 장점이 있다. 또한 비용도 전혀 들지 않았다. 모든 작가들은 출판 후에 집안에 쌓이는 책의 재고로 골머리 아파본 적이 있을 것이다. 책이 잘 팔려 이런 걱정을 안 하는 일부 인기작가를 빼고는.

주문자 공급방식의 내 책은 인터넷상에서 주문하면 일주일 이상 걸리는 단점도 있다. 하지만 재고는 늘 제로이다. 제작도 온전히 작가가 책임지는 것이다. 주문제작과 인터넷상의 정보는 교보문고 측에서 담당한다. 중요한 것은 내 책이 인터넷상에서 누구나 주문하여 살 수 있다는 점이다.

바닷가에서

책의 이름은 '바람의 노래'로 정했다. 바람처럼 투명하게 읽는 이의 가슴에 통과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지금은 과감하게 인스타나 블로그를 통해 책 홍보도 한다. 책의 홍보는 온전히 나에게만 달려 있으니까.

시간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얘기다. 그래서 내 삶은 내가 주도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시간 주권은 내게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시스템을 탓해봤자 내 손해다. 다른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작가라면, 무언가에 도전하는 사람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든 다른 사람에게 휘둘리거나 다른 이의 눈치 보면 안 된다. 정말로 자기 인생의 남은 시간이 얼마 안 되기에.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주체는 사람이어야 하고, 내가 일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모든 순간 선택은 늘 나에게 달려있었지, 누가 나를 대신해서 살아주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나로서 다시 태어나야 한다. 내가 시인으로 다른 길을 선택한 것같이.

지금도 쑥스럽지만 소극적인 태도를 바꾸어 처음 만나는 사람을 만나면 이렇게 말한다


"'나'는 시인입니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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