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시인입니다
나는 고민에 빠졌다. 말수가 줄어든 나를 보며 지역국의 강사들은 걱정했다. 전일강사들은 더 불안해했을 것이다. 나는 강사들이 없는 때를 택하여 전일강사들을 차례로 불러서 일대일 면담을 했다. 예전에 강사들 모집광고를 보고 면접을 본 27세의 면접자에게 했던 말이 생각났다. 그는 공무원 시험에 두 번 낙방을 봐서 매우 실망해 있었는데, 돈이나 벌어야겠다고 생각했는지 강남지역 강사를 지원하게 되었다. 나는 이력서를 보며 너무 아쉬웠다. 물어보니 한 문제정도로 떨어졌다는 얘기였다. 그래서 말했다. 오늘 시간이 되면 사무실에 남아서 강사들과 얘기하며 지원한 회사를 본인이 감당할 수 있는지 아닌지 판단해 보라고. 그리고 다시 한번 꿈을 향해 공무원시험 보는 것을 권유했다. 내가 보기엔 여기서 포기하면 안 된다며. 사람은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하지 않겠냐며. 내 예상대로 오후 한 나절 사무실에 앉아 있던 그는 주변에 있는 강사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깊은 생각에 잠겼고 사무실을 떠났다. 그리고 문자가 왔다. 고맙다고, 다시 한번 도전해 보겠다며.
나는 전일강사에게 그 얘기를 들려주었다. S 강사 역시 공무원 시험 낙방 후 꿈을 접고 회사에 입사했고 그는 아직도 그것을 후회하고 있었으니까. P 전일강사는 야무지고 욕심이 보여서 나름 잘 헤쳐나갈 거라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고 권유했다.
그리고 모든 강사들에게 국장이 꼭 전할 말이 있다며 회식 약속을 잡았다.
C 부장의 눈빛은 흔들리고 있었다. 그 역시 본인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부진한 사업을 이어나가기에 부담스러웠으리라. 그러나 사업의 방향성이 올바르지 못해서 나는 따를 수 없었다. 그 스스로 비정규직에서 출발하여 이 자리까지 올라왔으니까 더욱더. 나는 강사들의 처우관계에 관해 면담했다. 지역국의 상황을 낱낱이 보고했다. 불투명한 미래지만 낙관적일 수 있다고 말했던 예전과는 다르게 암울한 소식을 전달했다. 교육사업의 핵심은 가르치는 강사인데 매우 힘들어한다고 수수료도 그렇고 강사들 마인드도 바닥이 드러나 아주 지쳐있다고.
강사들이 즐거워야 힘이 나고 까다로운 회원모들이 자연스럽게 감동을 받는다고. 그러나 지친 강사들에게는 늘 휴회가 많이 발생한다고. C 부장의 눈은 점점 불타오르고 있었지만 예전과는 다른 무던한 나의 말투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몰라 되려 물러서서 관망하고 있었다. 그 역시 사업의 성과가 정체되어 하향곡선으로 치달리고 있었기에, 가장 핵심 지역인 강남이 흔들리면 다른 지역국에 큰 영향이 갈까 봐 그래도 잘해 보자며 나를 어르고 계속적으로 달랬다.
교육팀에서는 일을 하는 내내 고개를 빠끔 들어 이쪽의 심각한 상황을 파악하려고 애썼고 흔들림 없는 나지막한 목소리에 뭔가가 잘못 돌아가고 있음을 감지하고 있었다.
나는 모든 강사들 앞에서 사직서를 제출하였다고 말했다. 강사들은 그동안의 나의 행동을 통해 예상하고 있었다고 말했지만 그래도 많이 놀란 눈치였다. 전일강사들 역시. 그리고 정규직을 대표해서 사과했다. 비정규직과 정규직이란 이름으로 분란을 일으킨 본사의 정책이 잘못되었음 또한 시인했다. 이제는 계급장을 떼어놓고 말하자고 권유했고 우리는 하나가 되었다. 회사 동료란 이름으로. 무엇인가를 배우려고 들어왔던 강사도, 교육스킬을 연마하려 했던 강사도,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승진을 꿈꾸던 전일강사도 다 같은 동료였고 한 팀이었다. 회사가 나누려고 했던 분열은 우리에게는 통하지 않았고, 우리는 우리의 소중한 가치를 지켜나가자고 약속했다. 그리고 환송을 받으며 미련 없이 그곳을 떠났다.
나는 지금 시인이 되었다. 시인이 되었는데 시인이란 게 그전과 별반 다를 게 없다. 등단이란 것을 한 것 외에는 그냥 시를 쓰는 사람이다. 나는 적어도 하루에 한 시간 이상은 시를 쓰고 나머지 시간은 대부분 구상에 잠긴다. 일을 하면서도 잠깐씩 떠오르는 시상을 적는다. 하루종일 시에 빠져있는 것이다. 어디를 가든 시와 연관되어 숨을 쉰다. 시인이기 이전과 비교하면 달라진 것은 부담감뿐이다. 시인이니까 작품이 달라야 한다고 스스로 여기는 부담감. 마치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누는 이분법처럼 나 스스로 생각해도 웃기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시인인데, 같이 호흡하고 함께 느끼는, 생각하고 토론하는 존재들인데 그런 구분으로 시인과 비시인을 나눈다는 것이 웃프다.
나는 개인 시집을 한 권 발행하고, 동인지로는 몇 권의 책을 내며 이제는 글도 쓴다. 나는 다시 시인으로 사는 것이다. 정규직도 비정규직도 아닌 그냥 평범한 시인으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