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시를 쓰면서 일대일 코칭에 대한 강한 욕구를 가지고 있었다. 내 시가 잘 된 것인지 고쳐야 하는 부분이 무엇인지 지적받고 싶었고 내가 쓰고자 하는 방향이 맞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들로 복잡한 마음에 풀어내지 못한 숙제처럼 끙끙대고 있었다.
응축된 시를 쓴다는 것은 나열된 문장을 추출하여 깎고 다듬는 매우 고단한 작업이었다. 제주시에서 운영하는 교육센터에도 참여해 봤지만 실질적인 일대일 코칭보다는 일대 다수의 강의 형식이어서 실망하였고 내 갈증도 채워주지는 못했다. 지인의 소개로 서귀포 출신의 유명 시인의 문하로 들어가는 방법도 있었는데, 그것은 별로 내 스타일이 아니라서 내키지 않아 대중적인 시를 읽어가며, 비평가들에게는 호평된 시집들을 공부하며 내 시의 언어와 사상이 드러나는 나만의 시를 찾아내기 위해 몰입했다.
S 전일강사와 P 전일강사는 내 눈앞에서 잘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그들 나름의 생존 방식이었지도 모른다. 나는 오히려 가까워진 강사들과 회식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그때도 전일강사들 얼굴은 본 적이 없었다. 커피를 마시며 밥을 먹으며 강사들의 진면목을 발견하게 되었다. 다 같은 동료라는 것. 그리고 미래의 강남지역국을 걱정하는 모습에서 나는 강사수수료 인하와 전일강사 제도로 분란을 일으킨 C 부장을 질책했다.
또한 C 부장에 의해 판단이 흐려진 사장에게도 크게 실망했다. S대 문학박사 출신의 사장도 본사의 개발팀을 제외하곤 본인이 잘 알지 못하는 사업 분야로 다른 전문가들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었겠지만, 밖으로는 판매처인 지역 지사장들에게 휘둘리고, 안으로는 교육사업본부에 조종당하며 두 개의 조직이 시너지 효과를 내기보다는 서로 시기질투하며 못 잡아먹으려고 안달 난 사자처럼 분열되는 책임은 분명 사장의 책임이었다.
사업 초기에는 개발팀에서는 책을 잘 만들어 놓으면 판매는 지사장들이 몫이었는데, 사장이 교육사업본부를 만들어 놓고는 C 부장의 달콤한 사업확장의 넘어간 사장을 본사의 개발팀 직원들은 사장을 보호해야겠다고 생각하며 C 부장을 더 멸시하듯 바라봤다.
나는 이러한 분란으로부터 강남지역국을 지켜야 했는데 점점 꽉 쥐었던 손을 놓기 시작했다. 더 이상 국장으로서 강사들에게 미래를 제시할 자신이 없었다. 강사들의 미래란 그들의 페이가 보장받는 시스템이었는데 이제는 미래가 불투명한 교육사업이 되어 버렸다. 그 무렵 P 강사를 통해 우연히 옛 구리 지역을 맡았던 K 팀장 전화번호를 알게 되었고, 우리는 만나게 되었다.
C 부장이 이야기하듯이 K 팀장은 야비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의 얘기를 들어보자면 초기의 본사 분위기는 화기애애했고 개발팀에서 교재를 만들면 교육사업본부에서는 시범 수업을 통해 문제점을 지적하고 보완하며 수업교재 지도안을 만들어 강사에게 재교육하여 본사의 취지에 맞는 강사들을 양성했다고 했다.
또한 본사에서 강사들에 대한 예우도 좋았고 거기에 맞는 페이도 보장받아서 강사들 또한 열심히 일했다고 했다. 그런데 모든 분란의 시작은 교육사업본부장으로 C 부장이 영입되면서 사장과의 돈독한 관계였던 지사장들을 소원하게 만들었고, C 부장 역시 자신의 입지를 강화시키려 일반 강사들의 개발팀 출입을 금지시켰다. 점점 개발팀과 벽을 쌓아 개발팀을 통해 강사들의 의견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사장의 눈을 가리는 방법으로 강사들의 자긍심에 상처를 줬다고 했다. 이로써 분명해진 것은 교육사업본부가 폐쇄적으로 바뀌면서 교육의 질과 사업의 유연성이 떨어지게 되었고 개발팀에서는 이상한 집단으로 보이게 만들어 놓았으며, 여기에 강사들의 수수료를 재조정하여 당시에 K 팀장이 C 부장과 만나 자신의 이야기를 했을 뿐이라고 했다.
나는 K 팀장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반론할 수 없는 현실에 더더욱 자괴감이 들었다. 교육팀의 Y 매니저에게 대충 초기 본사의 상황을 듣곤 했는데, Y 매니저 역시 K 팀장과 비슷한 이야기를 했었다. 그때 우리 모두가 열심히 일했다고. 개발팀, 교육팀, 강사들 구분하지 않고 모두 한 팀이었으며 회사 다닐 맛이 났다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