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마크 그레이엄 , 제임스 멀둔 , 캘럼 캔트
역자: 김두완
출판사: 흐름출판
출판일: 2025년 5월 19일
상당히 흥미로운 책이었습니다.
사실 그동안 AI의 위험성에 대한 주제는 이제 와서는 너무 흔한(?)주제였습니다. AI와 관련하여 최근에 쏟아져 나오고 있는 여러 책들이나, 신문기사 등에서도 항상 나오는 이야깃거리였습니다. 다만 그동안의 위험성은 언제나 먼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같은 거였습니다.
언젠가 우리의 일자리를 위협하지 않을까?
언젠가 인간관계를 위협하지 않을까?
언젠가 인류마저 말살하지 않을까?
그러나 이 책은 미래가 아닌 현시점에서, 이미 AI가 인류에게 끼치고 있는 피해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웠습니다. 즉 언젠가 AI에 의해 이런 직군이 사라질 것이라는 예상이 아닌, 이미 인공지능으로 이해 피해를 보고 있는 노동자, 개발자, 예술가, 투자자 등등의 직장인들을 매 챕터마다 인터뷰하며 사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사실 저는 AI개발자로서 현업에서 일하고 있기에 잘 몰랐는데, 첫 장에서 소개하고 있는 흔히 레이블러라고 하는 데이터 주석 작업자들의 환경이 이토록 열악한지는 몰랐습니다. 그 외에도 저와 같은 AI 엔지니어의 이야기를 보며 공감도 했고, 스타트업 투자자(흔히 말하는 VC), 예술가 등의 이야기들도 꽤 흥미로웠습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건, 이 책의 결론은 해답을 결국 노동운동으로써 풀고 있는데, 과연 이것만이 정답인가? 애초에 정답이 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충격을 받은 내용이었습니다. 앞서 말했지만 처음엔 책 제목만 읽고서는 그냥 인공지능의 미래 위험성을 경고하는 책인 줄 알았는데, 이미 현재 노동자들이 인공지능 개발 과정에서 착취되고 있는 사례 소개였거든요. 데이터 주석 작업자들이란, 인공지능의 학습을 위해서 데이터의 정답지, 혹은 주석을 다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다만 저는 그동안 의료인공지능 업계에서 6년간 일했었고, 지금은 스마트제조 분야에서 인공지능 개발을 하고 있기에 이러한 데이터 주석 작업자들은 현업에 계신 분들로 보통은 고객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즉 의료 인공지능을 개발할 때는 병원에 있는 의사분들, 스마트제조에서는 공장의 품질관리원이나 혹은 인공지능 개발을 의뢰한 발주처가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따라서 데이터 주석 작업이 귀찮고 고된 일은 맞으나, 보통은 고객들이기에 인공지능 개발할 때 데이터 정제 및 주석을 다는 일의 중요함을 설득하고 부탁드리는 상항이었죠.
그런데 이 책에서 소개된 데이터 주석 작업자들은 거대언어모델을 만드는 빅테크에서 맡긴 하청업체에서 소속된 개발도상국(소개된 분은 우간다)의 노동자분들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제가 알던 데이터 주석 작업자 분들과 다르게 항상 단기계약에 시간단위로 근무시간을 체크하며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서 주석만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놀랐습니다.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이 작업은 제가 연구개발 중인 영상 인공지능에서는 사진에서 특정 위치를 표시하는 업무라서 매우 단순 작업이고, 어찌 보면 커리어 성장을 느낄 수 없는 지루한 노동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보통 의사나 품질관리원 분들이 현업을 하고 남는 시간에 하는 정도였는데, 이걸 전업으로 그것도 초과근무까지 하며 작업하고 있다는 점에서 놀랐습니다.
이 주제는 요즘에는 본격적으로 부각되고 있는 이슈입니다. 이제는 일반인들도 인공지능을 개발 및 운영하려면, 거대한 데이터센터가 필요하고, 이곳에서 어마어마한 양의 전력을 끌어간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때문에 마이크로소프트의 경우 해저에 데이터센터를 설치하기도 하고, 스타트업 중에서 수영장 아래에 서버실을 짓는 것을 사업 아이템으로 가진 곳도 들었습니다.
이 책에서도 아이슬란드에서 일하는 기술자의 인터뷰 사례를 소개합니다. 아이슬란드는 아시다시피 북극 가까이 위치하기에 기온이 평균적으로 많이 낮아서 자연 냉각 시스템을 활용할 수 있는 것이 큰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실제로 데이터를 학습하고 운영하는 곳은 빅테크 기업들이 존재하는 미국이나, 혹은 인공지능 서비스를 많이 사용하는 곳은 아무래도 인구가 많고 기업도 많이 입주한 각 나라의 대도시들이기에, 여기까지 정보를 전송하기 위해 해저 케이블이 중요함도 설명합니다. 그리고 바로 이 해저 케이블로 인해 과거의 제국주의 국가들이 다시 구 식민지 국가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현실도 같이 설명해서 깨달은 점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돌아와서 저는 여전히 결국은 인공지능이 인류를 위해서, 그것이 인간의 노동을 줄이던 여러 산업 현장에서 효율성을 증대시키던, 전에 없던 과학기술을 발명하여 환경오염을 줄이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 생각합니다. 다만 분명히 지금은 빅테크 기업들이 마치 군비경쟁하듯이 인공지능 개발에 모든 걸 쏟아붓는 상황에서, 이러한 과열된 경쟁이 환경을 오히려 망치고 있음도 분명해 보입니다.
사실 이 발제에 대한 답은 조금 고민이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일상에서도 정치에 대한 의견을 내는 것은 조심스러워하는데(가족들이나 정말 친한 친구들만 있을 때 외에는), 사실 이 내용은 기술에 대한 내용보다는 정치에 관한 내용입니다. 물론 노동운동 그 자체를 폄하하거나 반대로 지나치게 신성시하려는 건 아닙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지금의 빅테크 기업들 중심으로 인공지능을 개발하면서 생기는 인간의 일자리 감소, 환경오염의 문제 등을 해결하는 데 있어서 해결책으로 노동운동만을 이야기하고 있긴 합니다. 물론 공감 가는 점들도 있습니다. 글로벌 기업들이 본인들이 편해서 하청업체들을 통해 데이터 주석을 모으는 일을 하면서 그 노동자들의 지나친 감시와 부당한 처우(1개월마다 단기계약으로만 돌린다는 점이 놀랍긴 하더라고요...)를 본인들의 책임이 아닌 것처럼 구는 것이 옳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다른 사례로 인공지능 생성을 통해 특정 성우의 보이스를 무단으로 쓰거나, 특정 시나리오 작가의 스타일을 학습시킨 후에 해당 작가를 자르고, 인공지능을 통해 그 작가의 스타일로 또 다른 히트작들을 만들어 돈을 보는 영화사 같은 경우에는 문제가 클 것으로 봅니다.
다만 부당한 착취와 인권을 지키는 것은 당연하지만, 저는 인공지능을 통해 직군이 바뀌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러다이트 운동이 성공하지 못했듯이 인공지능을 통해 뺏기는 일자리를 사회운동을 통해 법으로 막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특정 국가에서 성공한다면 그 국가면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질 테니까요. 다만 기계가 개발되었다고 해서 기술자들이 사라진 것이 아니고, 컴퓨터와 워드프로세서의 개발로 모든 사무직들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그 일 하는 방식이 바뀐 것처럼 개인적으로는 인공지능을 빨리 받아들이고 그것을 사용하여 더 많은 일을(노동시간을 늘린다는 뜻이 아니라, 생산성을 올린다는 뜻) 하는 것이 맞지 않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저도 정답은 모릅니다. 그리고 AI가 전례없이 세상을 바꾸고 있고, 최근에는 이것이 우리의 일자리에게도 영향을 주는 것은 분명합니다. 막상 제가 AI 때문에 일자리를 뺏기거나 부당한 처우를 받게 되면 저 또한 분노할테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AI는 이미 시작된 흐름이기에 무조건 규제보다는 좀더 다각적으로 멀리보면서 대응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