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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풀비소 Aug 07. 2024

[에세이] 나의 첫 알바는 즉석 떡볶이집

떡볶이를 좋아하는 거랑 떡볶이 가게에서 일하는 건 다르다.

어렵고도 어려운, ‘자기소개’ 

 자기소개를 하라고 했을 때 생각에 잠기거나 할 말을 잃는 사람들에게 언제나 동질감을 느껴왔다. 자기소개에서 무엇을 말하면 좋을지, 직업이나 하는 일을 말해야 하나? 하는 일이란 그걸 해서 돈을 버는 일을 말하나? 돈을 못 벌어도 애정을 가진 일을 말해야 하나? 내가 뭘 좋아하는지 말하면 되려나? 그런데 그건 좀 뜬금없지 않을까? 책 읽는 걸 좋아하거나 영화 보는 걸 좋아한다는 말은 너무 뻔하지 않나? 

이런 생각들이 빠르게 머릿속을 한바탕 휩쓸었다가 빠져나간다. 나를 나답게 만드는 게 무엇인지마저 고민하게 되어버린다. 

 결국, 나는 나에게 일어난 작고 많은 일들이 쌓이고 쌓인 결과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를 생각하게 만든 일화 몇 가지를 소개 해보면 어떨까, 그편이 몇 마디 말로 설명해 버리는 것보다 덜 부끄럽지 않을까 싶다. 




'떡볶이를 좋아하는 거랑 떡볶이 가게에서 일하는 건 다르다' 

 고등학생 시절, 나는 열렬히 떡볶이를 사랑했다. 시험이 끝났을 때도,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도, 즐거운 일이 있을 때도 친구들과 즉석 떡볶이집으로 달려갔다. 떡볶이는 그야말로 나의 희로애락을 함께하는 동지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인생 첫 아르바이트를 구해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도 떡볶이집을 선택했고, 떡볶이와 함께라면 즐거우리라 생각했다. 

 그 생각이 깨진 건 즉석 떡볶이 집에 출근한지 채 일주일도 안 돼서였다. 번화가의 즉석 떡볶이집에서 서빙 일을 시작하게 된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무엇, 또는 어딘가를 좋아하는 것과 거기서 일하는 것은 아주 다른 일이란 걸 뼈저리게 깨달았다. 국물 떡볶이가 찰랑이도록 가득 담긴 무거운 즉석 떡볶이 냄비를 서빙하는 일 그 자체만으로도 스트레스였지만, 그 밖에도 스트레스 받을 일은 잔뜩 있었다. 사람에게, 손님에게 받는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았으며 좋은 고용주와 그렇지 않은 고용주의 차이를 홀로 가늠해 보는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어쩐지 '근성 없는 젊은이'가 되고 싶지 않았던 19살의 나는 6개월을 그곳에서 버텼다.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에게 말을 걸 수 있다면 스스로를 먼저 보살피라고 했을텐데. 하지만 어떤 일은 직접 겪어보아야만 하나보다. 그리고 6개월을 버티고 그만둔 이후로 떡볶이 냄새만 맡아도 스트레스를 받았다. 떡볶이를 향한 사랑을 회복하는 데에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엄밀히 따지자면 나는 떡볶이를 싫어하지 않아도 되었다. 떡볶이가 아닌 떡볶이를 매개로 찾아온 것들에 스트레스를 받은 것이었으니까. 떡볶이는 죄가 없다. 하지만 나는 애꿎은 떡볶이를 향해 눈을 흘겼다. 그편이 간편했으니까. 하지만 인생의 큰 즐거움이던 것을 싫어한다고 오해하는 것은 스스로에게 큰 손해였다. 

떡볶이를 좋아하면서 떡볶이 가게에서 일하는 게 잘 맞을 수도 있지만, 안 맞았다고 해서 떡볶이를 싫어하지 않아도 된다. 직접 자신을 위해 재료를 고르고 떡볶이를 요리할 수도 있다. 전국의 떡볶이 맛집을 돌아다니며 리뷰를 작성할 수도 있다. 떡볶이를 사랑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니까.  



2023년의 마지막 일기에서 발견한 나침반 같은 문장 

 올해 자유의 시간이 왔음에 즐겁다가도 어딘가에 소속되지 않은 나를 긍정하기 어려운 때가 종종 찾아왔다. 나로 존재할 수 있을 것 같은 곳에 성급하게 들어갔다가 생각과 다른 현실을 마주하며 실전 경험치를 쌓기도 했다. 

 해보고 싶었던 것을 해보고, 좋아하던 것들을 다시 좋아해 보면 어디든 가 닿겠지. 그런 생각으로 영화제에 가고 평소 좋아하던 작품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스터디에 갔다. 세상 또는 스스로에 대한 사랑을 회복하려면 그저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나를 담가버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보면 뭐라도 하고 싶어지고, 나아가고 싶은 방향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바깥 외출을 별로 안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바깥에서 만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며 실은 내게 무엇보다 필요했던 것이 사람들과 상호작용을 하며 서로의 세계를 만나보는 것이란 걸 알게 됐다.


차오른 에너지를 어느 방향으로 풀어볼까, 작년의 나는 다이어리의 마지막에 무엇을 적었는지 열어봤다.   

 
‘내가 누구인지는 다른 것에 얼마나 깊은 관심을 가지는지, 그걸로 얼마나 깊고 넓어질 수 있는지에 달려있다.’
  

 이 문장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직업이나 소속, 남들에게 보이는 이미지가 아무것도 아닌 것은 때때로 아니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내가 보는 나였다. 남들이 보기에 큰 회사에 다녀도, 내 안의 사랑이 메말라 버린다면 삶을 잘 살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바깥을 향해 관심을 가질 힘이 그다지 남아있지 않다면, 그래서 내 안에만 갇혀 있는 걸 나답게 사는 거라고 할 수 있을까? 


 내가 무얼 좋아하는지, 무얼 할 때 기쁜지,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나에게 힘을 주는 게 무엇인지 알고 있어야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 같다. 마음속 사랑을 알맞은 방식으로 실천할 때 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좋은 기회들이 찾아오고, 이윽고 자기 자신도 긍정하며 좋아할 수 있게 된다. 이게 내가 떡볶이에 대해, 아니 사랑을 바탕으로 한 나아감,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해 배운 것이다. 


 그리고 작년의 나와 지금의 내가 손을 잡고 길을 찾아 나선다. 내가 사랑할 것들과 나를 사랑할 것들을 찾아서. 그리고 그 사랑의 방식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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