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히사 마코토 감독의 드라마, <나는 죽어 버렸다!>
우리는 모두 살면서 매번 다른 방식으로 몇 번이나 피할 수 없는 상실과 이별을 겪는다. 죽음을 동반한 이별은 언제나 무겁고 두렵게 다가온다. 죽음 또한 모든 살아있는 존재가 피할 수 없기에.
귀신이라 불리는 존재는 한때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귀신 이야기는 살아있는 사람에게 항상 흥미로운 법이다. 때로는 공포스러운 존재로, 때로는 아련하고 쓸쓸한 존재로, 때로는 산 사람보다 더 ‘인간적’이다.
귀신이 더 생기 넘치는 코미디 호러 영화 <비틀쥬스>부터 도자기 빚는 장면으로 유명한 영화 <사랑과 영혼>, 지박령을 주인공으로 한 시적인 영화 <고스트 스토리>까지 우리는 무섭지 않은 귀신 이야기에 이미 익숙하다.
이번에는 저마다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품은 귀신들이 등장하는 드라마 <나는 죽어 버렸다!>를 소개하려 한다.
작품 바깥의 이야기: 나가히사 마코토 감독
나가히사 마코토 감독은 28분 단편 영화 <그래서 우리는 풀장에 금붕어를>이 선댄스 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을 받은 것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해당 작품은 유튜브에서 누구나 관람이 가능하도록 공개되었다.) 광고업계에서 커리어를 시작한 그의 트레이드마크는 키치하며 통통 튀는 연출이다. 비디오 게임의 문법이나 홈비디오 스타일의 핸드헬드 저화질 영상, 토크쇼 형식 등을 적극 차용하며 감각적인 영상을 선보인다. 나가히사 마코토 감독이 전하는 이야기에는 지루한 일상에서 느끼는 권태와 불안감, 상실과 슬픔, 애도를 독특한 방식으로 다루는 인물이 주로 등장한다.
그가 각본과 연출을 맡은 <나는 죽어 버렸다!> 역시 매회 잘 포장된 선물 상자를 열어보는 것 같다. 귀신 이야기지만 마냥 우울하지 않고 웃기기까지 하다. 하지만 한 회의 감상을 마칠 때마다 크레딧을 끝까지 보며 나온 대사들을 곱씹게 만든다. 그의 전작인 영화 <위 아 리틀 좀비>에서처럼 죽음이나 장례식, 상실처럼 슬픈 이야기를 다룰 때 오히려 웃음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귀신에게도 일상생활이 필요하니까요’
인기 없는 호스트 사쿠라다 카즈히코는 술에 취해 쓰레기 더미 위에 누워 있다가 차에 치여 어이없는 죽음을 맞이한다. 갑작스러운 죽음 중에 어이없지 않은 죽음이 어디 있겠냐마는.
이 상황이 낯설기만 한 그는 누워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불을 빌려달라고 말한다. 그런 카즈히코의 앞에 사람 좋아 보이는 유령 테츠로가 등장한다. 테츠로는 귀신에게도 일상생활이 필요하다며 카즈히코를 귀신들이 모여 사는 어느 낡은 목조 주택으로 안내한다.
주인공 카즈히코를 비롯하여 업무로 바쁜 간호사였던 사키, 곤란한 상황을 ‘와비사비’라는 말로 빠져나가는 에도 시대 다도 명인 센노 리큐, 항상 무표정인 갸루걸 마치코, 무명 스탠드업 코미디언이었던 테츠로가 성불을 염원하며 생활한다. 귀신과 생활이라니, 어쩐지 모순적이지만 일종의 리미널 스페이스(liminal space)를 통과하는 귀신들은 솔직하고 공감이 가는 모습이다.
성불하기 위해서는
자정이 되면 내세로 갈 수 있는 역의 개찰구가 열린다. 이때 Rin-ne(내세)라고 적힌 교통카드를 개찰구에 찍으면 내세로 갈 수 있다. 당연하게도 아무나 개찰구를 통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승에서 못다 한 일이나 미련이 남아있다면 카드를 찍어도 개찰구를 통과할 수 없다.
의기양양하게 바로 카드를 찍은 카즈히코 역시 통과하지 못한다. 오로지 지금만을 살며 지나간 일 따위 잊어버리는 그에게 과거의 못 다한 일을 찾는 건 쉽지 않다.
카즈히코를 비롯한 다른 유령들 역시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차근차근 자신의 내력을 밝히고 못 다한 일을 한다. 그 과정은 생전 트라우마의 치유와 회복, 인생의 오랜 의문을 해소하는 일로 채워진다.
귀신들이 공통으로 가진 인생의 오랜 의문은 바로 사랑이다.
각자의 사연을 가진 귀신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사랑이 무엇인지 정의 내렸을 때 성불할 수 있게 된다. 뭉뚱그려버린 ‘사랑’이 아니라, 아주 구체적이고도 다양한 사랑이다. 2화에서 던져진 ‘도대체 사랑이 뭐야?’라는 질문에 답하듯이 귀신들은 매회 각기 다른 방식으로 사랑을 되찾는다. 오랜 친구에게 차마 고백하지 못했던 마음을 전하고, 있는 줄 미처 몰랐던 깊은 애정을 알아차리기도 하고, 상대방을 존중하는 방식의 사랑을 배우기도 한다. 귀신끼리 연애도 한다.
귀신이 된 이후에 범성애자로 정체화한 센노 리큐나, 작중에서 구체적으로 정체화하지는 않았으나 무성애자 스펙트럼에 속하는 사키 등 뻔한 이성애적 사랑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사랑이 뭐냐고 물으신다면 보여드리는 게 인지상정
살면서 한 번도 사랑을 느껴본 적 없는 사키는 자신을 좋아해 주는 사람을 만나서 결혼하면 사랑을 알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키는 끝내 남편을 사랑하지 못했고, 남편은 바람을 피운다. 사키는 하나 있는 딸에게도 강렬한 사랑을 느낀 적은 없다고 생각한다.
성불을 바라는 사키는 바람을 피운 남편에게 복수하기 위해 다른 귀신들과 함께 폴터가이스트 현상을 일으킨다. 마치 평범한 사람들이 문을 삐걱거리고 물을 트는 것처럼 보이지만, 드라마 속 남편과 외도 상대에게는 무서운 귀신의 소행처럼 보인다.
이후 어린 딸에게 찾아간 사키는 들리지 않을 거란걸 알면서도 딸에게 사랑이 무엇인지 질문한다. 무언가 통한 것일까, 딸은 자기가 무엇보다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사키의 생전 흔적을 꺼내 보인다. 백 마디 말보다 더욱 확실한 딸의 사랑을 확인한 사키는 매 순간 강렬하고 헌신적인 것만이 사랑이 아님을 확인한다. 뜨거운 사랑만을 사랑이라 부르는 세상에서 지금껏 부정당했던 것 같은, 분명 자신 안에 존재하는 사랑을 긍정하게 된다.
생전 테츠로의 삶은 거짓으로 가득했다.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꾸리며 스탠드업 코미디언 활동을 하지만 본가의 가족들에게는 회사 생활을 한다고 말하거나, 여자 친구를 사귈 마음이 전혀 없음에도 여자 친구가 있다며 다음번에 소개해 주겠다고 한다. 테츠로의 마음은 어릴 적부터 친했고, 함께 스탠드업 코미디언 활동을 하는 토모에게 쏠려 있다.
테츠로는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진심을 표현했다가 소중한 사람을 잃지 않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 비인기 코미디언에 동성애자인 자신을 부정하는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 테츠로는 하필 토모에게 진심을 말하려고 마음을 먹은 날, 말이 꼬여 크게 당황하고 역시나 어이없게도 물에 빠져 죽는다.
성불하기 위해서는 가족과 토모에게 진실을 전해야 한다고 생각한 테츠로는 먼저 가족에게 전화로 자신이 게이임을 밝힌다. 그리고 토모의 스탠드업 코미디 공연이 열리는 공연장을 찾아간다. 분장실에서 자신에 대해 심한 말을 하는 걸 들어버린 테츠로는 크게 상처를 받지만, 이내 이어지는 대화 속에서 토모와의 관계를 회복한다. 사랑이 이뤄지지 않더라도 마음을 털어놓고 솔직한 대화를 나눈 테츠로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내세로 향하는 개찰구를 통과한다.
25년 전에 사망한 갸루걸 마치코는 생전 친구들 사이에서 무표정이 최대 장점이라고 인정받았다. 하지만 마치코는 눈치가 없다는 이유로 어느 순간 친구들 사이에서 왕따가 된다. 괴로움에 자살할지 고민하며 텅 빈 교실에 혼자 앉아 있던 마치코는 우연히 들어온 반 친구에게 이 사실을 털어놓는다. 마치코의 사연을 듣고 자신도 왜 사는지 모르겠다며 같이 죽어주겠다고 말하는 반 친구는 다름 아닌 생전의 카즈히코다.
다음날 마츠코는 자살하지만, 전학을 가서 이 사실을 까맣게 잊은 카즈히코는 계속 살아간다. 그로부터 25년 뒤, 죽은 이후에 카즈히코와 재회한 마츠코는 마음속에 미움이 가득하다. 자신의 죽음 이후에도 계속해서 살아가고, 거기에 더해 약속을 잊어버리기까지 한 카즈히코를 향한 미움이다.
이 지점에서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의 입장 차이를 보여주는 대목이 등장한다. 어떻게 잊어버릴 수 있냐며 화내는 마츠코에게 카즈히코는 산 사람은 잊어버려야지만 살아갈 수 있다고 답한다. 하지만 죽은 시점에서 시간이 멈춰버린 귀신은 도무지 잊을 수가 없다. 어쩌면 <나는 죽어 버렸다!>에서 말하는 귀신이란 트라우마나 상처에 짓눌려 시간이 멈춰버린 사람일 수도 있다. 망각은 사람의 큰 재주 중 하나라고 했던가.
물론, 카즈히코의 망각은 현실 도피적인 측면이 강하다. 마츠코와의 사후 재회는 카즈히코가 자신의 망각을 돌아보고 살면서 상실한 게 무엇인지 찾아가는 과정의 일부가 된다. 6화 ‘트라우마 놀이공원’에서 지박령이 되어 떠나가지 못하는 부모님과의 재회는 망각하는 것으로 괜찮아지려 애썼던 자신이 실은 괜찮지 않았음을 돌아보는 계기가 된다.
카즈히코는 귀신이 된 자신을 볼 수 없는 행인들에게 불을 빌려달라고 말하던 것처럼, 생전 자신을 제대로 봐 주지 않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원했다. 카즈히코는 망각하고 있었던 상실감과 이별을 다시 자각하고, 다른 귀신들과의 일상을 통해 누군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경험을 한다. 생전에 잘 느끼지 못했던 사랑을 사키에게 느끼기도 한다. 비록 일방향 사랑일지라도 외면하지 않고 자신의 마음을 똑바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상대에게 자신의 방식을 강요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쓰레기 같았다’라고 평하는 삶에 의미가 생긴다. 그리고 이는 내세를 향해 미련 없이, 후회 없이 갈 수 있는 조건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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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역사 속에서 귀신은 때로 사회적 소수자의 목소리를 대변해왔다. 귀신은 사회 속에서 부정당했던 자신의 모습과 사랑을 긍정하고 누구도 들어주지 않았던 자신의 이야기를 전한다. <나는 죽어 버렸다!>에 등장하는 귀신들, 그리고 산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다. 사랑을 회복하는 이들의 이야기는 생존을 위해 살면서 잊어버린건 없는지, 받아들여지지 못해서 체념한 내 모습은 무엇인지 질문을 던진다.
글에서 언급되지 않은 귀신과 살아있는 인물들도 흥미롭고 쓸쓸한 사연을 가졌으니, 직접 시청하며 가장 좋아하는 에피소드를 골라보는 것도 무더운 여름날의 즐거움이 될 수 있으리라.
자기 방식으로 사랑을 찾아가는 사랑스러운 귀신들을 보다 보면 도대체 신체가 없는 귀신들이 어떻게 메밀 소바를 먹고, 귤을 먹고, 스파이스 카레를 먹는지 정도는 눈 감아 주게 된다. 어쨌든 귀신도 사람이었으니까. 누가 알겠는가. 성불을 위해 인생을 돌아보며 고민하는 미래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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