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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보구 Aug 29. 2020

`시인 학교`에 가다

나는 의류업을 합니다 - 3

 총무를 통해 선생님이 문제를 내셨고 그 문제는 카톡으로 전해왔다. 이미지를 찾아서 쓰라는 문제였다. 문제를 잘못 이해한 나는 열심히 읽고 한번 또 읽었다. 그리고 정답이라고 생각한 것을 부지런히 적어서 카톡으로 보냈다. 예초에 잘못 인식된 상태에서 맞는 답을 찾을 수는 없는 법인데 질문이 요구하는 답이 아닌 내가 찾고 싶은 것을 찾은 것이다. 그러니까 질문의 의도가 이럴 것이다라는 내가 내린 결론에 미리 도달해 있는 상태에서 읽는 지문은 아무런 의심과 의문도 없었다. 오답은 그렇게 쉽게 나올 수 있다. 그리고 나는 확고하게 정답이라고 생각하며 안심하고 있었다. 아내를 만나기 전까지.


 친구들과 며칠간 여행을 다녀온 아내는 나보다 일찍 집에 들어와 있었다. 여독 때문에 피곤할 법도 한데 나를 보자 뭔가 할 말이 있는 사람처럼 눈이 반짝인다. 여행은 뒷맛을 남긴다. 같이 갔던 사람들과 즐겼던 감흥을 나누고 싶은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추억은 소환하는데 약간의 시간이 걸린다면 기억은 공간 이동이 금방 이루어진다. 특히 어제 일어난 일이라면 몸은 집에 있어도 머리는 어제 있던 장소로 순식간에 이동할 수 있다. 그만큼 빨리 이동하기에 그때의 흥분과 재미에 쉽게 빠지는 것 같다.


 이야기를 듣고 난 후 나는 이미지에 대해 물었다.

 " 말하자면 '이미지란 소재에 대한 시각적 인식과 그에 대한 느낌, 정보. 감성 등이 어우러진 것'을 의미하지. 나비를 생각하면 꽃처럼 예쁜 날개를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팔랑거리며 날아가는 나비의 율동을 연상하기도 하겠지 "
" 이처럼 나비에 대한 사람들의 이미지는 각각 다를 수도 있는 것이겠지."
 "이미지란 결국 인상, 심상으로 나타나는 것을 자신만의 느낌으로 표현하는 것이지. 우리나라 남자들에게 '어머니'하면 떠오르는 게 뭐겠어? 그것이 바로 이미지가 되겠지."

" 그래, 어머니 "
"어 그럼 나 잘못 썼는데" 하고 나는 자책하며 서둘러 (김선우)의 책을 찾고 있었다.


 이미지는 이런 것 인가 보다.
 '나는 개를 좋아한다. 개는 더위에 약하다. 개의 피부는 땀을 배출하지 못해서 더위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말하자면 개의 피부는 두터운 갑옷 같은 것이다.  그들이 야생에서 살아온 증거인데 추위나 비바람 속에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방어적인 요소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알래스카의 썰매견으로 유명한 말라뮤트나 시베리안 허스키 종은 체격도 크고 건장한 대형견이다. 특히 이들의 외모를 결정하는 털은 거칠고 길다. 블랙과 화이트 혹은 회색 빛깔로 배색된 털은 풍성하고 늑대의 거친 야성을 보는 듯하다. 겨울에 말라뮤트를 보게 된다면 사자의 갈기처럼 멋진 회백색의 털에 감탄하게 된다. 이 풍성하고 거친 털은 알래스카 사람들의 생존을 도왔는데 눈보라 치는 빙판의 겨울밤에 더욱 소중했다고 한다. 알래스카 사람들에게 'three dog night'라는 말이 있는데 추운 겨울밤을 보내기 위해선 '세 마리 개를 품고 잔다'는 뜻이다. 아무리 추운 겨울도 개와 함께 보듬고 서로 체온을 나누게 되면  얼어 죽지 않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추위에 잘 견디게 진화한 개는 상대적으로 더위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데 더위를 이기기 위해 개가 땀을 배출하는 곳이 있다. 개는 발가락 사이로 땀을 배출한다. 개의 발바닥은 나무 등걸처럼 두껍고 딱딱해 보이지만 무척 애민한 곳이다. 그곳에 신경이 몰려있어서 심지어 간지럼도 탄다. 개가 풍기는 냄새는 주로 귀와 발가락 그리고 다리의 종아리와 가슴 부위의 겨드랑이 같은 곳이다. 특히 발가락은 오래 걷고 난 후 신발을 벗었을 때 나는 냄새와 유사하다. 그 퀴퀴하고 시큼한 냄새. 자신의 몸을 통해 배출된 찌꺼기 같은 냄새. 열정과 노력의 부산물 같은 액체가 기체가 되는 냄새.


 사람의 냄새가 그러하듯 개의 냄새도 모두 다른 내가 난다. 그들은 이 체취를 오줌 내처럼 자랑스럽게 여길지도 모른다. 코로 모든 것을 구분하는 그들에게 냄새는 스스로를 증명하는 확실한 방법일 수 있다. 짙고 강한 냄새를 풍겨서 자신을 알리고 기억시키려 할지도 모른다.

 아무리 더워도 개는 머리나 등으로 땀을 흘리지 못한다. 단지 터질듯한 호흡으로 혀가 돌라갈 정도로 힘들다고 표현한다. 그래서 그 호흡은 거칠고 불안하다. 한바탕 뛰고 와서 옆에 주저앉아 배를 깔고 숨을 내쉬고 있을 때면 디젤 기관의 엔진처럼 가슴이 뛰면서 가쁘고 규칙적으로 내뱉고 있는 생명의 소리를 듣게 된다. 살아있는 소리를 듣게 된다.


여름이 깊어질수록 숨소리는 가파지고 냄새는 더 진하게 날 것이다. 등에서 듬성듬성 빠져나온 털을 보면서 개가 흘리고 싶어 하는 땀을 생각한다. 수분기가 빠져버린 낙엽처럼 건조해진 터럭들.


`몸속의 열정과 뜨거움이 그리움이 되어 날아가는 민들레 꽃씨 같은 그 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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