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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보구 Dec 16. 2020

`슬로 플레이어를 위한 변명`

장보구의 <빨간벙커>

`슬로 플레이어를 위한 변명`


 바둑과 장기는 대표적인 보드게임이다. 동양의 장기와 맞먹는 게임으로 서양의 체스가 있지만 바둑은 유일한 클래식 보드게임이다. 지금은 바둑에 초읽기가 있어서 시간 규정의 제한을 받지만 예전 바둑에는 시간 규정이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때 바둑은 `토혈국`이라고 불리기도 했는데  일본에 전해지는 전설에 의하면 몇 날 며칠 수 싸움으로 고심하던 프로 중에 대국이 끝난 후 몇 달 만에 피를 토하고 죽은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골프 경기도 시간의 제약이 없이 유기적으로 앞팀과의 간격을 유지하면 될 것 같지만 일정한 시간이 있다. 물론 그중에는 늦장 플레이를 하는 선수가 있어 경기가 지연되기도 한다. 골프 규정에는 앞 선수가 플레이한 후 폐어웨이에서는 40초 이내, 그린에서는 1분 이내 스트로크하도록 되어있다. 보통 늦장 플레이라고 하는 선수들의 시간은 페어웨이에서 50~52초의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수치상으로 본다면 10초 정도밖에 차이가 안 나지만 동반자가 느끼는 감정의 시간은 훨씬 길게 느껴지기도 할 것이다.


  미국 PGA 투어 선수 중 브라이슨 디셈보도 가끔 늦장 플레이어로 기사에 오르기도 한다. 한때 이 선수는 그린의 경사를 읽기 위해 컴퍼스를 사용하다 제재를 받기도 했다. 아이언의 길이가 모두 같다든지, 그라파이트 샤프트를 사용한다든지, 거리를 늘이기 위해 몸무게를 늘이고 근력운동으로 `헐크`처럼 몸을 변화시켜서 `괴짜 골퍼`의 소리를 듣기도 하지만 그런 성과를 통해 우승도 하면서 최고의 선수 반열에 들었다. 하지만 슬로 플레이어란 오명은 쉽게 사라질 것 같지는 않다. 그건 아마도 공기의 밀도까지 계산해야 거리에 대한 확신이 서는 그의 치밀한 성격에 기인하기에 더욱 그럴 것 같다. 이번 마스터스에서는 어떤 변화를 줄 것인지 지켜봐야 할 것 같지만.

 또 다른 미국 PGA 투어 선수 중에 세르히오 가르시아란 선수가 있다. 그는 존 람과 더불어 스페인을 대표하는 골프선수다. `2017년 마스터즈`우승을 할 때까지 그는 `무관의 제왕`이라 불렸다. `2017 마스터즈`우승 전까지 그의 메이저 성적은 준우승만 4회였으니 실력에 비해 우승을 못하는 안타까움이 만든 별명이리라.

그의 경기를 보다가 나도 모르게 감정의 출렁거림을 느낀다. 특이하게 가르시아는 그립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한다. 어드레스 자세에서 그립을 주물럭거리는 그 모습을 보다 보면 나도 모르게 그 횟수를 세곤 한다. 어쩔 땐 열 번을 쥐락펴락하고 샷을 한다. 얼마 전 끝난 2020 PGA 투어 샌더슨 팜스 챔피언십 대회에서 우승할 때는 눈을 감고 퍼팅을 해서 주목을 받았다. 한때 집게 그립 퍼팅으로 유명한 그였지만 최근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 같다. 샷을 하기 전 그립을 쥐었다 폈다 하는 것이나, 퍼팅 전에 눈을 감는 행위는 일반적이지는 않다. 물론 선수 개인의 루틴일 수 있지만 보기에 좋지는 않은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이 슬로 플레이로 이어진다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선수들의 늦장 플레이도 눈총을 받고 심한 경우에는 벌타를 부과하기도 하지만 아마추어끼리의 라운드에서는 제제할 방법이 없다. 비기너라면 말하기도 쉽지만 구력이 제법 된 중견의 골퍼라면 더더욱 말하기가 어려워진다. 성격에 따라 연습의 습관에 따라 개인차가 분명 있지만 동반자가 기다리는 상황에서 자신에게 부여된 시간을 낭비하고 있으면 불편해진다. 골프는 배려의 운동이라고 한다. 나를 기다리는 동반자의 눈빛이 다음 홀을 보고 있다면 늦은 것이다. 다시 한 번 초보 때 배웠던 `맘은 느긋하게, 판단은 신속하게, 실행은 간결하게`를 생각해본다.




https://sports.v.daum.net/v/2020111405570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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