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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보구 Aug 12. 2022

맨델스존을 좋아합니다

 무더운 날씨가 계속되었다. 에어컨 없이는 잠시도 지내기 힘든 날씨였다. 아내와 휴가를 계획하고 어젯밤은 모처럼 들뜬 기분이었다. 떠난다는 건 항상 기분이 좋다. 그건 어릴 때나 나이 먹은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 기분 탓인지 배가 고프지 않아서 아침은 거르기로 한다. 대신 스타벅스에 들러 커피를 사고 출발했다. 천변에 피어있는 배롱나무 꽃이 무더위에도 전혀 힘들지 않은지 선명한 붉은빛으로 흔들리고 있다.

 아내가 휴대폰을 만지작 거리며 블루투스를 연결하고 음악을 튼다. 맨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을 주문한다. 얼마 전 읽은 글에서 바이올린의 비브라토가 사람의 음성과 가장 닮았다고 한다. 피아노의 명징하고 분명한 소리에 비해 바이올린은 감정의 미묘한 느낌을 잘 전한다고 한다. 마치 상황에 따라 말투나 목소리의 톤이 달라지듯이 바이올린 소리는 때로는 부드럽게 속삭이기도 하고 애절하게 흐느끼기도 하지만 분노에 목소리가 떨리듯이 감정을 자극하기도 한다. 감성에 빠지고 싶을 땐 좋은 바이올린 선율이지만 일상의 리듬 속에선 진부하고 끈적거리는 느낌도 있다.  

 남해 고속도로를 지나 중앙 고속도로로 접어들자 가로수의 수종이 바뀐 듯하다. 위도상 조금 위로 올라온 것뿐인데 잣나무나 회화나무가 눈에 많이 띈다. 내가 사는 순천에는 길게 나있는 배롱나무 가로수길이  있다. 더운 여름날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붉게 물든 배롱나무꽃을 보며 드라이브를 하면 마음이 편해지고 잠시 시름을 잊기도 한다. 그 향기가 차 안까지 배어들 것 같은 배롱나무 꽃길은 몇 번이고 지나가고픈 길이다. 대구와 안동 쪽으로 갈수록 회화나무 가로수가 많았는데 나는 자동차를 일정한 속도로 맞춰놓고 흐드러지게 피어난 회화나무의 하얀 미소를 잠깐씩 감상했다. 


 점심을 먹고 도담 삼봉에 도착했다. 아내는 피곤한지 차 안에서 잠깐 쉰다고 해서 홀로 주변을 둘러보러 갔다. 유원지 모습을 갖추고 있어서 그런지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강은 아주 넓은 편은 아니었지만 유람선이 다닐만한 폭이었다. 시끄러운 소리가 났는데 스피커를 통해 유람선이 곧 출발한다고 빨리 탑승하라는 방송 소리 때문이었다. 연달아 스피커를 타고 나오는 안내 방송 사이로 거문고 소리와 창도 흘려 나왔다. 번잡하고 잡다한 소리 속에서 사람들은 줄지어 배에 오르고 사진을 찍으며 즐거워했다. 나는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좀 멀리서 그 광경을 보다 인적이 드문 길을 찾아 걸었다. 하늘이 흐려지고 있었다. 먹구름과 흰구름이 빠르게 뒤섞이며 하늘 한 편이 흐릿해졌다. 강 위로 떠있는 세 개의 바위섬에는 정자가 하나 보였고 다리가 긴 두루미 두 마리가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도담 삼봉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까부터 도담 삼봉이 나를, 구경온 우리들을 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빗방울이 후드득 떨어졌다. 어느 틈엔가 아내가 곁에 와서 우산을 받쳐준다. 


 뉴스에서 시베리아의 찬 공기와 열대성 저기압이 한반도 상공에서 충돌했다고 한다. 폭우로 수도권이 물바다라고 한다. 숙소로 정한 천안쪽은 흐리고 간간이 비가 내렸다. 새벽에 잠에서 깼다. 날이 밝아오면서 닫힌 커튼 사이로 어둠을 밀어내고 있었다. 유리창을 타고 창틀에 고인 빗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간간이 들렸다. 낯선 고요함 속에서 어떤 평온함이 느껴졌다. 한참을 그대로 있었다. 아내가 깰까 봐 조심스럽게 일어났다. 인기척을 눈치챘는지 아내가 뭐라 묻는다. 목소리에 잠결이 묻어난다.

엘리베이터를 내려 로비로 간다. 사람이 없어서 그럴까. 로비는 오래전부터 빈 곳이었던 같다. 커다란 곰인형과 화분에 담긴 잎 넓은 식물도 생명이 없는 것 같다. 소파나 의자와 탁자도 오랜 시간 동안 그곳에 놓인 채 사람의 손길을 타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다. 느린 피아노 곡이 높은 천장과 낮고 긴 소파 사이로 흐른다. 어둠과 전등 빛 속으로 묵직하고 분명한 소리가 파고든다. 블라인드가 절반쯤 걸터앉은 유리창 밖으로 간간히 지나는 자동차 불빛이 보인다. 모든 공간을 아우를 만한 한쪽에 자리를 잡는다. 높아서 더 넓어 보이는 이 공간을 갖고 싶었을까. 그저 이 순간을 기대했는지 모른다. 공간 속에서 나마저도 사라져 버리는 이 시간을 기다렸는지 모른다. 어둠과 빛이 서로 파고들다가 서로에게 의지하는 것을 보고 싶은 것인지 모른다.


 뮤지엄 SAN으로 가는 길에는 세차게 비가 내렸다. 간혹 도로로 밀려온 토사로 정체가 일어나기도 했다. 오크 밸리로 들어서자 잘 정돈된 골프 코스가 보였다. 빗 속에서 잔디는 초록색으로 더욱 선명하게 빛났다. 

잣나무 숲길을 지나자 오르막 길이었다. 언덕 위로 돌로 쌓은 성벽이 보였다. 성벽 옆으로 자작나무가 호위병처럼 길게 늘어서 있다. 자작나무를 따라 성안으로 들어가자 주차장이 나온다. 주차장이 특이하다. 나무에 둘러싸인 주차장은 처음이다. 차를 세울 자리마다 나무가 안내인처럼 서있다. 차에서 내리는데 안내인이 우산을 받쳐주듯 비를 막아주었다.

 표를 끊고 본관으로 이동한다. 내리는 비속에도 사람들이 보인다. 대여해준 우산을 쓰고 본관으로 걸어간다. 우산에 떨어지는 가는 빗방울 소리가 잘게 부서진다. 풍향계처럼 보이는 주황색 조형물이 잔디 위에 새겨진 커다란 시계의 초침처럼 움직인다. 파란 잔디 뒤편으로는 하늘이 활짝 열려있다. 구름 낀 하늘이 넓게 펼쳐져있고 건너편 산의 능선이 간결한 곡선으로 드러난다. 다시 자작나무 숲길이다. 입구 쪽의 자작나무길보다 훨씬 크고 빽빽하다. 비를 몰고 온 바람에 키 큰 자작나무가 파르르 떨다 다시 고요해진다. 하얀 수피가 아름다운 자작나무 숲길이다. 자작나무 숲길이 끝나자 연분홍 부용이 활짝 웃으며 우리를 맞이해 준다. 

 안도 타다오의 건축은 제주도의 유진 미술관에서 체험했다. 지하 세계로 들어가는 착각을 일으키던 미로 같은 미술관 건물은 노출 콘크리트와 네모난 물의 정원으로 이루어졌지만 작품을 감상하는데 불필요한 요소를 제거해 몰입도가 무척 높았던 기억이 있다. 단지, 좀 작아서 다양한 건축적 미학을 보지 못함이 아쉬웠다.

아내와 나는 건축 해설사의 설명에 의존하지 않고 자유롭게 보는 것을 선택했다. 우리는 건축을 잘 알지도 못할뿐더러 특별한 지식이 없어서 공학적 지식과 분석에 둔감한 편이지만 살아온 경험과 직관을 중시한다. 그래서 `시험 볼 것도 아닌데 뭐`하면서 자유롭게 돌아다니기로 합의했다. 

 본관 건물은 노출 콘크리트가 주를 이루지만 입구에서 봤던 돌로 쌓은 벽을 군데군데 이용하여 변화를 준 것 같다. 안도 타다오의 건축은 직선적이며 간결함이 특징인 것 같은데 지붕의 단순함도 그중 하나일 것이다. 지붕선을 간결하게 표현하면 건물은 전체적인 구조에서 벽면이 드러난다. 벽면은 보는 각도에 따라 기둥처럼 보이기도 한다. 지붕을 직선으로 표현하면 하늘은 도려낸 도화지처럼 나타난다. 안도 타다오는 그걸 의도하지 않았을까. 그가 세운 벽면은 직선의 힘이 느껴진다. 그것은 성벽처럼 견고하고 신전의 기둥처럼 숭고해 보인다.

 물의 정원은 카페와 연결되어 있는데 마치 물 위에 뜬 제단처럼 보였다. 정갈하게 씻긴 몸과 맘으로 건너 보이는 산과 하늘을 바라보며 차 한 잔을 신에게 바치고 음복처럼 마신다면 행운과 행복은 자연히 따라올 것 같았다. 우리는 어떤 창에서 밖을 바라보며 앉아 있거나 멍한 상태로 서 있었다. 바라보는 방향마다 다른 풍경이었고 서있는 공간마다 다른 느낌이었다. 어느 장소에서는 돌로 쌓은 벽을 보다가 `스톤 글라스'를 생각했다. 어쩌면 건축가는 돌로 쌓아서 스테인드글라스 같은 느낌을 보여주고 싶었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빛이 통과하는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신의 재림을 보여주듯이 불투명한 돌이 반사하는 빛의 광휘로 또 다른 신의 예시를 보여주려고 한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을 했다.  

 제임스 터렐 관으로 가는 길에는 스톤 가든이 있고 몇 그루의 나무가 군데군데 있다. 백 년쯤 자랐는지 굵고 키가 높게 자란 오동나무와 허공을 더듬다 절묘하게 휘어진 모과나무 가지와 풍채 좋게 자란 잣나무와 사이좋아 보이는 소나무를 만났다. 인간이 만든 공간 속에서 자연의 작품인 나무가 함께하는 모습은 보기 좋다. 작가의 의도에 의해 자리를 옮겨왔는지 모르지만 자연과 인간이 함께 공존하며 만들어내는 공간미에 감탄하며 자리를 떠났다. 산속에 SAN을 그리고 만들어낸 안도 타다오의 창의력에 고마움을 느끼며 가슴이 자연과 예술로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우리는 갑천이 내려다보이는 뷔페에서 와인잔을 들었다. 비에 젖어있는 여름의 해질녘이 느리게 흘러가는 창이었다. 천변을 잇는 다리를 가로지르는 하얀 새떼가 멀리 사라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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